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5권 조선 후기의 문화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2. 실학의 발전2) 실학사상의 전개(3) 대외인식과 역사관의 변화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1. 성리학
          • 2) 인물성논쟁의 쟁점과 전개
          • 3) 경학의 심화
          • 4) 의리론의 전개
          • 5) 유기론과 유리론의 대두와 쟁점
        • 2. 양명학
          • 1) 양명학의 이해
        • 3. 천주교의 수용과 전파
          • 1) 천주학과 보유론적 천주신앙
          • 2) 천주신앙 실천과 초기교회의 발전
          • 3) 천주교박해와 지하교회로의 발전
          • 4) 역사적 변인으로서의 조선천주교
        • 4. 불교계의 동향
          • 1) 승단내의 수학경향
          • 5) 국가적 활동
        • 5. 민간신앙
          • 1) 도교·도참신앙
          • 2) 기타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1. 학술의 진흥
          • 3) 규장각의 학술활동
            • (1) 설치와 조직
            • (2) 학술활동
        • 2. 실학의 발전
          • 1) 실학사상의 성립
            • (1) 실학개념의 정립
            • (2) 실학사상의 형성 배경
          • 2) 실학사상의 전개
            • (2) 정치개혁론
            • (3) 대외인식과 역사관의 변화
            • (4) 경제·사회사상의 특성
          • 3) 실학의 연구과정과 성격
            • (1) 연구의 전개과정에 대한 검토
        • 3. 국학의 발달
          • 1) 국어학
          • 2) 언어학
            • (3) 근대국어의 변화
          • 3) 지리학
            • (1) 지리학 발달의 배경
            • (2) 공간관의 변화와 지도학의 발달
            • (3) 지역연구와 계통지리학의 발달
            • (4) 자연지리학의 발달과 환경에 대한 인식
          • 4) 역사학의 발달
          • 5) 백과전서학의 발달
        • 4. 과학과 기술
          • 1) 조선 후기의 전통 과학기술
          • 2) 실제 과학기술의 발달상태
          • 3) 근대 과학기술의 수용-실학과 과학기술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1. 문학
          • 1) 국문시가와 한시
            • (1) 시조
            • (2) 가사
          • 2) 서사문학
            • (1) 한문소설
            • (2) 국문소설
        • 2. 미술
          • 1) 회화
            • (2) 새로운 화법의 수용과 전개
          • 2) 서예
          • 3) 조각
            • (1) 홍성기의 조각
          • 4) 공예
            • (1) 도자공예
            • (2) 목칠공예
          • 5) 건축
        • 3. 음악
          • 1) 궁중음악의 변천과 새 경향
          • 2) 민속악과 민간풍류의 새로운 전통
            • (1) 성악의 발전
            • (2) 기악의 발전
          • 3) 악조와 음악양식 및 기보법
            • (3) 악보와 기보법의 변천
        • 4. 무용·체육 및 연극
          • 1) 무용
            • (1) 궁중무
            • (3) 민속무
          • 2) 체육
            • (1) 편사
          • 3) 연극
            • (1) 산대나희
            • (4) 민속극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대외인식과 역사관의 변화
가. 대외인식의 변화

 조선사회에서 가지고 있던 대외인식의 기본틀은 華夷觀이었다. 화이관은 송대 이후 주자학을 중심으로 한 중국사상에서 강조되던 특징으로서, 中華와 夷狄을 엄격히 구별하고 漢族왕조의 방어를 도덕적 사명으로 강조하던 정치사상이었다.455) 남송대 주자학을 수용하여 성리학으로 발전시켜 나갔던 조선 초기의 사회에서는 대외인식의 기본틀로 이 화이관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는 이에 바탕을 두고 국제정세에 융통성을 발휘하며 대응하는 사대교린의 외교정책이 구사되었다. 그리고 16세기 의리명분론적 성리학이 체계화되면서 中華=明, 小中華=朝鮮으로 파악되었고, 소중화란 개념은 조선이 가지고 있었던 문화적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대외인식에 있어서 기본틀로 작용하고 있던 화이관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화이관의 변화는 명청의 교체라는 대륙정세의 변동으로 인해서 중국 중심의 세계관인 전통적 화이관이 수정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이 화이관의 극복에는 천문과 지리지식의 확대라는 측면도 함께 자리잡고 있었다.456) 당시의 실학자들은 山海經的 지리관을 반영하고 있던 天圓地方說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중국을 설정했던 견해를 부정했다. 그리고 華와 夷의 구분 기준이 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에 있음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화이관적 대외인식의 표현이었던 소중화의식은 17세기 명·청교체라는 국제적 관계의 변화 속에서 더욱 강화되었다. ‘夷狄’의 국가인 청이 대륙을 석권한 후 조선은 중화=명, 소중화=조선이라는 틀을 더 이상 고수하기를 포기했다. 17세기 이후 조선인들은 중화로 인정되어 왔던 명의 멸망으로 오직 소중화인 조선만이 중화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단정했다. 당시 성행했던 尊周論·對明義理論은 멸망한 왕조인 명에 대한 의리의 확인을 통해서 중화문화의 유일한 보존자요 계승자인 조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던 노력의 표현이었다. 여기에서 소중화의식 혹은 小華意識은 더욱 강화되어 갔다.457) 이 의식은 당시의 현실에 있어서는 朝鮮을 중화로 보아야 한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이와 같은 조선중심주의는 조선성리학자나 실학자들이 공유하고 있었던 견해였다.

 그러나 당시 조선중심주의를 주장하던 성리학자들과 실학자들의 입장에는 차이가 있었다. 노론학계를 중심으로 하여 지속되고 있었던 성리학자들의 反淸北伐論은 청을 淸夷狄觀을 전제로 하여 전개되었다. 그들은 청조문화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이의 수용을 거부했다. 그러나 실학자들의 경우에는 이와 다른 견지에서 소중화론을 주장했다. 즉 그들은 중화의 기준이 문화에 있는 것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종래에 이적이었던 청이라 하더라도 중화가 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했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인식을 기초로 하여 성리학적 소중화의식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對淸認識의 긍정적 전개를 가능케 했다. 더욱이 당시의 청은 삼번의 난을 진압한 이후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 시기 청의 발전상은 燕行使를 통해 조선에 알려졌다. 그리하여 청의 현실과 우월한 문화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요청되고 있었고, 대중국관에 있어서 성리학자들과는 다른 새로운 입장으로의 전환이 가능했다.

 이 시기 對中國觀의 변화는 이익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는 청이 지배하는 중국을 중화문명과 동일시하여 청이적관을 청산했다. 그는 서학연구를 통해서 확인한 서양천문학의 지구설을 지지하며, 중국 중심의 천하사상을 부정하고 모든 나라의 독자성을 인정했다.458) 이러한 다원적 세계관은 문화가치의 상대화로 연결됨으로써, 결국 성리학적 소중화의식을 극복하게 되었다.

 대중국인식의 전개에 있어서 획기적 전환을 이룩한 것은 홍대용이었다. 그는 중국사행을 통해서 청의 발전상을 눈으로 확인하고 조선의 상대적 낙후성을 인식하면서 북학론을 제시하고 기존의 세계관을 바꾸었다. 그는 서양과학의 수용에 적극적이었고 그 중에서도 천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지구설뿐만 아니라 地動說에 입각한 천문학적 지식, 과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삼아, 둥근 지구에서 보면 모든 나라가 다 지구의 중심이 될 수 있으며, 중국이나 서양의 각 나라가 자기를 正界로 삼기 때문에 모두 평등하다는 국가관념을 도출하였다. 또한 그는 종래 이적이라고 불리던 민족들이 세운 국가와 문화에 대해 다원성과 독자적 가치를 옹호했다. 이러한 개방적 관점에서 그는 조선과 청의 문물을 직시할 수 있었고 청의 문물을 수용하자는 논리가 도출될 수 있었다.459)

 정약용 역시 이익의 영향을 받아 기존의 성리학적 화이관을 극복해 나갔다. 그는 우선 종래 지리적·종족적 차원의 화이관을 부정하고 문화가치를 기준으로 하는 화이관을 내세웠다. 그는 청조문화에 대한 개방적 인식을 피력하며, 赴燕使를 파견할 때 사소한 농기계로부터 천문역법에 쓰일 기계까지 들여와야 한다고 했고, 이를 위해 전담관청을 새로이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통적 화이관의 극복은 세계와 서양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박지원과 박제가는 개방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여 대외인식에 있어서 적극적이고도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했다. 이들에게 서양은 중국과 같은 또 하나의 문명세계, 과학이 발전한 이용후생의 선진국이고 경제가 발전하여 교역과 통상을 할 만한 나라로서 인식됨으로써 서양과학도 연구대상에 포함되었다. 정약용의 경우도 서학에 대해서 이해했고 서양의 과학과 기술의 우수성을 인정하여 그것의 도입과 활용에도 적극 주장했다. 또한 천주교의 천주를 원초유학에서의 상제와 동일시하여 주자학을 극복하는 논리로 차용했다.460)

 실학자들은 대외인식을 새로이 하는 과정에서 일본에 대한 재인식을 주장했다. 그리하여 이익은 일본에 대한 재인식을 강조하며, 왜란 이후 지속되었던 적개심과 日本夷狄觀에서 탈피하여 현실적인 시각으로 변화하는 일본을 연구하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일본과의 외교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문화교류를 중심으로 한 대일관계의 강화책을 제시하기도 했다.461) 李德懋(1741∼1799)의 경우에 있어서도 일본의 발전된 기술부분과 통일된 도량형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일본에서 전개되고 있었던 화폐의 전국적 유통과 해외통상의 현황 등 실용적인 측면에서 관심을 기울였고, 일본문물에 대한 선별적 수용론을 개진하기도 했다.462)

 일본에 대해 정약용은 기존의 실학자들과 달리 더욱 폭넓게 객관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는 유배지 강진에서 주자학을 비판하는 일본의 古學派 유학자들의 문집과 경전주석서를 본 것을 계기로 일본의 기술뿐만 아니라 사회제도와 문화의 발전상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일본에 대한 많은 저술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18세기 전후 조선사회에서 전개된 화이관의 극복은 대외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조선의 학인들은 전통적 중국중심론인 화이관의 극복을 통해서 조선의 존재가치와 문화적 사명을 확인했다. 이 때 조선의 성리학적 학인들은 청이적관을 고수하면서 조선의 자존과 문화적 사명을 깨달았다. 그러나 실학자들은 노론학계를 중심으로 한 이와 같은 견해를 거부하고 청이 지배하고 있던 중국문화를 새롭게 인식했다. 여기에서 그들은 북학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한 그들은 국제사회에서 국가간의 상대성·대등성·독자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실학자들의 소중화의식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성리학자의 견해와는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455)趙 珖,<朝鮮後期의 歷史認識>(≪韓國史學史의 硏究≫, 乙酉文化社, 1985), 147쪽.
456)孫承喆,<北學의 中華的 世界觀 克服>(≪論文集≫15, 江原大, 1981) 참조.
457)鄭玉子, 앞의 책(1998), 151∼153쪽.
458)李元淳,<星湖 李瀷의 西學世界>(≪敎會史硏究≫1, 1977) 참고.
459)趙 珖, 앞의 글(1979), 68∼79쪽

河宇鳳, 앞의 글(1997), 266∼267쪽.
460)李元淳,<朝鮮後期 實學者의 西學意識>(≪韓國西學史硏究≫, 一志社, 1986) 참고.
461)河宇鳳,<李瀷의 日本觀>(≪朝鮮後期 實學者의 日本觀 硏究≫, 一志社, 1989), 88∼89쪽.
462)河宇鳳,<李德懋의 日本觀>(위의 책, 198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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