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역대 국사교과서第三編 近世(李氏朝鮮)近世의 後期(國紀 4058年-4243年 英祖元年-純宗末)

第十二章 民衆의 自覺과 새 運動

【政治學術團體亂立】 國內 한편에는 一進會와 같은 賣國奴的 反逆分子의 준동(蠢動)도 있었지마는 다른 한편에는 참된 民族的 意識과 自覺에서 불타오른 여러 가지의 새 運動이 마치 비 끝에 대순과 같이 일어났다. 政治團體로는 憲政硏究會 大韓自彊會 大韓協會 등이 前後하여 생기고 敎育文化團體로는 國民敎育會 興士團 靑年會 및 地方名을 띠운 各 學會 ─ 즉 西北學會(平安·黃海·咸鏡) 畿湖學會(京畿·忠淸) 湖南學會(全羅) 嶠南學會(慶尙) 關東學會(江原)의 諸 學會 ─ 가 생기어 民衆의 新敎育과 啓蒙運動에 많은 貢獻을 하였다. 이러한 各 地方學會는 본래 學術을 위주함 보다도 地方的 色彩를 띄고 있었으므로 각기 勢力 다툼에 분주하여 對立과 暗鬪가 繼續되어 나쁜 影響을 社會에 끼침이 적지 않았다.

【學校設立】 그러나 民間의 敎育熱은 이러한 團體의 일어남을 따라 더욱 높아져 서울 시골을 물론하고 無數한 私立學校가 前後하여 세워졌으니 오늘 서울의 普成 養正 徽文의 諸 男子學校와 進明 叔明의 두 女學校는 다 이때에 시작된 것이며 (培材 梨花의 두 男女學校는 이보담 오래전에 宣敎師들의 손으로 세운 것) 地方學校로는 平壤의 大成學校 江華의 普昌學校 等이 한때 이름을 날리었다.

【獨立新聞發刊】 言論機關으로는 建陽 元年 丙申(國紀 4229 西紀1896)에 徐載弼이 美國으로부터 돌아와서 創刊한 獨立新聞이 조선 신문의 처음이었지만 그 뒤를 이어 皇城新聞 等이 나와 모두 韓國의 獨立을 强調하고 日本의 政策을 攻擊하였고, 그 후 大韓每日申報도 發刊되어 排日思想을 북도다 주었다. 이 每日申報는 英國人 裵說과 梁起鐸이 시작한 것으로 오늘의 「서울신문」의 始祖가 되거니와 어떻게 심히 排目을 부르짖었든지 統監府는 英本國에 交涉하여 그를 上海로 逐放하였으나 그 뒤에도 梁起鐸이 中心되어 더욱 붓 끝을 날카롭게 하여 이를 계속하였다.

【國文普及】 自覺的 文化運動 結果로 또 新文體와 國文으로된 雜誌와 書籍이 이어 나오고 新小說이 出版되었으며 外國文學의 번역도 몇 가지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리말과 歷史에 대한 새로운 硏究를 하는 學者도 나오게 되어 오늘의 語文整理와 歷史硏究에 많은 가르침을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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