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화산 천주교회당과 대구 계산동성당
華山天主敎會堂(사적 318호)524)은 김대건신부가 중국에서 1845년(헌종 11)에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주교, 다블뤼신부와 함께 황산나루터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1906년 봄에 착공하여 같은 해에 준공을 본 것으로 추측되는 목조건물이었다. 그 후 1916년 종각을 덧붙여 건립하면서 목조벽체를 헐고 벽돌벽으로 개조하였는데 이 지방 벽돌로 중국인들이 쌓았다고 한다. 1922년에는 요셉 까다르(Josepus Cadars)신부가 바깥기둥 밑부분을 돌기둥으로 바꾸었다.
평면은 장방형으로 본랑과 측랑없이 중앙에 일정한 간격으로 기둥들을 세워 보를 받치는데, 본래에는 이 기둥들에 간막이를 두어 남녀 신도석을 구분하였다고 한다. 바닥은 장마루이고 천장은 판자로 마감하였다. 제대가 있는 곳은 반원아치(Rounded arch)로 천장을 받치고 있다. 정면은 잘 다듬은 석재로 기초부를 이루고, 그 위에 벽돌쌓기의 종탑부를 두었다. 종탑부의 모서리는 후렛버트레스(Flat buttress)가 직교되게 하였다. 본당의 지붕은 합각을 형성한 팔작지붕으로 한식 기와를 얹었고, 지붕 아래에는 팔각 채광창을 두었는데 이는 분명 팔괘의 상징이라 생각된다.
특히 양 측면에는 개방된 회랑이 있는데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 연등천장을 이루어 도리, 보와 더불어 한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성당은 천주교가 이 땅에 정착하면서 서양식 성당건축을 짓지 않고, 한국 전통적인 목조건축과 조화되도록 한양절충양식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뜻을 가진다.
한편 대구 桂山洞聖堂(사적 290호)525)은 로마네스크식과 고딕식을 절충한 양식건축으로 건립되었다. 본래 초가삼간을 성당으로 사용하다가 십자형 목조성당을 1899년 준공하였으나 1900년 화재로 소실되어, 1902년에 현재의 성당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초대 본당신부인 로베르토(Achille Paule Roberto, 1853∼1922)가 설계하고 중국인이 시공을 맡았다고 한다. 1918년 12월 24일에는 증축낙성식이 있었는데 이 때의 시공자는 중국인 姜義寬이라고 한다.
평면은 라틴십자형으로 본랑과 양 측랑으로, 본랑의 폭은 측랑 폭의 2배를 이루고 있다. 본랑 천장은 뾰족아치형의 배럴볼트(Barrel vault)이고, 측랑 천장은 원통형 볼트로 되어 있다. 본랑과 측랑의 경계부는 족주(簇柱, clustered pier)를 두고, 반원아치로 마감하였다. 후진(Apse)은 5각형이고 반원아치의 아케이드(Arcade)를 형성하고 있다. 천장과 벽체는 붙임기둥(Pilaster)으로 마감하여 그것의 흰색과 족주·아치·리브·창틀 등의 흑벽돌색은 좋은 대조를 이루어 더 한층 아름답다.
서측 정면의 양측에는 2개의 종탑을 두었는데 이 종탑부에는 각각 8각의 첨탑을 두어 마무리하였다. 화강석쌓기의 기초부위에 흑색 벽돌과 붉은 벽돌로 벽체를 쌓고, 후렛버트레스를 창들 사이에 등간격으로 두었다. 정면 중앙의 12장 꽃잎 장식으로 이루어진 圓花窓과 좌우 트란셉트(Transept)의 원화창은 고딕적인 맛을 더해주고 있다.
한 가지 부언할 것은 제대 뒤쪽에 ‘루르드 성모동굴’을 입체적으로 구성한 것은 한국내 성당 중에서 귀중한 실례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