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혜민서
惠民署는 처음에는 혜민국이라 하던 것으로 고려의 惠民典藥局을 계승한 것이다. 이것은 태조 원년에 설치된 이후 그 직제는 여러 차례의 개정을 거 쳐 성종 때 완성되었다. 그 구성은 주부 1명·의학교수 2명(1명은 문관이 겸 임)·직장·봉사·의학훈도 각 1명·참봉 4명 등 모두 10명이 정원인 종6품 아문으로 되었다.661)
혜민서는 약을 전매하고 서민을 구료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이었다. 그러나 혜민서에서는 활인원과 같이 병자를 모아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병자의 요청이 있을 때 가서 치료하거나, 활인소·한증소·구료소 등에 의원을 보내 치료를 맡게 하였으며,662) 권지 60명 중 24명을 각 사와 경성 5부의 월령의로 파견하는 등663) 중요한 의료 기구로 활약하였다.
세조 6년 제생원이 혜민국에 합속되자 기아·고아의 護養과 의녀의 교육 도 담당하였다. 세종 5년(1423) 이후는 사행이 갈 때마다 의원을 보내 약재를 구입하여 전매하고, 이것을 원료로 청심원 등 구급약을 제조·판매하였으며, 뒤에 혜민서에는 전함·권지 및 나력의 권지가 모두 69명이나 속해 있으면서,664) 민간의 질병 치료를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