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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우리 문화와 예술에 관련된 수많은 주제들이 언급되고 있으나 대부분 시대별로 간략히 서술되어 그 개념과 변천 과정, 성격 등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영상 문화·예술이야기>는 한국사 속 문화·예술 분야의 주요 주제별로 그 흐름과 변천 과정, 특징과 성격 등을 전문가의 해설을 기반으로 동영상 자료로 제작하여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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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조선시대 도자 문화의 중심이었던 단아한 매력을 지닌 백자.
양난 이후, 숙종에서 영·정조에 이르는 시기에 더욱 찬란한 꽃을 피웠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 높이 40cm 이상의 커다랗고 둥근 백자 항아리. 흔히 ‘달항아리’라 불리는 ‘대형 백자원호’입니다. 당시 항아리만 아니라 일부 병, 접시까지 대형화되는 경향성과 백자 제작 기술의 발전이 뒷받침되어 만들어진 순백의 달항아리,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크고 둥근 항아리를 발이나 접시처럼 물레 위에서 한 번에 빚어내면 도자기 그릇의 몸체를 이루는 흙의 무게로 인해 성형이나 번조 과정에서 주저앉기도 하는 문제가 있었는데요. 이에 위, 아래 동체를 따로 제작한 다음, 이어 올려붙이는 상하접합 방식으로 제작됐습니다. 특히 상하부를 접합하는 과정은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그래서 달항아리를 자세히 보면 접합 흔적이 남아 있고요. 전체적으로는 둥글지만 한쪽으로 살짝 일그러지는 등 완벽한 대칭이 아닙니다.

이렇다 보니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수십 점의 달항아리 모두 모양이 조금씩 다릅니다. 이처럼 온전히 둥근 모양이 아니라도 크고 순백의 항아리를 만들 수 있는 건 성형 방법뿐 아니라 질 좋은 백토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전국 각지의 백토 중 최선의 원료를 선별해 사용했는데, 품질이 좋은 백토 덕에 형태를 만들 때 주저앉는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하고 새하얀 색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백의 미와 둥근 조형미를 갖춘 달항아리,과연 어디에 활용됐던 걸까요?

아직 정확히 입증된 것은 없지만 과거 상황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유물이 있습니다. 굽 주변에 남아 있는 새겨진 글씨로 영조의 이복동생인 연령군 처소 주방에서 사용된 항아리라는 뜻입니다. 이에 달항아리는 왕실이나 관청의 주방에서 사용된 일상의 용기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용기에서 예술품으로 - 한국의 美, 달항아리

유려한 곡선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운 풍만함. 한국만의 독특한 미감을 갖춘 달항아리, 지금은 뛰어난 예술품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당시 중국, 일본에서 유행하던 정교하고 화려한 채색 자기와 달리 소박함과 간결함을 고수, 내면의 아름다움에 치중하는 독자적인 길을 간 것도 달항아리에 특별함을 더했고요.

20세기 화가와 사진작가들에 의해 달항아리에 담긴 우아하고 서정적인 한국의 미가 재해석되면서 예술적 가치를 확보해나간 것입니다. 이렇듯 달항아리는 현재에 이르러서까지도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에 등장하고 미술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재해석되고 재탄생되고 있는 달항아리.
앞으로도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더욱 높아지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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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 : 박정민
시나리오, 구성 : 임승연
검수 : 조은정, 명재림, 서명원
성우 : 배하경
촬영 : 윤수원
종합편집 : 박인준, 이승신
녹음, 음악 : 조동효
로고 : 민승욱
촬영, 자료 협조 : 국립중앙박물관, 국제갤러리, 보현박물관, 환기미술관, 도예가 김종영, 서양화가 이정애
PM : 윤종원, 김기원
행정 : 김상희
연출 : 김기원

해설

백자 달항아리

달항아리는 높이가 40㎝를 웃도는 조선 후기 둥근 백자 항아리의 별칭이다. 둥근 백자 항아리를 사랑스럽게 부르던 달항아리라는 이름은 현재 국가지정 문화유산의 정식 명칭으로 활용되고 있다. 보통 달항아리라 하면 동체가 보름달처럼 둥글며, 굽 지름에 비해 구연부의 지름이 넓어 약간의 상승감을 주는, 문양이 없는 큼지막한 백자 항아리를 일컫는다.

백자 달항아리는 우선 항아리의 동체를 이룰 두 개의 반구형 사발을 만든 후, 맞붙이는 방식으로 성형한다. 백자 달항아리 같은 큰 그릇은 만드는 도중에 그릇 자체의 무게 때문에 형태가 일그러질 수도 있다. 그릇의 위아래를 따로 만든 후에 접합하는 접동(接胴) 방식을 사용하면 이러한 문제를 줄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상하(上下) 부분을 따로 제작한 다음에 이어 붙이는 편이 큰 항아리를 한 번에 빚어 올리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편리한 방법이기도 하다. 백자 달항아리는 이러한 성형 방식으로 인하여 동체의 중간에 그릇을 이어 붙였던 흔적이 남아있으며, 좌우가 완벽한 대칭을 이루지 않고 살짝 일그러진 형태가 많다.

달항아리는 크고 둥근 백자 항아리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는 이름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의 박물관에서도 한글 이름을 그대로 번역하여 ‘Moon jar’라고 부른다.

둥글고 큰 백자 항아리가 달항아리로 불리게 된 과정은 20세기 문인, 화가, 미술사학자 등의 안목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특히 김환기(金煥基, 1913~1974)와 최순우(崔淳雨, 1916~1984)가 백자 항아리에 달의 이미지를 더하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환기는 다양한 백자 항아리가 지닌 매력에 깊게 빠져 있었다. 그는 특히 크고 둥근 백자 항아리의 모습을 보름달에 견주어 ‘달항아리’로 부르며 늘 곁에 두고 감상했다. 김환기는 백자 달항아리를 중요한 소재로 삼아 그림을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글로도 남겼다. 김환기와 교류했던 문인과 예술가 또한 달항아리라는 이름을 공유했다.

국가유산청은 2011년 〈국가지정 동산문화재 지정명칭 변경〉을 통해 기존의 ‘백자호’ 혹은 ‘백자대호’ 대신에 ‘백자 달항아리’를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대중이 가진 백자 달항아리에 대한 생각을 반영하고, 여기에 더해 해당 문화유산이 지닌 문화 아이콘으로서의 효용성을 높이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현재 국가지정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조선 후기 백자 달항아리는 7점이다. 그중에 국보는 3점이며, 나머지 4점은 보물이다. 7점의 백자 달항아리의 높이는 대체로 41~49㎝ 정도이다.

조선시기 백자 항아리는 국가의 의례와 잔치에서부터 개인의 식생활에까지 널리 쓰였는데, 『세종실록』 「오례」나 각종 의궤를 살펴보면 주해(酒海), 준(樽 혹은 尊), 항(缸) 등으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기 백자 항아리는 포괄적인 쓰임만큼이나 크기와 모양이 다양했지만, 형태의 차이에 따라 위아래로 길쭉한 입호(立壺)와 동체가 둥근 원호(圓壺)로 나눌 수 있다.

조선시기에는 쓰임에 따라 입호와 원호가 두루 쓰였으며, 주로 숙종(肅宗, 재위 1674~1720) 시절에 해당하는 17세기 말에는 둥근 항아리 가운데 크기가 큰 달항아리도 만들어졌다. 달항아리는 18세기 영조(英祖, 재위 1724~1776) 시기에도 지속해서 제작되었다.

백자 달항아리는 대체로 경기도 광주에 자리한 관요(官窯)에서 만들어졌다. 조선 후기 백자 달항아리의 구연부와 비슷한 백자편이 광주의 신대리(新垈里), 궁평리(宮坪里), 금사리(金沙里) 등 주로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전반에 운영된 관요 가마터에서 확인되고 있다. 조선 후기 백자 달항아리는 시기에 따라 구연부(주둥이)의 모습이 달라진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제작된 백자 항아리의 구연부는 대부분 사선으로 벌어진다. 또한 구연부의 가장자리 외측선은 각이 졌으며, 내측선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반면, 18세기를 지나면서 제작된 백자 항아리들의 구연부는 주로 직립하는 낮은 원통형으로 만들어지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숙종 연간인 17세기 말 조선 정부는 당시 다수의 일반 사대부가 이미 관요 백자를 사용했던 현실을 반영해 관요에서 일반에 백자를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후 관요는 왕실과 관청은 물론 일반을 위한 백자를 만들었다.이 시기 관요는 백자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전국 여러 고을에 관리와 사기장을 파견하여 다양한 백토의 특징을 조사하고 그중 적절한 원료를 파악해 관요 백자 생산에 활용했다. 관요 백자가 다양한 백색을 나타내는 것은 전국 각지의 백토를 조합하여 만들었던 당시 상황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백자 달항아리들 역시 비슷한 모양임에도 약간씩 다른 백색을 나타낸다.

백자 달항아리는 희고 둥근 단순한 형태지만, 그 속에 미묘한 변주(變奏)가 흐르는 모습이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끈다. 오늘날 낭만적인 이름을 얻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된 달항아리는 애초에 감상을 위한 작품은 아니었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크고 둥근 백자 항아리는 주로 왕실과 일부 사대부 집안의 일상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특별한 용도라기 보다는 식재료 등 무언가를 담는 항아리 고유의 용도로 쓰였던 것이다.

조선 후기에 관요의 질 좋은 백자를 사용할 수 있었던 왕실과 일부 사대부는 투박한 질그릇 항아리가 아닌 순백의 우아한 백자로 값지고 큼지막한 항아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크고 둥근 백자 항아리는 20세기를 지나며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되어 크나큰 예술적 가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단행본

  • 유홍준, 2017, 『안목』, 눌와
  • 최순우, 2015,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학고재

논문

  • 강태춘, 2019, 「백자 달항아리 제작기법 연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유산융합대학원 석사학위논문
  • 김규림, 2019, 「조선 17~18세기 백자원호(白磁圓壺)의 조형과 성격」, 『한국문화연구』36,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 박정민, 2021, 「조선 후기 백자문화의 특징, 대형 백자원호」,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국립현대미술관
  • 윤용이, 2005, 「조선 백자 항아리의 세계」, 『백자 달항아리』, 국립고궁박물관
  • 장남원, 2014, 「순백의 항아리_기술과 조형으로 왕조의 이상理想을 구현하다」, 『백자호』Ⅰ, 호림박물관

보고서

  • 경기도자박물관, 2008, 『광주 신대리 18호 백자가마터』
  • 경기도자박물관, 2020, 『광주조선백자요지 (사적 제314호) 6차 발굴조사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