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고구려어
≪삼국사기≫와≪삼국유사≫등에 무수히 보이는 고구려의 인명·지명·관직명들은 대략 3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이것은 백제와 신라의 이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첫째 종류는 東明聖王·太祖王·國內城 등과 같이 구성 한자 하나 하나의 의미가 드러나고 한문의 문법에 맞게 구성되어 있어서, 처음부터 한문식으로 붙인 듯한 이름들이다. 이와 같은 이름들이 당시에는 한자음이 아닌 고유어로 석독되었을 수도 있었을 듯하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다. 여하간, 한문식 이름들이 고구려의 초기 인명·지명·관직명 등으로부터 다수 등장하는 사실은 한자어가 상당히 사용되었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왕의 호칭이 시조로부터 ‘王’이고 다른 호칭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초기에 居西干·次次雄·尼師今과 같은 고유의 호칭을 가졌던 신라나, 單于(선우)·可汗(카간)과 같은 호칭을 가졌던 匈奴·突厥 등 고구려와 인접하였던 북방 민족들과 비교해 볼 때, 고구려어에 한자어의 도입이 일찍부터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둘째 종류는 관직명인 莫離支·對盧·褥薩, 인명인 淵蓋蘇文·溫達·乙巴素, 지명인 杜訥·買忽·夫只 등과 같이 구성 한자의 의미와 상관없이 오직 독음에 의하여 고유어 이름을 표기한 듯한 예들이다. 이들은 분명히 고구려어의 근간을 이루었던 고유어 자료이지만, 대부분 어원은 물론이려니와 정확한 音相이나 의미를 추정할 수가 없다. 다만, 舊名 혹은 異名이 석독표기로 병기되어 있는 이름들의 경우 “의미를 알 수 있는 고구려어 고유어 단어”로 추정된다.
셋째는, 이름의 일부는 위 첫째 종류와 같이 석독 한자, 다른 일부는 둘째 종류와 같이 고유어를 표기한 음독 한자인 듯한 이름들이다. 관직명인 大加·相加, 인명인 乙支文德에서 大·相·文德은 글자의 의미에 의하여 선택된 듯하고, 乙支와 加는 고유어를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이름에서 이와 같이 석독과 음독이 혼합된 예들은 별로 많지 않다.
의미를 알 수 있는 고구려어 고유어 단어의 주요 출전은≪삼국사기≫지리지 권 35와 권 37이다. 권 35에는 “水城郡 本高句麗買忽郡 景德王改名 今水州”와 같이 신라통일 후 개명된 지명에 고구려의 원래 지명을 붙였는데, 그 중에 원지명의 음독 한자를 석독 한자로 바꾼 예들이 있어서 고유어 단어를 추정케 한다. 권 37에는 ‘南川縣 一云南買’와 같이 한 지명 아래 細注로 ‘一云’에 이어 다른 이름을 제시하였고, 머리 것은 대개 석독, 세주의 것은 대개 음독 한자이기 때문에 의미를 알 수 있는 고구려 단어를 복원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언어자료에서 파악되는 고구려어 단어들은 약 80개이고, 그 중에서 둘 이상의 지명에서 확인되어 확실성이 높은 것은 약 20개에 지나지 않는다.288) 몇 가지 예를 들면, 古斯(玉), 今勿(黑), 內·奴·惱(壤, 땅), 內米(池), 旦·呑·頓(谷, 골짜기), 達(山, 高), 買(水, 川), 沙伏(赤), 蘇文(金), 述爾·首泥(峯, 봉우리), 息(土), 於斯(橫), 於乙(泉), 吐(堤, 뚝방), 巴衣·波衣·波兮(巖, 바위), 波(海), 忽(城) 등이다.
현전하는 고구려의 언어자료 중에는 대략 5세기 중엽에 평양성을 축조한 사실을 기록한 石刻文 몇이 포함되어 있다. 이 석각문들에는 국어의 처격조사 ‘-에’에 해당하는 어휘항이 ‘-中’으로, 문장의 종결어미 ‘-다’를 나타내는 듯한 ‘-之’ 등이 借字로 적혀 있어서, 이두표기의 초기 형태를 보여준다.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