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대외무역식품과 음식의 교류
고려시대에 대외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새로이 유입된 식품으로는 차·포도주·소주·후추·사탕·양고기 등과 밀가루로 만든 霜花가 있다. 그 중 차와 포도주는 원료가 우리 나라에서 많이 생산되지 않았으므로 일부층에서만 쓰였다. 그러나 소주는 전래의 탁주·약주에 보태져 그 제법이 동화되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소주를 내리는 증류주법은 서역으로부터 원에 유입된 것이 우리에게 들어왔으며 전래양주법에 없던 증류주법의 유입·동화는 우리 나라 주류제조사에 일대 발전의 하나였다. 또 고려 중기 이후 후추의 수입량이 증가하였으며 창왕 2년(1389)에는 琉球國에서 들어온 방물 중에 후추가 300근이 있었다.1204) 후추가 많이 쓰이게 된 것은 고기음식을 다시 많이 먹게 되어 고기를 조미하는데 많이 쓰였기 때문일 것이다.
상화는 밀가루를 술로 반죽하여 부풀린 것에 팥소 또는 고기소를 넣고 쪄서 만든 것으로, 중국의 전래음식 중 덴싱[點心]류의 한 품목이다. 이 상화법이 고려시대에 유입된 이후 시판음식으로 보급된 것을 고려가요<쌍화점>에서 알 수 있다.1205) 그 제법이 조선시대를 통하여 초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규중문헌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어 가정음식으로도 수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六典條例≫에 의하면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禮賓寺에서 중국사신을 위한 연회에 내놓았다.1206)
고려 초기 大覺國師의 제자 曺素는 사탕을 좋아하여 사탕으로 벽돌을 쌓았다고 한다.1207) 이것으로 보면 고려시대의 사탕은 고형으로 뭉쳐진 형태의 것으로 짐작되며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초기에 인도로부터 제당기술을 배워 중기 무렵에는 제당기술이 발달하여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