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5권 조선 후기의 문화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2. 실학의 발전1) 실학사상의 성립(1) 실학개념의 정립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1. 성리학
          • 2) 인물성논쟁의 쟁점과 전개
          • 3) 경학의 심화
          • 4) 의리론의 전개
          • 5) 유기론과 유리론의 대두와 쟁점
        • 2. 양명학
          • 1) 양명학의 이해
        • 3. 천주교의 수용과 전파
          • 1) 천주학과 보유론적 천주신앙
          • 2) 천주신앙 실천과 초기교회의 발전
          • 3) 천주교박해와 지하교회로의 발전
          • 4) 역사적 변인으로서의 조선천주교
        • 4. 불교계의 동향
          • 1) 승단내의 수학경향
          • 5) 국가적 활동
        • 5. 민간신앙
          • 1) 도교·도참신앙
          • 2) 기타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1. 학술의 진흥
          • 3) 규장각의 학술활동
            • (1) 설치와 조직
            • (2) 학술활동
        • 2. 실학의 발전
          • 1) 실학사상의 성립
            • (1) 실학개념의 정립
            • (2) 실학사상의 형성 배경
          • 2) 실학사상의 전개
            • (2) 정치개혁론
            • (3) 대외인식과 역사관의 변화
            • (4) 경제·사회사상의 특성
          • 3) 실학의 연구과정과 성격
            • (1) 연구의 전개과정에 대한 검토
        • 3. 국학의 발달
          • 1) 국어학
          • 2) 언어학
            • (3) 근대국어의 변화
          • 3) 지리학
            • (1) 지리학 발달의 배경
            • (2) 공간관의 변화와 지도학의 발달
            • (3) 지역연구와 계통지리학의 발달
            • (4) 자연지리학의 발달과 환경에 대한 인식
          • 4) 역사학의 발달
          • 5) 백과전서학의 발달
        • 4. 과학과 기술
          • 1) 조선 후기의 전통 과학기술
          • 2) 실제 과학기술의 발달상태
          • 3) 근대 과학기술의 수용-실학과 과학기술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1. 문학
          • 1) 국문시가와 한시
            • (1) 시조
            • (2) 가사
          • 2) 서사문학
            • (1) 한문소설
            • (2) 국문소설
        • 2. 미술
          • 1) 회화
            • (2) 새로운 화법의 수용과 전개
          • 2) 서예
          • 3) 조각
            • (1) 홍성기의 조각
          • 4) 공예
            • (1) 도자공예
            • (2) 목칠공예
          • 5) 건축
        • 3. 음악
          • 1) 궁중음악의 변천과 새 경향
          • 2) 민속악과 민간풍류의 새로운 전통
            • (1) 성악의 발전
            • (2) 기악의 발전
          • 3) 악조와 음악양식 및 기보법
            • (3) 악보와 기보법의 변천
        • 4. 무용·체육 및 연극
          • 1) 무용
            • (1) 궁중무
            • (3) 민속무
          • 2) 체육
            • (1) 편사
          • 3) 연극
            • (1) 산대나희
            • (4) 민속극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실학의 발전

1) 실학사상의 성립

(1) 실학개념의 정립
가. 실학사상의 존재

 일반적으로 實學思想은 조선 후기 17세기 이후의 사회에서 출현한 현실개혁적 사유형태를 지칭하고 있다. 해방 이후 남북한의 학계에서는 실학사상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의미를 구명하려는 작업을 활발히 전개해 왔다.383) 그러나 실학에 대한 최근의 연구결과를 검토해 볼 때 실학사상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러한 점을 구명하는 차원에서 실학의 존재 및 개념과 관련된 문제들부터 살펴보자.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존재 여부에 대한 문제이다. 최근에는 일부 연구자들은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존재 자체를 의문시하기도 한다.384) 그리고 해방 이후의 연구자들이 실학의 범위로 설정해 오던 일반적 방법과는 달리,「實學」의 적용범위를 축소하려는 시도도 진행되었다. 이러한 문제 제기가 실학의 개념을 밝히는 데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실학사상의 존재를 확인하는 작업은「실학」이란 단어의 용례 및 실학이라는 용어에 함축된 사상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이다. 우리는 먼저 실학이라는 용어가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되어 왔음을 다음과 같이 확인하게 된다. 즉 한국사상사에서 실학이란 단어는 여말선초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이 때의 실학은 오늘날 실학이라는 개념에 함축되어 있는 바와는 달리 성리학을 지칭한 용어였다. 여말에 수용되었고 조선왕조의 官學 즉 통치원리로 정립된 성리학은 원래 修己와 安人을 목적으로 했다. 이 때문에 14세기 후반 程朱의 성리학을 수용한 이래 여말선초의 유학자들은 유학 즉 성리학이 도덕과 정치에 유용·유익한 생활관과 경세론을 제공해 주는 실제적 사상이란 의미에서 이를 실학이라고 했다. 이러한 성리학적 실학은 오늘날의 연구자들이 논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과는 일정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조선왕조의 성립을 전후해서 자신의 성리학을 실학이라고 생각했던 대표적 인물들로는 李齊賢(益齋, 1287∼1367), 鄭道傳(三峰, 1337∼1398) 및 權近(陽村, 1352∼1409) 등이 있다. 그들은 성리학이 불교나 訓詁詞章에 치우친 漢唐의 유학보다 우월함을 인식했다. 그들은 성리학이 仁義忠信 등의 修己로 인해서 훈고나 사장의 유학보다 ‘爲己’의 실효를 거둘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충효를 비롯한 五倫과 六禮의 학습을 통해서 불교보다 ‘齊家治國平天下’의 실효를 더 거둘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고, 이러한 이유로 이를 실학이라고 불렀다.

 또한 李滉(退溪, 1501∼1570)이나 李珥(栗谷, 1536∼1584)도 修己安人의 설인 성리학을 실학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반면에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禮 지향적 수기의 예론을 전개하고 있던 尹拯은 예학을 실학이라고 인식했다.385) 이러한 조선왕조의 성리학자들은 대체로 주자를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 유학을 해석하면서 자신의 학문체계를 실학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일단의 유학자들 가운데는 관학 즉 통치원리로 기능하고 있던 주자성리학의 유일기준을 거부하고 탈성리학적 경향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들은 先秦儒學 내지 原初儒學의 정신으로 돌아가 성리학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예론적 실학이 지배하고 있던 상황에 대한 비판을 시도했다. 이러한 사상적 경향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로는 李睟光(芝峰, 1563∼1628)이나 許穆(眉叟, 1595∼1682) 등이었다.

 특히 허목의 경우에는 주자학 일변도의 경색된 학문 풍토를 거부했다. 그는 朱子註를 중심으로 하는 四書(論孟庸學)나 七書(論孟庸學詩書易)체제를 거부하고, 원초유학 경전으로서 ‘堯舜之學’을 간직하고 있는 六經을 강조했다.386) 이들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유학의 탈성리학적 연구 경향은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전개에 있어서 선구적 역할을 했다. 이처럼 조선 중기 이래 유학계에서는 탈성리학적 학문연구 경향이 등장하고 있었다. 조선 중기의 이러한 탈성리학적 연구의 경향에서 조선 후기적 실학이 움터 나왔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지칭되는 사람들은 經世致用的 학문을 강조하거나 자신의 저서에서 ‘실학’이라는 단어를 직접 구사하기도 했다. 즉 柳馨遠(1622∼1673)의 학문체계는 당대부터 ‘경세치용’의 학문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리고 李瀷(星湖, 1681∼1763)도 학문이란 장차 천하만사를 조치할 만큼 치국·평천하의 경세에 치용(유용)한 것을 지향해야 한다고 역설했고, 자신이 직접 ‘실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387)

 洪大容(湛軒, 1731∼1783)은 ‘실학’이라는 단어를 구사하여 사장과 記誦 그리고 훈고와 구별되며, 功利나 老佛·陸王과는 다른 학문체계를 제시하고자 했다.388) 朴趾源(燕巖, 1737∼1805)의 경우에도 농공상의 이치를 포함하는 士의 학문을 ‘실학’이라고 지칭하면서 農工賈가 所業을 잘못하는 것은 사에게 실학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389)

 丁若鏞(茶山, 1762∼1836)은 그의 저서에서 ‘실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당대의 성리학을 ‘雜學’이라고까지 폄하하면서, 치국안민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夷狄을 물리치며 재용을 넉넉히 하고, 能文能吏하여 무소부당한 능력의 양성을 주창했다.390) 여기에서 정약용의 실학개념이 간접적으로 추출될 수 있다. 19세기의 金正喜(秋史, 1786∼1856)의 경우에는 ‘實事求是’를 중시하는 학문태도를 강조했다.391) 崔漢綺(惠崗, 1803∼1879)는 사농공상에 걸친 實事를 실지로 탐구 실천할 것을 제창하면서 자신의 실학사상을 표현했다.392)

 여기에서 오늘날 우리 학계는 조선 후기 사상계의 변화를 논하면서 실학이라는 분야를 설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은 당대의 학인들이 직접 문호를 열고 기치를 세우며 자신의 존재를 ‘실학파’ 등으로 스스로 확인한 사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가 자신을 실학자로 자처한 바도 없고, 자신의 학문을 실학이라고 선언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서로 모여 다른이들과 구별되는 배타적 견지에서 학파를 조직한 적도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날 학계에서 당시의 학풍을 실학으로 명명한 데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즉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은 卽自的(an sich)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실학사상은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고 자신의 독립성을 확연히 천명하는 對自的(für sich) 단계의 사상으로까지 전개되지는 아니했지만 분명 조선 후기의 사상계에 존재하고 있었던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였다. 이 즉자적 사상의 형태를 1950년대에 이르러 남북한의 학계에서는 實學思想이라고 지칭하게 되었다.

 따라서 실학사상에 대한 연구는 과거 역사적 존재 자체를 밝히고 그 의미를 구명하려는 작업이다. 이런 특성을 가진 ‘조선 후기의 실학’은 종전의 ‘성리학적 실학’이나 ‘예학적 실학’ 혹은 ‘양명학적 실학’ 등과 구별된다. 그리고 이 ‘조선 후기의 실학’이란 관용어 대신 여태까지 한국사학계에서 통용되어 오던 상례에 따라 이를 단순히 ‘실학사상’으로 명명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실학사상은 조선 초기 성리학의 학문전통과는 엄연히 구별되는 사상이었다.

383)조선 후기 실학사상에 대한 연구사적 검토는 다음의 글들이 있다.

池斗煥,<朝鮮後期 實學硏究의 問題點과 방향>(≪泰東古典硏究≫3, 1987), 103∼148쪽.

김현영,<‘실학’연구의 반성과 전망>(≪한국중세사회 해체기의 제문제≫상, 한울, 1987), 311∼337쪽.

趙 珖,<朝鮮後期 實學思想의 硏究動向과 展望>(≪金昌洙敎授華甲紀念史學論叢≫, 汎友社, 1992), 406∼443쪽.

조성을,<실학과 민중사상>(≪한국역사입문≫②, 풀빛, 1996).
384)도날드 베이커 著, 金世潤 譯,<실학개념의 사용과 오용>(≪조선 후기 유교와 천주교의 대립≫, 一潮閣, 1997, 232∼234쪽;Baker, The Use and Abuse of the Sirhak Label,≪敎會史硏究≫3, 한국교회사연구소, 1981) 참조. 이 글을 비롯하여 최근 일부 연구자들은 실학사상의 존재 자체에 의심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학사상의 존재를 서구적 관점이나 기준이 아니라 동양사상 일반이 드러내고 있는 특성에 따라 검토해야 한다. 그렇다면 실학사상의 존재형태는 對自的 존재가 아닌 卽自的 존재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존재의 의미도 충분히 인정되어야 한다.
385)尹絲淳,<實學 意味의 變異>(≪民族文化硏究≫28,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1995), 307∼317쪽.
386)鄭玉子,<眉叟 許穆 硏究>(≪韓國史論≫5, 서울大 國史學科, 1979), 205쪽.
387)李 瀷,≪星湖僿說≫ 권 27, 經史門 窮理.

尹絲淳, 앞의 글, 319∼320쪽. 이하 ‘實學’의 용례에 관한 논의도 이 글의 도움을 받았다.
388)洪大容,≪湛軒書≫외집 권 1, 與鐵橋書.
389)朴趾源,≪燕巖集≫권 4, 課農少抄 諸家摠論後附說.
390)丁若鏞,≪與猶堂全書≫1-13권, 詩文集, 俗儒論.
391)金正喜,≪阮堂集≫권 1, 實事求是說.
392)崔漢綺,≪推測錄≫권 5, 名實取拾.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