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과거제도 개혁론
관료체제의 개혁을 위한 노력은 관료충원제도의 개혁을 위한 시도와 연결되었다. 관료충원제도 개편의 방향은 왕권강화를 목표로 개편된 중앙집권체제를 운영해 나갈 새로운 관료군의 창출하는 데에 있었다. 그러므로 실학자들은 특히 과거제도 개혁론을 제안하였다. 그들이 제안했던 과거제 개혁론의 핵심은 ‘科薦合一’의 방향을 취했다.447)
관료충원제도 개혁에 관한 실학자의 견해 중 우선 이익의 견해를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종래 과거를 너무 빈설함으로써 관직 예비후보자의 과잉을 초래해 당쟁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인식해 왔다. 그래서 그는 일단 과거실시 자체를 줄이고, 이를 위해서는 5년마다 한 번씩 과거를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것 이외에 나머지 별시는 모두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개인의 재주를 기준으로 인재를 선발하는 과거제의 문제점을 보충하기 위해 재주와 덕행을 겸하여 인재를 선발하는 薦擧制의 병용을 주장했다. 이익은 이어서 선발된 관료들에 대한 공정하고 효율적인 인사관리를 위해서 담당기관으로 總章司의 설치를 주장하기도 했다.448)
홍대용은 또한 새로운 통치구조 속에서 활동하고, 국왕의 강력한 지도력을 견지할 새로운 관료선발을 위해 종래의 과거제도를 폐지하여 일종의 貢擧制를 새로운 선발방식으로 제시하였다. 지금까지 과거제도는 기억하여 외거나 훈고에 얽매어 새로운 관료군을 배출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양한 내용의 의무교육을 통해서 배출되는 인재 중에서도 능력에 따라 태학의 추천을 받아서 관리를 선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공거제의 실시 주장은 전통적인 공거제와는 내용이나 절차를 달리하는 새로운 것이었다.449)
정약용의 경우에 있어서도 나름대로의 새로운 관료제 개혁안을 제시하면서 이에 걸맞은 새로운 관료를 선발하기 위한 과거제 개혁론을 제시하였다. 정약용은 이익의 견해에 찬동하여 식년시 이외에 부정기적 시험을 모두 혁파하고, 급제자의 숫자도 줄임으로써 과거에 합격하고도 관직을 얻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는 과거제 본래의 기능을 일단 회복시키자는 목적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또한 정약용은 과거제의 실시 절차를 정비·보강하였다. 공거제를 과거시험의 1단계에서 도입하고, 小科와 大科를 통합하였으며, 마지막으로 三館의 관료들이 급제자와 경륜을 논하는 朝考를 첨설했다. 정약용은 고시과목도 대폭 증설하였다. 경학과 관련된 과목들이 시험 때마다 바뀌면서 응시생들에게 요구되는 부담이 매우 커졌으며, 중국사는 물론 우리 역사, 관료로서의 실무행정과 관련되는 雜學, 체력단련을 요하는 試射 등이 새로이 추가되었다.450)
정약용의 이러한 과거제 개혁론은 관료를 선발하는 기준을 덕행·재주 등으로 다양하게 확대하고 학교제와 과거제의 연결을 통해 관료양성과 선발을 구조화하고자 하였으며, 관료로서의 기본적 자질과 실무능력을 고양시키려는 의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