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와 소중화, 그리고 『조선부』
[필자]
이정란
명나라 사람들은 조공-책봉 체제를 바탕으로 ‘중화’와 ‘이적’이라는 상하 차별적 시각에서 조선을 바라보았다. 따라서 조선의 문화를 자국의 문화보다 하위로 파악하며 폄하(貶下)하였다. 그것은 몽골인의 인식과 달랐다. 원나라가 문명의 극치를 달리고 있을 때 원나라 사람들 역시 고려 문화의 저열성을 비판하고 때로는 경멸하는 어조를 내비치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부적 ‘타자화(他者化)’의 범주였다. 고려는 몽골 황제가 다스리는 몽골 제국에 포섭되어 있는 존재였기 때문에 고려의 문화는 자국의 문명성을 평가하는 잣대이기도 하였다. 그에 비해 명나라 사람에게 조선은 번병(藩屛)이지만 분명 타자였다. 따라서 조선은 명 태조의 말처럼, “자신이 알아서 성교(聖敎)를 펼치면 그만일 뿐”인 존재였고, 자신은 이런 조선에게 원나라가 그랬듯이 천자국으로서 ‘일시동인’이나 ‘천하동문(天下同文)’이라는 원론적 논리를 내세우면 될 뿐이었다.
물론 명나라 사람의 사고가 거기에서 멈추었던 것은 아니다. 외국을 적극적인 교화 대상으로 보기도 하였다. 따라서 때로는 화이론에 의거하여 ‘용하변이적(用夏變夷的)’ 대외관을 견지하였다. 즉, 중화의 나라(夏)로 오랑캐를 바꾸는, 다시 말해 문명국인 ‘화’의 입장에서 조선을 교화한다는 의식을223) 전면에 내세우기도 하였다.
[필자]
이정란
223) | 도현철, 「원명 교체기 고려 사대부의 소중화 의식」, 『역사와 현실』 37, 한국 역사 연구회, 2000, 105∼106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