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2장 조선시대 성리학의 발전1. 성리학의 수용과 발전

조선 초기의 성리학

조선시대의 성리학 발달은 유교를 국시(國是)로 하던 조선 왕조에서 자연스럽게 전개된 추세였다. 왕조 개창 이래 200여 년간 평화가 지속되었고, 새로운 농업 기술이 도입되어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달하였다. 학술과 문화를 담당하는 양반 지배 계층으로서는 안정되고 윤택한 사회 환경이 조 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는 문치주의(文治主義)에 입각하여 학문과 문화를 장려하였다. 그리하여 15세기 중반부터 많은 문화적 업적이 이루어졌다. 성리학의 연구도 이러한 추세를 타고 크게 발달할 수 있었다.

<권근의 천인심성합일지도>   
권근이 성리학의 핵심이 되는 태극, 천명, 이기, 음양, 오행, 사단칠정(四端七情) 등 주요 개념을 하나의 그림으로 도해한 것이다. 천인심성합일지도는 훗날 정지운의 천명도에 기초를 제공하였고,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 논변을 촉발한 단서가 되었다.

조선 초기 이래 완만하게 축적되어 왔던 조선 유학계의 성리학 연구는 세종조의 황금 문화기를 지나면서 결실을 맺었다. 15세기 초에 활동한 정도전과 권근의 경학(經學)이나 성리학에 대한 이해는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정도전은 이기론(理氣論)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불교를 비판하였고, 학자지남도(學者指南圖) 같은 성리학 입문서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권근의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과 『오경구결(五經口訣)』 그리고 『입학도설(入學圖說)』은 당시 최고의 경학 수준과 성리학 이해를 보여 준다. 특히 『입학도설』의 천인심성합일지도(天人心性合一之圖)는 훗날 정지운(鄭之雲, 1509∼1561)의 천명도(天命圖)에 기초를 제공하였고, 이황과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의 사단칠정 논변(四端七情論辨)을 촉발한 단서가 되었다.

또한 길재-김숙자(金淑滋, 1389∼1456)-김종직(金宗直, 1431∼1492)으로 이어진 재야 사림의 전통은 도학을 천명하고 의리 명분을 강조하는 학풍을 조성하여 후대 성리학자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고, 사림파(士林派)라는 정치 세력을 형성하는 뿌리가 되었다. 그리하여 16세기가 되면 본격적으로 성리학의 철학적 연구가 이루어지고 도학 정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 나타나게 되었다.

[필자] 이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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