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4장 왕실의 권위와 상징물2. 궁중 의례궁중 의례에서 나타나는 왕실의 권위

사후에도 이어진 왕의 권위

왕실의 권위를 높이는 작업 중 추숭(追崇) 작업도 주목된다. 조선시대에는 국왕과 왕비, 왕세자, 왕세자빈, 대왕대비를 추대하거나 국가적 경사가 있을 때 왕실 구성원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존호(尊號)를 더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새 존호를 올린 것을 기념하여 의궤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현재 우리는 조선시대 국왕인 영조, 정조, 순조(21대왕)의 호칭이 모두 조(祖)라고 알고 있지만, 원래 사후에 붙인 묘호(廟號)는 영종, 정종, 순종이었다. 그러나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에 역대 왕의 존호를 올리는 과정에서 영조, 정조, 순조라 하여 호칭을 높인 것이다. 대개 조(祖)는 창업한 군주, 종(宗)은 수성(守成)한 군주에게 붙이는 묘호이다. 따라서 종보다 조를 격이 높다고 인식하였다. 고종 때 영조, 정조, 순조로 묘호를 고친 것 역시 이들에게 창업한 만큼의 공이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조선 왕실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것이었다. 고종은 선왕들에 대한 묘호 추숭 작업을 통해 한편으로는 황제로 격상한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려 한 것이다.

현재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는 대한제국 시기 왕실 존호 추숭과 관련된 의궤가 다수 남아 있다. 1899년(고종 26)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영조의 묘호와 시호를 고쳐 올리고 영조와 영조비의 존호를 추가로 올린 과정을 기록한 『영조묘호도감의궤(英祖廟號都監儀軌)』, 1866년(고종 3) 2월부터 4월까지 문조·신정 왕후·헌종·효정 왕후(孝定王后)·철종·철인 왕후(哲仁王后)에게 존호를 추상한 과정을 기록한 『문조삼존호헌종철종재존호도감의궤(文祖三尊號憲宗哲宗再尊號都監儀軌)』, 1899년에 태조·장조·정조·순조·익종을 황제로 추존하고 아울러 왕후를 황후로 추존한 과정을 기록한 『태조장조정조순조익종추존의궤(太祖莊祖正祖純祖翼宗追尊儀軌)』 등이 그것이다. 이들 의궤에는 대한제국 시기 조선 왕실에서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선조들에 대한 추숭 작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한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이제까지 왕실의 일상, 특히 궁중 의례에 나타난 삶을 중심으로 왕의 권위가 표현되는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궁중 의례는 대부분 왕실의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최대한의 품위와 격을 갖추었다. 의례의 전모를 의궤라는 기록물로 남긴 것 역시 최대한 예법에 맞게 의식을 진행하면서 왕실의 권위를 대내외에 과시하고자 함이었다. 엄숙하게 진행되는 예법 속에서 왕실의 권위는 커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 신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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