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Ⅱ. 고조선3. 고조선의 문화와 사회 경제3) 고조선의 사회경제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1. 한국 고대의 정치발전 단계론
        • 2. 국가 형성 이론의 한국사 적용문제
        • 3. 초기국가의 성격
          • 1) 국가 기원 및 형성이론
          • 2) 군장사회와 국가
      • Ⅱ. 고조선
        • 1. 고조선의 국가형성
          • 1) 고조선의 건국신화
          • 2) 동이족과 그 문화권
            • (1) 지석묘문화
            • (2) 비파형청동단검문화
          • 3) 고조선의 주민과 예맥
          • 4) 고조선의 건국연대
          • 5) 고조선의 위치와 강역
            • (1) 고조선의 위치문제
            • (2) 문헌에 나타난 고조선의 영역
        • 2. 고조선의 변천
          • 1) 고조선사회의 국가적 성장
          • 2) 위만조선의 성립과 변천
            • (1) 위만조선의 성립
            • (2) 위만조선의 국가적 성격
          • 3) 위만조선과 한의 전쟁
          • 4) 한사군의 설치와 그 변천
            • (1) 한사군의 설치와 구성
            • (2) 한사군의 성격과 변천
        • 3. 고조선의 문화와 사회 경제
          • 1) 고조선 전기와 청동기문화
            • (1) 비파형동검 이전의 청동기문화
            • (2) 비파형동검시기의 고조선문화
          • 2) 후기 고조선과 철기문화(기원전 4∼2세기)
            • (1) 기원전 4세기 고조선지역
            • (2) 기원전 3∼2세기의 철기문화
          • 3) 고조선의 사회경제
            • (1) 사회성격
            • (2) 경제성격
      • Ⅲ. 부여
        • 1. 부여의 성립
          • 1) 부여사의 성격
          • 2) 부여의 기원과 건국설화
            • (1) 부여 명칭의 기원
            • (2) 부여족의 기원
            • (3) 부여의 선주민문화와 한대 부여문화
            • (4) 건국 연대
          • 3) 부여의 영역과 지리적 특성
            • (1) 3세기 부여의 영역
            • (2) 부여국 왕성의 위치
        • 2. 부여의 성장과 대외관계
          • 1) 부여의 성장
            • (1) 부여의 기원(부여·북부여·동부여)
            • (2) 부여의 성장
          • 2) 부여의 대외관계
            • (1) 고구려와의 관계
            • (2) 중국과의 관계
            • (3) 부여의 쇠퇴와 부흥운동
        • 3. 부여의 정치와 사회
          • 1) 중앙과 지방의 통치조직
            • (1) 중앙통치조직
            • (2) 지방통치조직
          • 2) 사회와 경제
            • (1) 신분제도
            • (2) 법률과 형벌
            • (3) 경제생활
        • 4. 부여의 문화
          • 1) 신앙과 제의
          • 2) 생활 풍습
          • 3) 예술-건축, 공예, 기타
      • Ⅳ. 동예와 옥저
        • 1. 동예의 사회와 문화
          • 1) 동예의 위치와 변천
          • 2) 동예의 사회와 문화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1) 옥저의 위치와 변천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Ⅴ. 삼한
        • 1. 삼한의 정치와 사회
          • 1) 진국과 삼한
          • 2) 삼한의 정치
            • (1) 소국의 정치권력
            • (2) 소국연맹체의 형성
          • 3) 삼한의 경제와 사회
            • (1) 농경생활
            • (2) 교역활동
            • (3) 계층 분화
        • 2. 삼한의 문화
          • 1) 삼한의 생활과 풍속
          • 2) 삼한의 유적과 유물
            • (1) 철기
            • (2) 토기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고조선의 사회경제

(1) 사회성격

 기록에 등장하는 위만조선의 인물로는 衛滿과 右渠를 비롯하여 裨王 長·朝鮮相 路人·韓陰·大臣 成己·將軍 王唊·尼谿相 參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위만조선의 행정 및 군사를 담당한 고위관료들로 보인다. 이 밖에 조선상 노인의 아들 最라는 사람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서 상류층내에서도 신분의 세습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위만조선에서 상류층과 평민으로 구분되는 세습 신분층이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사회구조와 관련하여 당시의 인구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기록을 보면 歷谿卿과 함께 망명한 2천 호, 濊君 南閭의 28만 명 등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들은 적어도 서너 개 이상의 부족으로 이루어진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기원전 108년에 한 무제에 의해서 한사군이 설치된 이후의 상태를 기록한≪漢書≫地理志에 나타나는 요동, 현도, 낙랑의 인구는<표 4>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물론 위만이 멸망한 후로 상당수의 중국의 이민이 있는 등 여러 변동이 있었겠지만, 이것은 위만조선의 인구수를 추측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後漢書≫의 경우는<표 4>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도군의 경우 호구당 27.1명으로 불합리한 측면이 보이며, 세 군의 전체 인구수의 합계만 이미 180만 명이나 된다는 점도 의문스러운 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구통계의 난맥상은 현도군과 같은 변방의 지역에 대한 정보가 소략한 탓일 가능성이 크며, 위만조선의 경우는 일찍이 중국과의 교류가 있어왔기 때문에 위만조선지역에 대한 인구수에 대해서는 비교적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위만조선지역은 낙랑군지역과 일치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낙랑군의 인구수와 위만조선의 인구수는 대차가 없을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한서≫지리지에서는 낙랑군이 25현 62,812호로 406,748명이라고 하였고,≪후한서≫에서는 18성 61,492호 257,050명이라 하였다. 이러한 자료를 종합하면 위만조선 당시의 인구는 25∼30만 명 정도 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遼東郡과 玄菟郡 등은 아마도 위만조선 주위의 여러 소국을 포괄한 것으로 보여진다.

군이름 시 기 戶 數 人 口 數 縣·城數 懸當 人口數 戶當 人口數
한 서 후한서 한 서 후한서 한서 후한서 한 서 후한서 한 서 후한서
요동군 55,972 64,158 272,539 81,714 18 11 15,141 7,429 4.9 1.3
현도군 기원전

107년
45,006 1.594 221,845 43,163 3 6 73,949 7,194 4.9 27.1
낙랑군 기원전

108년
62,812 61,492 406,748 257,050 25 18 16,270 14,281 6.5 4.2

<표 4>≪한서≫및≪후한서≫에 보이는 인구통계표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예군 남려의 망명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예군 남려의 예에서도 28만 명이 망명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인구수가 나와 있다.338) 그것은 이들 지역이 한나라와 직접적인 교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기록이나 수치가 과장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튼 낙랑군만의 인구를 위만조선의 경우와 대비시켜 본다면, 물론 추측이므로 그대로 믿기 어렵다 하더라도 상당히 많은 인구가 존재했음은 확실하며, 그들을 통제하기 위한 복잡한 사회조직이 이루어졌을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들 기록에 나타나는 지도자들 밑에는 각각 800∼3,000명 정도의 부족이 있었으며, 그 밑으로는(요즈음의 가장 기본단위인 리나 읍과 같은) 군집(band)의 단위로 이루어진다. 각각의 군집과 같은 가족공동체는 40∼70명 정도의 주민들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된다.339)

 이러한 많은 인구를 지닌 사회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이 필요했을까.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번째로 법의 존재이고, 두번째로는 강력한 군사력의 존재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약 30만 정도로 추정되는 인구를 가진 고조선사회는 매우 복잡하였을 것이며, 법의 존재는 이러한 사회조직의 일단면을 보여주는 유력한 증거가 된다.≪한서≫지리지에 따르면 고조선에는 箕子가 만든 八條禁法이 있었는데, 이것이 후에 한나라의 영향이 미치면서 풍속이 어지러워져 60여 조의 법령이 제정되었다고 한다. 한편≪후한서≫동이전 濊條에서도 비슷한 기록이 보인다. 이러한 기록들로 비추어 볼 때 위만조선에 들어서면서 사회가 복잡해지고 중국과의 관계도 빈번해지면서 여러 가지 법이 제정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 제정되었다는 8조금법은 만민법(jus gentium)적인 성격을 띄고 있었으나, 위만조선의 국가형성 단계에 와서 사회가 복잡해지고 여러 법령이 제정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늘어난 법은 8조금법처럼 공동체에서 자연적으로 지켜지는 만민법이 아니라 복잡한 사회에 따른 여러 가지 인위적인 규정들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러한 법률을 시행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군사력과 경찰력이 합법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법의 강제적 집행을 위한 군사력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고학적으로 발견되는 무기로 보아 충분히 갖추었으리라 여겨진다.

 결론적으로 위만조선이라는 국가는 단일 요소가 아닌, 복합적인 여러 요소의 결합으로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340) 즉 뒤에서 설명할 장거리무역을 통하여 부를 축적하였으며, 인구증가와 그로 인한 내부적인 긴장과 갈등은 곧 토지확장과 확보, 무력에 의한 인근 부족의 정복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그러한 정복은 막강한 군사력을 뒷받침으로 한 것이며, 특히 그러한 바탕이 된 것은 철제 무기의 사용인 것으로 보여진다. 철제 무기의 사용은 비록 고고학적 증거에서 명확하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철제 무기를 만들기 위한 전문인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즉 원료확보를 위한 광산의 개발과 원료의 운반 및 제련에 전문직을 필요로 하였음이 분명하다. 또한 위만조선지역에서 발견되는 車馬具는 이들이 군사력으로 말을 이용했음을 나타낸다. 말을 키우고 먹이는 데 필요한 마장과 조련사의 확보와 같은 부수 조건도 필요하였을 것이다. 아울러 군사를 두기 위해서는 다수의 군사를 먹이기 위한 잉여식량의 확보와 이를 위한 집약적 농경, 철제 농기구의 사용, 오늘날의 품앗이와 같은 농업협동체계의 활용 등이 필요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341) 이와 같은 국가의 발달로 증가하게 된 인구는 사회를 복잡하게 했으며, 그에 따라 율령의 조목이 증가하고 군사력으로 통제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조공로 및 무역로의 통제 및 이에 따른 중간이익의 획득과 이를 운영하는 행정관료의 역할, 마차의 사용과 이에 따른 신분의 상징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한 징병 및 징수가 있었을 것이며, 하부구조체제를 이루는 현과 같은 행정체계 및 특산물의 진상 등 이러한 여러 요인들이 체계이론에서처럼 서로 관련을 맺어 위만조선의 국가형성이라는 결과를 낳은 것으로 보여진다.

 국가가 형성되기 위한 중요한 요소로는 인구증가, 전쟁, 토지의 확장, 전문직의 발생, 신분계층의 분화, 행정관료의 존재, 징세 및 징병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모든 요소를 위만조선 관계 기사 및 그에 상응하는 고고학적 자료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국가의 정의」에 부합될 수 있는「직업적인 계급」을 가진「중앙관료 정부」와「무력의 합법적인 사용」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춘 위만조선은 초기에 주위의 유이민집단을 흡수해 나간 정복국가였으며, 衛滿-子-右渠-長의 4대 87년간 왕위를 세습하면서 더욱 완벽한 국가체제를 갖추었으리라 보여진다.

338)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濊와 그밖의 소국은 족장사회단계로 짐작되는데, 족장사회에서 이렇게 많은 인구를 거느릴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339)이러한 최소단위(자연부락)는 公貴里의 발굴결과에서도 보인다(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조선고고학개요≫,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77·1990, 116쪽).
340)위만조선의 국가형성 및 무역과 관련하여 다음의 글이 참조된다.

崔夢龍,<韓國古代國家形成에 대한 一考察-衛滿朝鮮의 例->(≪金哲埈博士華甲紀念論叢≫, 知識産業社, 1983).

―――,<古代國家成長과 貿易-衛滿朝鮮의 例->(歷史學會 編,≪韓國古代의 國家와 社會≫, 1985).
341)아직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나라의 예를 볼 때 灌漑시설의 설치도 생각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