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문법체계
근대국어의 문법체계는 후기 중세국어와 비교하여 볼 때, 간소화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이전의 복잡한 체계가 좀더 간단한 새로운 체계로 변화하였다. 그 몇 가지 특징을 들면 다음과 같다.
① 중세국어의 접미사 및 첨사의 복잡한 체계가 간소화되었다. 즉 다양한 교체형을 가진 이형태가 줄어들면서 그 체계가 간소화되게 된 것이다.
② 이른바 의도법의 ‘-오/우-’가 없어졌다. 중세국어에서는 동사의 어간에 ‘-오/우-’를 개입시켜 화자의 의도를 보였던 것이 근대국어에 와서 사라지게 되었다.
③ 중세국어에서 경어법이 존경법·겸양법·공손법 체계이었던 것이 존경법과 공손법의 체계로 바뀌었다. 중세국어에서는 존경법을 나타내는 ‘-시-’와 겸양법 표시의 ‘--’ 그리고 공손법을 보이는 ‘--’가 있었지만, 근대국어에서는 겸양법이 공손법에 합류되었다. 그래서 중세국어의 겸양법과 공손법의 결합인 ‘-이다’는 근대국어에서 ‘이다’나 ‘이다’로 표기되지만, 이들은 모두 공손법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④ 중세국어에서 존칭체언에 통합되던 ‘-ㅅ’이 속격조사로서의 기능을 잃고 단지 복합어 표지로서만 기능을 하게 되었다. 이 ‘-ㅅ’은 근대국어에 와서 존칭표시의 기능을 잃어버림으로써 존칭체언 아래에도 ‘-의’가 연결되고, 무정체언에 연결되던 ‘-ㅅ’만이 남아서 속격조사로서의 기능을 잃고 단지 복합어를 나타내는 표지로서의 기능만을 담당하게 되었다.
⑤ 명사화소 ‘-기’가 일반화되었다. 중세국어에서는 명사를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동사어간에 ‘-음’을 연결하였던 것이었는데, 근대국어에서는 ‘-음’은 그 기능을 ‘-기’에 넘기게 되었다. 그 결과로 ‘-음’과 ‘-기’는 그 기능을 달리하게 되었다. 즉 형태론적인 기능은 ‘-기’가 통사론적인 기능은 ‘-음’이 맡게 되었다. 현대국어에 와서는 이 기능들도 통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
⑥ 기존에 있던 조사의 형태가 소멸하였다. 그 예는 다음과 같다.
비교조사 ‘-도곤’
호격조사 ‘-하’
고대국어부터 중세국어에 이르기까지 호격조사가 평칭체언에는 ‘-아’, 존칭체언에는 ‘-하’가 연결되었으나, 근대국어에 와서 ‘-하’는 점차로 사라지게 되고, 존칭체언에도 ‘-아’가 연결됨으로써 ‘-하’는 그 기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⑦ 새로운 조사의 형태가 출현하였다. 그 몇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주격조사 ‘-가’, ‘-겨오셔’, ‘-로셔’, ‘-이셔’
비교조사 ‘-보다(가)’ 등
중세국어에서는 주격조사로서 ‘-이, -ㅣ, φ’ 등이 있었지만, ‘-φ’는 사라지고, 이 자리에 ‘-가’가 나타나게 되고, 그 결과로 현대국어에서 자음 아래에는 ‘-이’, 그리고 모음 아래에는 ‘-가’가 나타나게 되었다. ⑧ 기존 조사의 기능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 형태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탈격기능의 ‘-으로셔’가 자격표시의 기능으로 변화
탈격기능의 ‘-셔’가 주격기능으로 변화
속격조사 ‘-ㅅ’이 존칭표시의 기능 상실 ⑨ 중세국어에 보였던 동사어간의 유리적 성격이 없어졌다. 예컨대 ‘눈 디니이다’는 후대에 ‘눈 더니이다’로 표기되는데, 이것은 ‘’이 지니고 있던 부사적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 데에 기인하는 것이다. ⑩ 이른바 이중주어문 가운데 두번째 명사구가 교호적 자질을 지닌 용언어휘에 통합될 때에는 두번째 주어구문의 조사는 공동격조사로 변화하였다. 예컨대 ‘다, 다다’ 등은 “NP이 NP이 다(다다)”의 문장구성을 가지는데, 근대국어에 와서 이들은 “NP이 NP와 다(다다)”로 변화하였다. ⑪ 19세기 말에 인칭대명사의 1인칭에 겸칭인 ‘저’가 발생하였다. 이 ‘저’는 중세국어에서 재귀대명사로 사용되던 ‘저’가 전용된 것으로 보인다. ⑫ 이 시기에는 국어의 피동법과 사동법 중에서 이른바 장형피동·장형사동이라는 ‘-어 디(지)다’와 ‘-게 다’가 매우 생산적으로 사용되어서, 현대국어에 이어지게 되었다.504) ⑬ 시제의 선어말어미 ‘-겟-’이 등장하였다. 이 ‘-겟-’은 19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사역형인 ‘-게 엿’의 ‘’가 생략되어 ‘-게엿’이 되고 다시 모음충돌로 ‘여’가 탈락하여 ‘-겟’이 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선어말어미 ‘-리-’와 함께, 추정과 의도를 나타내는 것이었으나 점차 미래시제를 표시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추정과 의도표시의 ‘-리-’는 미래표시의 어미로 변화하지 못하였다.505) ⑭ 근대국어의 조사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이른바 후치사의 격지배변동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예:-를브터>-으로브터, -를조차>-으로조차, -를>-으로, -를더브러>-으로더브러>-와더브러 등). 이들은 대부분 타동사로부터 문법화된 후치사들이다. 그래서 중세국어에서는 대격조사를 지배하였지만, 이들 동사가 완전히 문법화됨으로써 타동사적 성격을 상실하게 되면서부터 격지배의 변동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 결과로 대격조사를 버리고 조격조사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원래 심층구조상에서 복문적 구조를 가지던 것이 단문적 구조를 가지는 문장으로 변화하는 기제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즉 [NP1이 NP2를 VP] S1 + 어 + [NP1이 VP] S2의 구조를 NP1이 NP2로 VP의 구조로 변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중세국어에서부터 비롯되었지만, 완성된 시기는 근대국어에서였다.506) ⑮ 어순의 변화 및 문장구조의 변화로 조사의 기능에 영향을 준 것으로 ‘-셔’를 들 수 있다. 탈격기능의 ‘-셔’는 주로 NP1이 NP2셔 V(특히 ‘나다’)의 어순을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국어에 와서 NP2셔 NP1 V의 구조로 바뀌게 된다. 즉 행동주가 문장의 앞에 와서 주어가 되는 것이다. 중세국어의 문장구조 유형과 근대국어의 문장구조 유형상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그 결과 탈격기능의 ‘-셔’가 주격기능을 보이게 된 것이다. 현대국어에서 ‘-께서’와 통합되는 동사들의 대부분이 동작동사인 점도 근대국어에서의 이러한 변화에 기인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셔’가 어느 지정된 인물에 한하여 붙여지는 현상도 이러한 문장구조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16) 근대국어에서 속격조사는 ‘-의’가 아닌 ‘-에’로도 표기되어, 현대국어에서 속격조사 ‘-의’를 ‘-에’로 발음하는 단초를 마련하고 있다. 이것은 ‘-엣’>‘-에’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즉 근대국어에서 속격조사를 ‘-에’로 표기한 대부분의 예들은 NP1엣 NP2의 구조를 보이는 것들이었다(예: 귀옛골희>귀예골희>귀골희, 南道엣 사>南道에 사 등). 그리고 이 ‘-엣’은 그 의미에서 ‘소유·소재’를 나타내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엣’이 소유와 소재의 기능과 의미를 가진 속격조사 ‘-의’와 통사론적으로 중화된 것이다. (17) 어휘형태소가 문법형태소로 변화하는 현상이 나타나서 어휘가 재구조화되는 특징을 보인다. ‘보다’(視)가 비교표시의 조사로 사용되게 되었거나, ‘겨오셔’가 존칭체언에 붙은 조격조사의 뒤에 어휘형태소로 사용되다가(-으로 겨오셔), 조격조사가 떨어져 나가고 ‘겨오셔’ 단독으로 체언에 직접 통합되어 극존칭의 주격조사로 사용되었다거나 하는 것들이 그러한 예다. 이들 어휘형태소들 중 문법형태소로 변화한 것들의 상당수는 그 사용빈도수가 매우 높고, 또 보조동사로 사용되었던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