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Ⅱ. 고조선2. 고조선의 변천4) 한사군의 설치와 그 변천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1. 한국 고대의 정치발전 단계론
        • 2. 국가 형성 이론의 한국사 적용문제
        • 3. 초기국가의 성격
          • 1) 국가 기원 및 형성이론
          • 2) 군장사회와 국가
      • Ⅱ. 고조선
        • 1. 고조선의 국가형성
          • 1) 고조선의 건국신화
          • 2) 동이족과 그 문화권
            • (1) 지석묘문화
            • (2) 비파형청동단검문화
          • 3) 고조선의 주민과 예맥
          • 4) 고조선의 건국연대
          • 5) 고조선의 위치와 강역
            • (1) 고조선의 위치문제
            • (2) 문헌에 나타난 고조선의 영역
        • 2. 고조선의 변천
          • 1) 고조선사회의 국가적 성장
          • 2) 위만조선의 성립과 변천
            • (1) 위만조선의 성립
            • (2) 위만조선의 국가적 성격
          • 3) 위만조선과 한의 전쟁
          • 4) 한사군의 설치와 그 변천
            • (1) 한사군의 설치와 구성
            • (2) 한사군의 성격과 변천
        • 3. 고조선의 문화와 사회 경제
          • 1) 고조선 전기와 청동기문화
            • (1) 비파형동검 이전의 청동기문화
            • (2) 비파형동검시기의 고조선문화
          • 2) 후기 고조선과 철기문화(기원전 4∼2세기)
            • (1) 기원전 4세기 고조선지역
            • (2) 기원전 3∼2세기의 철기문화
          • 3) 고조선의 사회경제
            • (1) 사회성격
            • (2) 경제성격
      • Ⅲ. 부여
        • 1. 부여의 성립
          • 1) 부여사의 성격
          • 2) 부여의 기원과 건국설화
            • (1) 부여 명칭의 기원
            • (2) 부여족의 기원
            • (3) 부여의 선주민문화와 한대 부여문화
            • (4) 건국 연대
          • 3) 부여의 영역과 지리적 특성
            • (1) 3세기 부여의 영역
            • (2) 부여국 왕성의 위치
        • 2. 부여의 성장과 대외관계
          • 1) 부여의 성장
            • (1) 부여의 기원(부여·북부여·동부여)
            • (2) 부여의 성장
          • 2) 부여의 대외관계
            • (1) 고구려와의 관계
            • (2) 중국과의 관계
            • (3) 부여의 쇠퇴와 부흥운동
        • 3. 부여의 정치와 사회
          • 1) 중앙과 지방의 통치조직
            • (1) 중앙통치조직
            • (2) 지방통치조직
          • 2) 사회와 경제
            • (1) 신분제도
            • (2) 법률과 형벌
            • (3) 경제생활
        • 4. 부여의 문화
          • 1) 신앙과 제의
          • 2) 생활 풍습
          • 3) 예술-건축, 공예, 기타
      • Ⅳ. 동예와 옥저
        • 1. 동예의 사회와 문화
          • 1) 동예의 위치와 변천
          • 2) 동예의 사회와 문화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1) 옥저의 위치와 변천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Ⅴ. 삼한
        • 1. 삼한의 정치와 사회
          • 1) 진국과 삼한
          • 2) 삼한의 정치
            • (1) 소국의 정치권력
            • (2) 소국연맹체의 형성
          • 3) 삼한의 경제와 사회
            • (1) 농경생활
            • (2) 교역활동
            • (3) 계층 분화
        • 2. 삼한의 문화
          • 1) 삼한의 생활과 풍속
          • 2) 삼한의 유적과 유물
            • (1) 철기
            • (2) 토기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한사군의 성격과 변천

 한사군의 설치는 앞서 검토한 바와 같이 중국의 직접적 통제를 위한 것이 라기보다는 위만조선 사회내부의 지배세력 재편과 연결되어 나타난 정치변화로서 親中國勢力이 중심이 된 정권재편의 일환이었다.

 한사군의 변화는 屬縣의 규모와 소속의 변동을 통하여 파악할 수 있다. 즉≪한서≫지리지에는 낙랑군에 25개의 현이 있었다고 되어 있는데 이같은 속현의 수는 한의 昭帝 始元 5년에 임둔군과 진번군을 파하여 낙랑과 현도에 편입시킨 이후의 것이다. 더욱이 소제 元鳳 6년에는 현도군이 관할 토착민들의 반발에 의해 그 치소를 옮기고 있다.

한 무제 元封 2년 조선을 벌하여 滿의 손자인 右渠를 죽이고 그 땅을 나누어 4군으로 만들었는데 옥저성으로 현도군을 삼았다. 후에 이맥들의 침입을 받아 군을 句麗의 서북으로 옮겼으니 지금 이른바 현도고부가 그 곳이다. 옥저는 다시 낙랑에 속하였다(≪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東沃沮).

 즉 기원전 108년 설치되었던 한사군 중 기원전 82년에 임둔군과 진번군이 폐지되어 낙랑군과 현도군에 합쳐졌고 기원전 75년에는 현도군이 고구려의 서북지역으로 쫓겨갔으며 옥저의 경우 낙랑에 속하는 등의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후한 건무 6년(기원후 30)에는 옥저지역의 東部都尉가 폐지되었으며≪後漢書≫지리지에 나타나는 낙랑군의 18성이라는 기록은 계속적인 축소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한군현이 토착사회의 강력한 반발에 의해 실질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축출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후 한군현 관련 기록은 거의 나타나지 않다가 후한 말 요동지역에서 자체 역량을 강화하던 공손씨가 韓濊 등에 대한 세력강화를 목적으로 후한 헌제의 建安연간(196∼220)에 낙랑의 屯有縣 이남지역에 帶方郡을 설치함으로서 기록에 다시 나타난다.≪晋書≫地理志에는 낙랑군에 6개 현이, 대방군에 7개의 현이 배속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어 이들의 영역이 계속 축소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낙랑군과 대방군은 고구려의 성장과 공격으로 313∼314년 사이에 각각 소멸되었다.

 한군현은 물론 후대 사료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중국의 통제와 관리의 파견 등에 의해 직접적 통제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파악되기도 한다. 그러나 낙랑을 제외한 3군이 설치된 후 20여 년만에 폐지되거나 축출되었다는 사실은 이들 군현이 기왕의 고조선 전체지역을 실질적으로 장악하여 직접 통제를 한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즉 이들 가운데 낙랑군만이 위만조선의 일부지역에 한정된 영향력을 행사했을 뿐이다. 또한 그 존속기간이 길었던 낙랑군에 대해서도 종래에는 초기의 낙랑군의 성격이 소멸될 때까지 시종일관 유지된 것으로 이해하여 왔다. 그러나 낙랑군은 중국의 직접통치를 받는 군현적 성격을 띄기도 하였지만 그러한 성격은 전한시대에 한정되며, 이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은 중국계 유이민집단의 자치도시적 성격을 갖고 있는 존재였다. 즉 종래 이들 군현의 성격에 대해 일인학자들은 중국의 직접지배에 의한 통제를 상정하여 한군현의 성격을 중국의 식민지라는 측면에서 이해하였다. 그러나 한군현의 성격을 이같이 볼 수는 없으며 이들은 중국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던 유이민집단의 자치도시이거나 무역을 위한 조계지와 같은 성격의 존재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유력하다.288)

 한편 고구려의 大武神王대에 멸망한 樂浪國의 존재를 통해서도 한사군의 성격의 일단을 유추할 수 있다. 즉 고구려는 대무신왕 20년(37)에 崔理의 낙랑국을 멸망시켰는데289) 이는 낙랑이 중국 군현으로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독립적 정치체로서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리의 낙랑국은 기왕에 있었던 낙랑군이 종래에 이해되어온 것처럼 중국의 직접적 통제방식에 의해 유지되어 온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즉 초기의 군현 설치시기에 구상되었던 통제방식이 실효를 거둘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결국 土着社會의 자립적 성장이 이를 대치하였고, 이들이 고구려의 세력확장에 밀리게 되면서 결국 고구려에 복속되었던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기왕에 확보되었던 중국의 교두보 상실이었으며, 비록 직접적 통제지역은 아니었지만 계속 성장하는 고구려에 대한 견제세력의 상실과 함께 한반도 중남부지역에서 성장하는 백제 및 신라 등에 대한 통제기반의 몰락이었다. 그러자 後漢의 光武帝는 이들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시키기 위하여 곧 군현을 부활시켰다(44).

가을 9월 後漢의 光武帝가 군사를 보내어 바다를 건너와서 樂浪을 치고 그 지역을 탈취하여 郡縣을 삼으니 薩水 이남이 한나라에 속하게 되었다(≪三國史記≫권 14, 高句麗本紀 2, 大武神王 27년).

 이같은 후한의 대처는 이후 고구려의 요서진출 등 적극적 대응에 의해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후한은 그 대신에 한반도 중남부지역의 백제 등의 韓사회에 대한 통제로 정책을 선회하여 한사회의 君長들에게 爵號와 의복과 印綬 등을 지급하였다. 이와 관련된 당시 상황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례가 廉斯鑡설화이다. 즉 王莽의 地皇年間(20∼23)에 辰韓 右渠帥인 염사치가 낙랑의 땅이 비옥하여 사람들의 생활이 풍요롭고 안락하다는 소식을 듣고 낙랑지역으로 투항하려 하였다는 것이다. 염사치가 그 과정에서 만난 진한의 포로노예로 있던 중국인 好來 등 1,500명의 존재와, 建武 20년(44) 韓廉斯人 蘇馬諟가 낙랑군을 찾아 韓廉斯邑君으로 봉해진 사실 등은290) 후한과 이들간에 상당한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중국 군현이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세력의 성장에 의한 갈등증대로 인하여 주된 관심의 대상을 韓濊세력으로 바꾸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桓帝·靈帝 말기에 한예가 강성하여 漢의 군현이 이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였다는 점과, 公孫氏에 의한 帶方郡의 설치 및 景初年間(237∼239)에 대방태수와 낙랑태수를 파견하여 두 군을 평정한 사건 등은 이같은 사실을 잘 나타내준다. 특히 辰韓의 臣智가 部從事 吳林과의 대립으로 대방군 崎離營을 공격하여 대방태수 弓遵이 전사한 사실은 이같은 갈등의 대표적 사례이다.

 요컨대 한군현은 초기 고조선지역 및 고구려 등의 세력에 대한 통제와 견제를 목적으로 설치되어 직접적인 지배를 기도하였으나, 이같은 초기의 목적은 점차 토착사회의 반발과 공격에 의해 대부분이 축출·쇠퇴되고 그 성격마저도 토착사회와 병존하면서 중국계 유이민의 자치세력 또는 中繼貿易의 중심지 등과 같은 형태로 유지되었다. 특히 후한대에는 고구려 등의 성장에 의해 더 이상 기왕의 고조선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韓·濊·倭 등의 세력과 朝貢貿易 등의 중계지로서 기능하면서 점차 그 세력이 축소·해체되었다. 그러므로 낙랑 등의 존재는 정치적 의미에서 평가되기보다는 文化中繼地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 그 의의를 두어야 할 것이다.

<金貞培>

288)金元龍,<三國時代의 開始에 關한 一考察-三國史記와 樂浪郡에 대한 再檢討->(≪東亞文化≫7, 1967 ;≪韓國考古學硏究≫, 一志社, 1987, 525∼533쪽).
289)≪三國史記≫고구려본기에 나타나 있는 낙랑의 복속과정에 보이는 樂浪王 崔理는 독립적 정치세력의 왕으로 되어 있음이 주목된다.
290)≪後漢書≫권 85, 列傳 75, 東夷 韓.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