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덕수궁 석조전
조선의 궁궐의 하나인 덕수궁에는 여러 양관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는데 한양절충형의 靜觀軒(1900년 이전), 惇德殿(1900년 초), 重明殿·石造殿(1901년) 등이 그것이다.
석조전(사적 124호)518)은 1900년(광무 4) 당시 총세무사로 있던 영국인 브라운(Brown, 柏卓安)의 발의로 상해의 건축기사 하딩(G. R. Harding)을 초청, 설계를 의뢰하고 내부장식을 영국인 로벨(Lovell)이 맡도록 하였다. 초기 감독관은 한국인 沈宜碩과 러시아인 사바틴(Sabatin), 일본인 오카와(小川) 등이었다.
기초공사에는 창의문 부근의 세검정 화강석을 이용하였고, 2, 3층은 동대문밖 염풍정 화강석을 썼다. 시멘트와 유리는 영국상사 홉링거에서 수입하였으며, 모래는 광화문 우체국 앞 하천으로부터 공사장까지 레일을 놓아 운반하였다. 특히 2층 바닥에 ㄷ자형 철강재를 가더방향으로 촘촘히 깔고, 그 위에 시멘트모르타르로 마감한 것이 1989년 보수할 때 밝혀졌는데, 이들 철강재 또한 영국의 수입자재로 판단되었다.
총 3개층 1,200여 평으로 2층에 응접실과 홀, 3층에 고종황제와 황후의 침실들과 거실을 두었고, 반지하 1층에는 시종들의 거실을 두었다.
건축양식은 세장한 이오니아식(Ionic order) 주두의 원기둥을 세우고 정면 페디먼트에 후일 李皇室의 문장인 오얏꽃을 새겨 넣은 신고전주의양식이다.
518) | 윤일주, 앞의 책, 56∼6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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