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 新文化의 輸入
【紳士團과 領選使】 鎖國 朝鮮은 이리하여 門戶를 開放하고 同時에 外國의 新文化를 輸入하기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 高宗 十八年 辛巳(國紀 西紀 1881)라는 해는 조선 開化運動史上에 있어서 特書할만한 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이 해에 紳士遊覽團이라하여 朴定陽 魚允中 趙準永 趙秉稷 沈相學 洪英植 等 十餘名의 紳士를 日本에 보내어 새로운 文物制度를 視察케 하고 또 한편으로는 金允植을 領選使로 삼아 六十九名의 靑年學徒를 이끌고 淸國 天津에 가서 모든 新機械에 關한 知識을 배우게 하였던 까닭이다. 이들의 遊覽과 留學은 결국 淸日 兩國을 通하여 西洋의 新文化에 接觸하여 그것을 배워드리는데 큰 使命이 있었던 것이다.
【制度改革】 이와 同時에 안으로 舊制度를 多少 改革하여 議政府에 統理機務衙門이라는 것을 (淸國에 모방하여) 새로히 두고 그 밑에 여러 機關을 公設하였으며 또 軍制를 고치어 武衛 壯禦의 두 營門을 新設하고 日本人 堀本禮造를 초빙(招聘)하여 新式訓鍊을 베풀고 한편으로 서울의 兩班 子弟 中에서 優秀한 사람을 뽑아 士官生徒라 이름하여 역시 日本式 敎練을 받게 하였다.
【開化派 守舊派】 그러나 이때 國內에는 各界를 通하여 新舊의 對立이 생김을 免치 못하였으니 新文化에 理解를 가진 사람은 開化派라 指目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이를 守舊派라 하여 그 사이에 暗鬪와 反目이 생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