(4) 고려의 대외교류와 식생활
가. 원·객관·주식점의 개설과 접객양식
고려에서는 여행자, 상인과 물자의 집산지를 선정하여 院이란 숙박소를 설치하고 크기에 따라 구분하여 그 경영을 지원하였다. 그리고 성종 2년(983) 10월에는 공설 주식점으로 成禮·樂賓 등 6개소를 개설하여1201) 鑄錢유통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우리 나라에서 공설 접객업소 설치의 시작이며 특히 그 운영을 위해 마땅한 사람을 선정하고 田結을 주어 경영을 맡기는 등 나라에서 인적·물적인 면으로 지원하였다. 이러한 점은 상업발전은 물론이고 식문화의 교류와 발전에 좋은 계기로 이바지하게 되었다.
또한 고려는 중국과 일본을 위시하여 거란·여진·남번·서역의 大食國(사라센) 등을 상대하여 전대에 비할 수 없는 대외무역이 활발하였으며 왕래도 빈번하였다. 이런 환경에서 송·거란·여진·남번상인을 위한 객관을 개설하였는데 현종 2년(1011) 4월에는 迎賓館·會仙館을 개설하고,1202) 이후 더욱 증설하여 송의 상인을 위하여 娛賓館·淸河館·朝宗館·淸州館·忠州館·四店館·利賓館 등을, 여진상인을 위하여 迎仙·靈隱 등을 증설하였다.1203) 이러한 객관에서 외상을 영접하거나 또는 외국상인이 연회를 열면서 물물교환 형식으로 객관무역을 실시하였다. 더욱이 그 규모가 문종 9년(1055) 2월에는 400명에 달한 때가 있고, 국초에 송상의 내왕은 120여 회에 약 5,000명에 달하였다.
이러한 환경이 음식의 대외교류를 증진시켜 식문화가 발달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는데 객관에서 시행한 일상식의 접객양식은≪고려도경≫供張條에 잘 나타나 있다. 즉 객관에서는 하루 세 끼를 대접하는데 정·부사가 입관하였을 때에는 붉은 칠한 상에 한 끼에 5俎로 그릇은 다 황금을 발랐으며, 都轄·提轄 및 上節 이하는 검은 칠한 상에다 주는데 한 끼당 3조이고, 中節은 2조, 下節은 각 5인씩 한자리에서 같이 먹도록 連床을 차린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