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야생식물의 채취
대부분의 수렵채집인들은 주어진 생태적 조건에 따라 동물성·식물성식료를 적절히 배합하여 취득하고 있으며, 식물성식료가 주식을 차지하고 있는 수렵채집인들도 의외로 많다. 그러나 식물에는 날로 먹을 경우 사람이 소화시키기 힘든 부분이나 유독성분을 갖고 있는 것이 많다. 이 경우 불이나 물을 이용하여 유독성을 제거, 먹을 수 있게 가공하여야 하는 추가비용이 들어간다. 따라서 도토리나 곡류와 같이 가공과 요리에 시간과 노동이 많이 들어가는 식물성식료는 대형동물이 전멸되거나 감소된 후빙기 이후 집중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보아 북반부 중위도지대의 Oak-belt에는 도토리를 산출하는 참나무류가 급증한 중석기와 신석기시대에 도토리를 비롯한 견과류가 집중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 나라도 양양 오산리, 서울 암사동, 하남 미사리, 합천 봉계리, 평양 남경 등의 신석기유적에서 도토리가 출토되어 도토리가 신석기인들의 중요한 식량이었음을 보여준다.671)
도토리는 칼로리와 영양가가 곡류 못지 않게 높으나 대부분은 타닌에서 나오는 떫은 맛을 제거하기 위한 특수처리가 필요하며, 우리 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가열처리와 물우리기가 이용되고 있다.672) 신석기시대에 토기가 출현하게 된 배경을 도토리류의 타닌제거와 연결시키는 주장도 있다.673) 우리 나라에서 주로 이용되는 상수리나무·떡갈나무·속소리나무 등의 낙엽수 도토리는 밥이나 떡처럼 粒食하는 경우 가열처리와 물우리기를 동시에 이용하나, 국수·전·묵 등 가루와 녹말을 이용하는 粉食의 경우는 제분과 물에 우리는 것만으로 떫은 맛을 우려 낸다. 한국의 선사유적에서 출토되는 것은 모두 낙엽광엽수의 도토리674)로 따라서 입식할 경우는 가열처리와 물우리기가 병용되고, 분식할 때는 물우리기가 이용되었을 것이다.
신석기시대에는 石展石이 성행하고 있기 때문에 물우리기에 의한 도토리분식이 존재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고고학적 증거로 볼 때 우리 나라에서 연석이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즐문토기문화의 단계부터이며, 융기문토기와 압문토기가 사용되는 先즐문토기단계인 상노대도 1·2문화층, 동삼동 하층, 오산리, 서포항 1·2기에서는 연석이나 叩石이 출토되고 있지 않다.675) 따라서 분식보다 입식이 먼저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 죠몬시대에서는 도토리가루로 만든 쿠키모양의 음식물이 발견되고 있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실물증거가 없으며, 봉계리유적676)에서는 도토리열매가 모두 화덕자리 주변에서 토기와 함께 공반되고 있어 오히려 입식의 가능성도 보여준다.
부언하면 물우리기법은 열매나 가루를 그대로 또는 마대 속에 넣어 물에 며칠 이상 담가 놓으며, 가열처리법은 불에 장시간 가열하여 익히는 법으로 일본의 경우 재를 이용하기도 한다. 물우리기는 동아시아의 상록광엽수림대에 주로 분포하는 가공기술의 일부로 마나 서류 등 전분이 많은 根莖植物의 전분을 물속에 가라앉혀 채취하는 기술체계의 일부로 존재한다고 한다.677)
도토리 외의 나무열매로는 봉계리유적에서 호두(가래나무과 왕가래나무), 살구(또는 매실)와 보리수과 열매가 검출되었으며, 신석기시대 후기와 초기 철기시대에 형성된 한강 하류 일산지역의 토탄층678)에서도 졸참나무와 함께 가래·감·개살구·사과속 등의 식용나무가 발견되었다.
이 밖에 토란(芋)·마(薯)·칡 등의 야생 根莖類의 역할도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되지만 나무열매와는 달리 보존이 안되고 분석도 어렵기 때문에 아직은 고고학적으로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기 곤란하다. 참고로 1944년 일본에서 편찬된 한 저서679)에는 총 851종의 한반도산 야생식용식물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평소 식용되는 것이 304종, 유사식용종이 213종이다. 상용되는 식물 중 7할은 초본류고 나머지는 나무류이며, 서식지별로 보면 246종이 산과 들에서 채취된 것이다. 채소용으로 이용된 각종 나물류의 줄기나 잎·뿌리를 먹는 것이 260종으로 가장 많고, 산딸기·개살구·다래 등 과육을 먹는 것이 40종, 도토리·밤 등 種實이 16종이며, 기타 꽃과 꽃가루·나무껍질 등도 이용되었다. 이들 구황식물의 대부분은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되기 어려운 줄기나 잎·뿌리이지만 신석기시대 식료로도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671) | 渡邊 誠,<鳳溪里遺跡出土の植物遺體>(≪考古歷史學志≫5·6, 東亞大 博物館, 1990), 475∼48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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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2) | 辻 稜三,<韓國のおけるドングリの加工と貯藏に關する硏究>(≪季刊人類學≫16-4, 講談社, 東京, 1985), 117∼150쪽. ――――,<東アジアの堅果食 I>(≪朝鮮學報≫132, 朝鮮學會, 東京, 1989), 145∼190쪽. 渡邊 誠,<韓國におけるドングリ食>(≪名古屋大學文學部硏究論集≫XCV. 史學 32, 名古屋, 1986), 1∼19쪽. |
673) | 渡邊 誠,<繩文土器の形と心>(≪葉町歷史民俗資料館紀要≫1, 1992), 1∼6쪽. ――――,<죠몬토기의 기능과 발달>(≪’93 제2회 문화재연구 국제학술대회논문집≫, 문화재연구소, 1993), 19∼26쪽. |
674) | 渡邊 誠, 앞의 글(1990), 477쪽. |
675) | 池健吉·安承模,<韓半島 先史時代出土 穀類와 農具>(≪韓國의 農耕文化≫, 京畿大 博物館, 1983), 73쪽. |
676) | 李東注,<陜川鳳溪里出土の食用植物遺體>(≪季刊考古學≫38, 雄山閣, 1992), 86∼88쪽. |
677) | 佐々木高明,≪日本史誕生-日本の歷史①≫(集英社, 東京, 1991), 139∼142쪽. |
678) | 박상진,<나무화석>(≪일산새도시개발지역 학술조사보고≫1, 한국선사문화연구소·경기도, 1992), 112∼130쪽. |
679) | 林泰治,≪救荒植物と其の食用法≫(京都書籍, 京都, 19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