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지방상업
1) 상무사 우사
조선 농촌의 상업경제는 주로 시장을 무대로 전개되었다. 즉 ‘시장을 중심으로 한 지방경제가 곧 조선 경제조직의 본질’이라는 것은 이미 지적된 바 있다.0214) 재래 우리 사회에 있어서 경제 생활의 토대는 역시 농업생산에 있었으며 그 잉여물로 자기가 필요한 물품과 교환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후기의 사실이지만 시장 또는 장이 전국에 약 1,000개소나 되며≪만기요람≫에 의하면 순조 때에 경기 102개소, 경상도 276개소, 충청도 157개소, 강원도 68개소, 황해도 82개소, 전라도 214개소, 평안도 134개소, 함경도 28개소였다고 한다. 보부상은 이 시장을 중심으로 행상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간에 교환경제를 매개하는 전문적인 시장상인이었다. 보부상은 대개 1일 왕복의 노정을 표준으로 형성되어 있는 시장망을 돌아다니면서 각지 물화를 유통시켰다. 그러므로 동일한 경제지역 내에서 생산된 물화는 보부상에 의하여 그 곳 시장망에서 유통될 수 있었던 것이다. 원래 조선시대의 향시(지방시장)는「1개월 6장」으로, 한 지방에서 매월 6회씩 열리는 것이 보통이다.≪만기요람≫재용편 향시조에 의하면, 1·6일, 2·7일, 3·8일, 4·9일, 5·10일의 순서로 개시되었다 한다. 예컨대 1·6일이라 하면 초 1일에 개시한 곳은 항상 초 6일, 11일, 16일, 21일, 26일에 각각 개시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본절에서 주로 논급하려 하는 충청남도 苧産八邑의 개시일을 예시하면 제1경로는 한산읍내 시장(1일장)을 기점으로 하여 서천(2일장), 비인(3일장), 남포(4일장)의 순서로, 제2경로는 은산(1일장)에서 홍산(2일장), 정산(3일장)이나 또는 부여(3일장)를 거쳐, 임천(4일장)의 순서로 각각 행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0215) 이와 같이 일정한 시장 그룹을 형성하는 보부상이 동일구역 내를 순회행상하였다.
보부상은 褓商과 負商을 통칭한 명칭으로, 때로는 보상만을 말할 때도 보부상이라 하고 부상만을 역시 보부상이라고 통칭하기도 하나 그것은 명백히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상품에 관하여 보면 물론 시대에 따라 변화가 있었겠지만 보상은 주로 정치하고 비교적 고가인 잡화, 즉「吳服, 毛物, 骨物, 혁대, 紐, 刀子, 銃, 櫛, 冠具」0216) 또는「주단, 포목, 유기, 烟竹, 금·은·동제품(주로 장신구), 관구, 笠子, 宕巾, 網巾, 竹梳, 필묵」0217) 등 잡화들이었다고 한다. 뒤에 상술할<商務社章程>(광무 3년 6월)이라는 사료에 의하여 보더라도 右社(보상)의 판매물종에는 布·帛·錦·紙物·綾·紬物·苧·金·銀·銅·貂·㺚·棉花·皮革 등이 보인다. 이에 비하여 부상은 비교적 조잡한 일용품인 목기·연초·토기·어염·도자기·방망이·홍두깨·草席·바가지·草鞋 등을 취급하였다 하며, 역시<상무사장정>左社(負商)의 판매물종에는 어염·藿·生水鐵·토기·木物·南草(담배)·麯·竹物·蘆席·淸蜜·靑麻 등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부상의 상품은 농업 생산을 주로 하는 사회에서 유치한 가내수공업품을 주로 하는 데 비하여 보상의 상품은 기술상으로 발달된 세공품이 위주이며 주로 사치품이 많았다.
다음으로 상행위 방법을 보면 보상은 상품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다니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시장 또는 촌가의 마루에서 보자기를 끌러 펴고 판매하였으므로, 속칭 봇짐장사라고도 하였다. 이에 반하여 부상은 상품을 지게에 얹어 등에 걸머지고 다니면서 판매하였으므로 일명 등짐장사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 중의 대부상·대보상들은 수운과 陸駄로 다량의 상품을 일시에 운반하여 판매하기도 하였다.
이 보상과 부상이 각각 견고한 조직을 가진 상인조합이며 행상조합이란 것은 경제사가들에 의하여 규정된 바 있고0218) 육의전과 더불어 조선상업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서 유명하다. 필자는 1955년 3월 충남 지방을 답사한 결과 부여·정산(청양)·홍산·임천·한산·비인·남포·서천 등 苧(모시)를 생산하는 이른바「苧産八邑」을 순회하는 보부상단이 아직도 재래의 전통적 조직을 견지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리하여 이 충남의 보상단(정확히 말하면 충남우도 저산 8구 商務社 右社)의 실태를 중심으로 하여 보부상의 문제들을 해명하고자 한다.
조사 당시 동사의 접장이었던 부여군 부여면 왕진리 거주 白萬基씨 소장의 문서 및 물품을 검토한 결과 거기에는 중앙에서 구하기 어려운 귀중한 문헌이 보관되고 있으며 역대로 내려오는≪靑衿錄≫과 印匱, 團旗 등을 한꺼번에 2중 3중으로 포장하여 신주처럼 목상에 올려 놓고 매월 1일, 15일에 제사지내고 있었다. 백만기씨 소장의 傳掌記의 관계문헌 및 물품은 다음과 같다.
A. 목록류 문건 청금록(역원명단) 21책 판하상리국절목 2책 혜상공국관문 등 서책 2책 완의 1책 상무사장정(홍산우지사) 1책 상무협회규칙 1책 제국실업회상무과세칙 1책 한성부완문 1책 절목 1책 완문 1책 상고계립의 3책 상무장정부칙 2책 상규단취지서 1책 전장기(인계목록) 1책 B. 규약류 문건 충남상업회사장정 1책 충남상업주식합자회사규칙 1책 C. 기물 봉도기 1건 좌사봉표 1건 은홍비병남장무원구인 1개 은홍산공사원인 1개 유래구문기홍보 1건 은홍영위지인 1개 은홍산공사원구인 1개 홍산재무원구인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