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Ⅱ. 고조선3. 고조선의 문화와 사회 경제2) 후기 고조선과 철기문화(기원전 4∼2세기)(2) 기원전 3∼2세기의 철기문화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1. 한국 고대의 정치발전 단계론
        • 2. 국가 형성 이론의 한국사 적용문제
        • 3. 초기국가의 성격
          • 1) 국가 기원 및 형성이론
          • 2) 군장사회와 국가
      • Ⅱ. 고조선
        • 1. 고조선의 국가형성
          • 1) 고조선의 건국신화
          • 2) 동이족과 그 문화권
            • (1) 지석묘문화
            • (2) 비파형청동단검문화
          • 3) 고조선의 주민과 예맥
          • 4) 고조선의 건국연대
          • 5) 고조선의 위치와 강역
            • (1) 고조선의 위치문제
            • (2) 문헌에 나타난 고조선의 영역
        • 2. 고조선의 변천
          • 1) 고조선사회의 국가적 성장
          • 2) 위만조선의 성립과 변천
            • (1) 위만조선의 성립
            • (2) 위만조선의 국가적 성격
          • 3) 위만조선과 한의 전쟁
          • 4) 한사군의 설치와 그 변천
            • (1) 한사군의 설치와 구성
            • (2) 한사군의 성격과 변천
        • 3. 고조선의 문화와 사회 경제
          • 1) 고조선 전기와 청동기문화
            • (1) 비파형동검 이전의 청동기문화
            • (2) 비파형동검시기의 고조선문화
          • 2) 후기 고조선과 철기문화(기원전 4∼2세기)
            • (1) 기원전 4세기 고조선지역
            • (2) 기원전 3∼2세기의 철기문화
          • 3) 고조선의 사회경제
            • (1) 사회성격
            • (2) 경제성격
      • Ⅲ. 부여
        • 1. 부여의 성립
          • 1) 부여사의 성격
          • 2) 부여의 기원과 건국설화
            • (1) 부여 명칭의 기원
            • (2) 부여족의 기원
            • (3) 부여의 선주민문화와 한대 부여문화
            • (4) 건국 연대
          • 3) 부여의 영역과 지리적 특성
            • (1) 3세기 부여의 영역
            • (2) 부여국 왕성의 위치
        • 2. 부여의 성장과 대외관계
          • 1) 부여의 성장
            • (1) 부여의 기원(부여·북부여·동부여)
            • (2) 부여의 성장
          • 2) 부여의 대외관계
            • (1) 고구려와의 관계
            • (2) 중국과의 관계
            • (3) 부여의 쇠퇴와 부흥운동
        • 3. 부여의 정치와 사회
          • 1) 중앙과 지방의 통치조직
            • (1) 중앙통치조직
            • (2) 지방통치조직
          • 2) 사회와 경제
            • (1) 신분제도
            • (2) 법률과 형벌
            • (3) 경제생활
        • 4. 부여의 문화
          • 1) 신앙과 제의
          • 2) 생활 풍습
          • 3) 예술-건축, 공예, 기타
      • Ⅳ. 동예와 옥저
        • 1. 동예의 사회와 문화
          • 1) 동예의 위치와 변천
          • 2) 동예의 사회와 문화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1) 옥저의 위치와 변천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Ⅴ. 삼한
        • 1. 삼한의 정치와 사회
          • 1) 진국과 삼한
          • 2) 삼한의 정치
            • (1) 소국의 정치권력
            • (2) 소국연맹체의 형성
          • 3) 삼한의 경제와 사회
            • (1) 농경생활
            • (2) 교역활동
            • (3) 계층 분화
        • 2. 삼한의 문화
          • 1) 삼한의 생활과 풍속
          • 2) 삼한의 유적과 유물
            • (1) 철기
            • (2) 토기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나. 기원전 3∼2세기의 세형동검문화

 기원전 3∼2세기의 평양지역은 요동-서북지방과는 달리 세형동검문화가 지속되며 銅戈·비수·수레부속 등이 출현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 시기의 유적으로 토성이 있는데, 현재까지 於乙洞토성, 雲城里토성, 淸山里토성 등이 알려져 있어서 위만조선 및 낙랑군의 지방행정 구역을 보여준다. 무덤으로는 움무덤과 나무곽무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여 석관묘나 적석총이 다수를 차지하는 전시기와 차이를 보여준다. 이 토광묘유적들은 흔히 낙랑군의 토광묘와 혼동하기 쉬우나, 세형동검과 수레부속 등의 유물은 낙랑군 이전부터 존속했던 것을 보여준다.

 토광묘유적에서 낙랑의 것과 위만조선의 것을 어떻게 분리할 것인가가 큰 문제가 된다. 이와 관련하여 토광묘의 연대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에서는 이 지역의 토광묘의 변천을 크게 움무덤-나무곽무덤-부부합장된 나무곽무덤-귀틀무덤으로 보고 있다.326) 북한에서는 나무곽무덤을 기원전 2세기 중엽에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327) 북한의 편년을 전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위만조선시기에도 나무곽무덤이 쓰여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주장은 위만조선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부정하기 위해서 움무덤-나무곽무덤-귀틀무덤이 자체적으로 발전한다고 보기 위한 편년이므로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328)

 북한에서 위만조선 이전 시기에 쓰여진 나무곽무덤으로 생각하는 대표적 유적으로는 台城里유적이 있다. 태성리의 경우 나무곽무덤 내지는 움무덤과 같은 용어가 사용되기 이전에 토광묘라는 이름으로 발굴이 되었지만 유물상을 통해서 나무곽무덤 여부를 가릴 수는 있다. 태성리에 대해서 나무곽무덤의 일반적 특징인 화분형단지-배부른단지의 유형이 보이는 8·9·10·11·15·16호분 등은 비낙랑계의 유물로 위만조선시기의 것이라고 보고,329) 아울러 위만조선의 묘제 역시 낙랑시기에 남겨진 것과 비슷한 중국의 이주민이 남긴 장방형의 單葬목곽묘일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330) 그런가 하면 태성리를 낙랑설치 이후로 보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어서331) 논란이 되고 있다.

 이상의 논란을 정리한다면 과연 낙랑군 이전 즉 위만조선시기에 나무곽무덤이 존재했겠는가의 문제로 압축된다. 이 문제는 단지 묘제만으로는 고찰할 수 없고, 유물을 통해서 고찰해야 할 문제이다. 고조선의 재래의 전통이 남아있는 대표적 유물로는 세형동검을 들 수 있다. 세형동검은 전시기인 비파형동검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알려지는 고조선 후기의 대표적 유물이다. 물론 세형동검은 낙랑군 설치 이후에도 일부 무덤에 쓰여지긴 했지만 퇴화된 형식으로 유물의 부장칸에 부장된 것이다.332) 이 글에서는 기원전 3∼2세기의 문화를 세형동검문화로 설명하였는데 여기에서의 세형동검문화는 전형적인 세형동검이 부장된 움무덤 2기와 나무곽무덤 1기를 포함하는 것이다(<표 2>·<표 3>).

1 기 고산리, 정봉리, 천곡리 세형동검, 놋비수, 세문경 기원전

5∼4세기
2 기 솔뫼골, 반천리, 석산리 전형적인 세형동검, 세형동모, 과, 철부 기원전

3∼2세기

<표 2>움무덤의 편년표333)

나무곽무덤 1기 전형적인 세형동검, 철부, 마구, 수레구, 화분형단지, 배부른단지 부덕리, 정백동96호, 갈현리 태성리9호 기원전

2세기中∼末
2기 쇠단검, 쇠장검, 철부, 마구, 수레구, 화분형단지, 배부른단지 정백동1호·92호, 토성동4호, 복사리2호, 태성리8호, 운성리3호 기원전

2세기末∼1세기中
3기 쇠장검, 고리달린쇠칼, 철제농구, 약간의 마구, 수레구, 화분형단지, 배부른단지, 회색단지, 백색단지 정백동80, 81, 36, 49호,

태성리6호, 운성리4호
기원전

1세기中∼1세기末

<표 3>나무곽무덤 편년표334)

 기원전 3∼2세기의 움무덤과 나무곽무덤 1기와의 관계를 보면 철기의 수가 증가했으며 움무덤 2기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던335) 수레부속이 증가하고, 나무곽무덤 1기에서는 전시기에 보이던 세형동모가 보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세형동검문화에 대해서 4기의 문화로 보는 견해가 있다.336) 이에 의하면 1단계는 세문경과 戈가 출토되나 수레부속은 나오지 않는 것으로 솔뫼골·반천리·석산리 등이 있다. 2단계는 마구와 수레부속이 출토되고 세문경과 과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東大院里 許山·천주리·당촌무덤 등이 있다. 3단계에는 청동기와 철기가 비슷한 비율로 발견되고 4단계부터는 철기가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이 분류에서 기원전 3∼2세기의 위만조선 및 그 관련 문화는 1·2단계이며, 3·4단계는 나무곽무덤의 사용이 본격화되는 시기, 즉 낙랑군 설치 이후의 문화 단계로 보여진다.

 細形銅鉾는 길이가 짧고 너비가 넓은 1식, 길이가 넓고 너비가 좁은 2식이 선후관계를 보인다. 이 밖에 청동거울은 粗文鏡과 細文鏡으로 나뉘는데, 조문경에서 세문경으로 발전하였다. 이 시기의 특징적 유물이라 할 수 있는 마구와 수레부속은 주로 뒷시기에 많이 출토된다. 이 밖의 청동유물로 검파두·검집·동과·꺽창 등이 발견되었다. 철기는 주로 무기·마구·수레부속류가 주류를 이룬다. 토기는 주거유적의 경우는 발견예가 없어서 알기 어려우나 토광묘에서는 화분형단지와 배부른단지가 조합을 이루어서 발견된다.

 이들 유적의 편년 근거는 상한의 경우 서북지방 출토인 을형·병형의 명도전 연대가 기원전 3세기이고 하한이 기원전 2세기 말인 점과, 나무곽무덤의 변천에 따르면 단장에서 부부합장으로 바뀌는 시기를 가지고 고조선의 멸망과 시기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에서 위만조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데에 있다. 즉 고조선은 멸망할 때까지 요하유역에 중심지가 있었던 것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이를 따르면 청천강 이남지역의 세형동검 및 명도전의 분포에 대한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 이의 해결방안으로 북한은 청천강 이남지역은 상대적인 독자성을 지닌 고조선 소국의 영역으로 해석하고, 낙랑유적 역시 위만에게 망한 고조선의 일족이 만든 것으로 본다.337) 이 점은 현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326)남한의 견해를 보면 金元龍은 土壙墓-土壙木槨墓-木槨墓(낙랑시대 고분군)로 보았고, 林炳泰는 土壙木棺墓(움무덤)-土壙木槨墓(나무곽무덤)-大形木槨墓(木室墳, 귀틀무덤)이며 木槨墓와 木室墳의 차이는 單葬과 合葬에 따른 구조적인 차이라고 보았다. 이 밖에 신용민은 木槨墓를 토광묘라는 개념에 종속시켜 파악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묘제의 등장으로 파악할 것을 주장하였다.
327)최택선·이란우, 앞의 책, 112쪽.

이순진,<우리나라 서북지방의 나무곽무덤에 대한 연구>(≪고고민속론문집≫8, 1983).
328)崔秉鉉,≪新羅古墳硏究≫(一志社, 1990), 564∼565쪽.
329)田村晃一,<いわゆる土壙墓群について-台城里土壙墓群の再檢討を中心として>(≪考古學雜誌≫50-3, 1965).
330)田村晃一,<樂浪地域の木槨墓>(≪三上次男頌壽記念論集≫, 1980).
331)西谷正은 서북지방 토광묘에서 보이는 유물상을 전국시대의 영향이 보이는 A, 한나라의 영향이 보이는 B로 나누었는데, 한나라의 영향이 미치는 낙랑설치 이후에도 A식이 함께 공존했다고 보았다(西谷正,<朝鮮におけるいわゆる土壙墓と初期金屬器について>,≪考古學硏究≫13-2, 1966).
332)대표적인 예로 귀틀무덤인 정백동 2호무덤을 들 수 있다.
333)북한의 편년에 따른 것이다(안병찬,<우리나라 서북지방의 이른시기 좁은놋단검관계 유적유물에 관한 연구>,≪고고민속론문집≫8, 1983).
334)이순진, 앞의 글.
335)1956년 정오동에서 발견된 움무덤에서는 삿갓형동기와 전형적인 세형동검이 나온 예가 있으며, 북청군 하세동리에서 발견된 움무덤에서도 수레부속인 놋방울이 발견된 예가 있다(사회과학출판사,≪고고학자료집≫4, 1974).
336)박진욱, 앞의 책.
337)이순진·장주협, 앞의 책에서는 평양지역의 문화를 마한의 문화로 간주하였지만, 곧 발간된≪고조선문제연구론문집≫에서는 이러한 견해가 수정되어 고조선의 일파가 세운 일소국으로 바뀐 이래 지금까지 이 설이 통용되고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