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9권 통일신라Ⅲ. 경제와 사회5. 의식주 생활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1. 삼국통일 과정
          • 1) 7세기 신라의 내정변화
          • 2) 대여제항쟁과 나당군사동맹
            • (1) 대여제항쟁
            • (2) 나당군사동맹
          • 3) 백제의 패망과 부흥운동
            • (1) 백제의 패망
            • (2) 백제국 부흥운동의 진압
            • (3) 새로운 나제관계
          • 4) 고구려의 패망과 부흥운동
            • (1) 고구려의 패망
            • (2) 고구려국 부흥운동
          • 5) 대당전쟁
            • (1) 대당전쟁의 원인
            • (2) 대당전쟁의 승리
        • 2.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의
          • 1) 민족융합의 문제
          • 2)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의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1. 무열왕계의 왕권확립
          • 1) 문무왕의 왕권강화
          • 2) 김흠돌란의 발생
          • 3) 신문왕의 개혁정치
        • 2. 전제왕권과 귀족
        • 3. 중앙통치조직의 정비
          • 1) 중앙통치조직의 정비과정
          • 2) 중앙통치조직
          • 3) 내정기관의 정비
          • 4) 재상제도의 운영
        • 4. 지방·군사제도의 재편성
          • 1) 9주 5소경
          • 2) 군사조직
            • (1) 중앙의 군사조직
            • (2) 지방의 군사조직
          • 3) 진과 성곽시설
        • 5. 토지제도의 정비와 조세제도
          • 1) 토지제도
            • (1) 관료전
            • (2) 녹읍
            • (3) 정전·연수유전답
          • 2) 조세제도
            • (1) 전조
            • (2) 호조
            • (3) 부역
      • Ⅲ. 경제와 사회
        • 1. 수공업과 상업의 발달
          • 1) 수공업의 발달
            • (1) 궁중수공업과 관영수공업
            • (2) 민간수공업
            • (3) 각종 수공업 기술의 발달
          • 2) 상업의 발달
            • (1) 국내 상업
            • (2) 대외교역
        • 2. 귀족의 경제기반
          • 1) 사유지와 목장
          • 2) 식읍
          • 3) 녹읍과 녹봉
          • 4) 문무관료전
        • 3. 농민의 생활
          • 1) 신라장적
            • (1) 문서의 성격과 작성연도
            • (2) 신라장적과 농민생활
          • 2) 촌락과 농민의 지위
        • 4. 천민의 생활
          • 1) 향·부곡
          • 2) 노비
        • 5. 의식주 생활
          • 1) 의생활
            • (1) 머리장식
            • (2) 의복
          • 2) 식생활
          • 3) 주생활
      • Ⅳ. 대외관계
        • 1. 당과의 관계
          • 1) 친당외교의 추진
          • 2) 나당 친선외교의 확립
        • 2. 일본과의 관계
          • 1) 7세기 후반∼8세기 일본과의 국가간 교섭
          • 2) 9세기 전반 일본의 사신파견
          • 3) 신라상인에 의한 무역의 전개
          • 4) 9세기 후반 일본의 신라에 대한 경계강화
        • 3. 해상활동
          • 1) 항로의 개척과 항해술의 발전
            • (1) 북방해로(노철산항로)
            • (2) 황해횡단항로
            • (3) 남방해로
            • (4) 선박과 항해술
          • 2) 해외무역
            • (1) 수출품
            • (2) 수입품
            • (3) 일본과의 교역
            • (4) 이슬람과의 교역
          • 3) 당에서의 활동
            • (1) 유학생과 문인의 교유
            • (2) 구법승의 순례
            • (3) 재당신라인과 무역상
      • Ⅴ. 문화
        • 1. 유학과 역사편찬
          • 1) 유학의 발달
            • (1) 성격
            • (2) 유학의 발달
            • (3) 도당유학생의 활동
          • 2) 역사의 편찬
        • 2. 불교철학의 확립
          • 1) 교학의 발달
            • (1) 유식사상
            • (2) 원효 교학
            • (3) 화엄교학
            • (4) 계율학
          • 2) 불교신앙의 일반화
            • (1) 미타신앙
            • (2) 관음신앙
            • (3) 미륵신앙
            • (4) 지장신앙
          • 3) 승려들의 국가적 활동
        • 3. 과학과 기술의 발달
          • 1) 하늘의 과학
            • (1) 첨성대와 천문현상의 기록
            • (2) 천문도의 도입과 천문기관의 발달
            • (3) 해시계와 물시계
            • (4) 역법과 연호
            • (5) 수학과 도량형
          • 2) 땅의 과학과 기술
            • (1) 풍수지리와 지리학
            • (2) 농업기술과 생물 지식
            • (3) 풀·나무·흙의 기술:종이·직물·유리·도자기
            • (4) 쇠붙이의 기술
          • 3) 사람의 과학과 기술
            • (1) 의약학
            • (2) 빙고-얼음의 저장 이용
            • (3) 인쇄술
            • (4) 간단한 기계와 자동 장치
            • (5) 탑과 건축
            • (6) 선박 기술
        • 4. 언어와 문학
          • 1) 이두와 언어
            • (1) 고대국어의 자료와 표기법
            • (2) 차용어
            • (3) 문법
          • 2) 향가
          • 3) 한문학
            • (1) 한문학의 전개
            • (2) 한문학의 의의
        • 5. 예술
          • 1) 회화
          • 2) 서예
            • (1) 초기의 서풍
            • (2) 서풍의 발전
            • (3) 후기의 선풍 글씨
          • 3) 조각
            • (1) 불교조각
            • (2) 탑과 부도의 조각
            • (3) 일반 조각
          • 4) 공예
            • (1) 금속공예
            • (2) 토기 및 와당과 전
          • 5) 건축
            • (1) 사원 건축(목조)
            • (2) 궁실 및 연못
            • (3) 고분
            • (4) 석조건축
            • (5) 성곽
          • 6) 음악
            • (1) 역사적 배경
            • (2) 향악과 향악기
            • (3) 당악과 불교음악의 대두
            • (4) 일본에서의 고려악
          • 7) 무용·체육
            • (1) 무용
            • (2) 체육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식생활

 통일신라는 삼국이 각기 발전시켜온 특징있는 생활문화들을 계승하였다. 식생활문화도 한데 융합되어 식생활의 큰 진전이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 식생활의 기본체제가 정착되었다.

 신라에서는 초기에 보리가 주로 생산되었지만 점차 벼농사가 확대되었다. 가야의 병합으로 김해일대의 평야를 장악한 신라는 이어 한강유역을 점유하고 백제를 복속시켜 서해안 평야의 벼농사 적지를 확보하였다. 삼국시대에 이어 永川 菁堤가 중수되고0611) 수리시설이 더욱 확대되었다.0612) 그리고 보습·따비·가래·괭이·쇠스랑 등 대부분의 농기구가 이미 정비되었고0613) 牛耕을 비롯한 농업기술도 크게 발전하였다. 국가정책적으로도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고 백성들을 안정시키는 등의 배려가 있었다.0614)

 이러한 조건들을 바탕으로 통일신라에서는 쌀을 비롯한 곡물의 생산이 안정되었다고 보여진다. 신라가 백제를 병합하였던 태종무열왕대에는 곡식이 풍부하여 시장에서 포 1필이 30석 혹은 50석에 거래되었고, 백성들이 盛代라 말하였다고 전해진다.0615) 그리고 통일을 이룩하였던 문무왕대에는 커다란 창고에 쌀을 비축하였다고 한다.0616) 이러한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듯 쌀의 생산이 확대되었으나 자연지리적 조건이 벼농사에 적합하지 않았던 지역에서는 보리·조·콩 등 잡곡의 생산이 계속되었다.

 곡물 이외에 채소와 과일·육류·수산물 등이 먹거리로 이용되었다. 채소류로는 상치·가지·아욱·순무 등이 삼국시대부터 이용되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이 시대의 기록에서 미나리(芹)와 오이(黃瓜)를 볼 수 있다. 崔致遠의 글에서 미나리가 등장하고,0617) 통일신라 말기의 사람이었던 崔凝의 이야기에 오이가 보인다.0618) 그리고 과일류로는 밤·잣·복숭아·오얏 등이 있었고0619) 최치원은 앵두를 과일 중의 진주라 하였다.0620) 불교가 전래된 이후 살생을 금지하였지만0621) 상류층에서는 육류와 수산물을 즐겼다고 보여지며 섬에서 목축을 하여 식용하였다는 기록도 있다.0622)

 통일신라 사람들은 이렇게 풍부한 곡물과 다양한 먹거리를 바탕으로 식생활을 영위하였다. 곡물은 주식으로 하고 그외의 먹거리는 부식으로 조리·가공되었으며 이를 통해 주·부식의 분리가 정착되었다고 여겨진다.

 통일신라시대 식생활 용구의 모습은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서 많이 알 수 있다. 이 유물들은 다른 부장용 유물과 달리 실생활에서 사용되었던 것들이어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우선 토기는 완형 및 복원 가능한 것이 1,600여 점, 복원 불가능한 것이 약 1,000여 점 등 방대한 양이 출토되었다.0623) 그리고 기형의 대부분이 盌·皿·甁·壺 등 사용하기 편리한 것들이었다. 이러한 토기는 그 용도에 따라 음식의 조리·저장·가공은 물론 식기로도 이용되었을 것이다. 중국사서에서는 신라에서 식기로 버드나무그릇·동제그릇·질그릇을 사용하였다고0624) 하며,≪삼국사기≫를 보면 금은그릇·도금그릇·유기·돌그릇·칠기 등도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0625) 그리고 안압지에서는 숟가락과 젓가락도 발견되었는데, 숟가락은 이전 시기부터 출토되고 있어 숟가락을 이용하는 식생활문화가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0626)

 도정에는 방아가 이용되었다. 百結先生의 이야기에 방아가 등장하고0627) 고구려 벽화에서 보이는 디딜방아도0628) 계속해서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신라에서는 겨울에 부뚜막을 만들었다고 하며0629) 안압지에서 오늘날의 풍로와 같은 화덕이 출토되었는데 여름철에는 이를 이용해서 음식을 조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곡물의 조리에는 주로 솥이 이용되었다. 眞定師가 출가하기 전 가난했던 그의 살림 중에 다리부러진 솥 하나가 유일한 것이었다고 하는데 그의 어머니가 이 솥마저 시주하자 질그릇으로 솥을 대신해서 음식을 익혀 봉양하겠다고 하였다.0630) 이러한 기록에서 이 시대에 솥이 보편적으로 이용되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곡물의 조리·가공기술이 발전하여 식생활에서 밥이 주식이 되었다. 쌀을 끓여 익혀 밥을 짓는 방법은 곡물조리의 발전을 보여주는 것으로, 곡물을 가루내어 끓이는 죽에서 찌는 밥을 거쳐 짓는 밥으로 발달하였다.0631) 이는 쌀생산의 확대와 조리기술의 발달, 솥의 활용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곡물을 이용한 음식도 다양해졌다. 眞表律師가 不思議房에 갈 때 쌀을 쪄서 말려 양식을 삼았는데0632) 이는 미싯가루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최치원의 글에는 단술(甘醴)이 보이며,0633) 金庾信이 전장에 가면서 집에 들리지도 못하고 마시고 갔던 漿水도 있었다.0634) 떡은 이전 시기부터 중요한 곡물음식이었다. 백결선생의 대악은 떡치는 소리를 흉내낸 것이었고,0635) 竹曼郞과 得烏의 이야기에는 舌餠이 등장한다.0636)

 한편 이 시대에는 풍부하고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달하였다. 車得公이 安吉에게 차려낸 50여 가지의 음식은0637) 그 풍부함을 보여주며, 신문왕이 왕비가 될 집안에 보내는 예물에서 장·메주(豉)·脯·醢 등 다양한 음식을 볼 수 있다.0638) 음식들 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국(羹)이다. 최치원의 글을 보면 밥과 함께 국이 나오고 있다.0639) 이 시대 말기에 등장한 국은 이후 우리 나라 식생활에서 대표적인 부식이 되었다.0640) 따라서 이 시대에는 밥을 주식으로 하고 장·포·해 등의 상비 기본찬물로 구성되는 일상식의 기본양식이 갖추어지고0641) 여기에 국이 더하여졌음을 알 수 있다.

 기본 상비음식 중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장이었다. 調信의 꿈이야기 가운데 걸식하면서 추위가 더해져 곁방과 장얻기도 힘들다는 이야기가 있다.0642) 그리고 眞定師가 출가하면서 어머니에게 하는 말에도 장과 양식이 함께 나온다.0643) 장의 원료인 콩은 우리 나라에서 일찍부터 재배되었고 널리 이용된 곡물 중의 하나였다. 장은 발효식품으로서 그 자체로 부식이 되었지만 음식의 조리와 가공에도 널리 이용되었다.

 음식의 조리에는 각종 조미료가 이용되었다. 장은 기본적인 조미료였으며 신문왕의 예물에 들어 있는 꿀·기름도 조미료로 이용되었다. 이들 조미료를 써서 다양한 맛을 내는 음식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소금은 음식의 조리뿐 아니라 가공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해와 같은 절임류의 음식에는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이외에도 천초·생강·귤피 등도 조미료로 이용되었다.0644)

 어패류와 육류는 포 또는 해로 가공되었다. 신문왕의 예물에 보이는 포는 말린 것이며 해는 절인 것으로 비축성 상비음식이었다. 절인 음식에는 채소류의 절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장아찌나 김치류였을 것이다. 우리 나라 식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김치는 이 시기부터 이용되어졌다고 여겨지며 이 때의 김치는 무우·가지 등의 채소류에 천초·생강 등을 향신료로 첨가하였다고 생각된다.0645) 말리거나 절여서 가공·저장하는 방식 이외에도 발효시켜 가공·저장하는 방법이 이용되었다. 발효에 의한 가공법은 술을 빗거나 장을 만드는 데에 이용되었을 뿐 아니라 여러 음식의 가공에 이용되었다. 또한 음식물의 저장에는 얼음도 이용되었다.0646) 얼음은 결빙기에 채취하여 빙고에 저장하였다가 사용하였으리라고 생각된다.

 통일신라시대는 식생활문화의 발전이 있었지만 사회구조에 따른 식생활의 계층화 모습도 나타났다. 신라사회는 골품제 사회였다. 따라서 정치적 출세 이외에도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신분의 규제를 받았으며 식생활의 영역도 마찬가지였다.≪삼국사기≫ 잡지의 기용조는 신분에 따른 기물의 한계를 정해 놓고 있으며 4두품 이하 백성들은 금은그릇, 도금한 그릇은 물론 유기와 칠기의 사용도 제한하고 있다.0647) 이를 통해서 살펴보면 식생활 용구 외에도 주식으로 이용된 곡물, 부식으로 이용된 식품 등에서도 차별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眞鑑禪師의 비에는 그가 거친 음식과 채소 한 가지만을 먹고 살았다고 한다.0648) 이는 물론 그의 고행과 덕을 설명하려는 것이었지만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에서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 조세와 역역에 시달렸던 백성들의 생활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통일신라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중대에도 토지에서 이탈하는 유민들이 많이 있었고, 많은 구휼기사는 이를 반증하고 있다.0649) 이와는 대조적으로≪신당서≫의 재상가의 기사를 보면0650) 귀족들은 백성들의 생산물을 독점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풍요한 생활을 하였다. 그 모습은 숯으로만 밥을 지었다고 하는 헌강왕대의 기록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0651)

 한편 이 시대에는 특별음식도 발달하였다. 정월 초하루, 정월 보름, 팔월 보름 등의 節日이 삼국시대부터 생겨나고 여기에 따르는 節食도 발달하였다. 물론 지금의 것과 차이는 있었겠지만 계절에 따른 절식의 발달은 음식을 다양화시켰다. 그리고 술을 비롯한 제사음식도 발달하였다. 가락국의 제사에서 술·떡·밥·차·과실 등의 제물이 올려졌는데0652) 여기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불교의 전래와 함께 차가 발달하였다. 이 시대에는 음다풍속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忠談師는 경덕왕에게 차를 달여드렸고0653) 경덕왕은 月明師에게 좋은 차를 내렸다.0654) 차는 흥덕왕대에 당에 사신으로 다녀온 金大廉이 차의 종자를 얻어와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0655) 그리고 차에 곁들이는 과정류도 차와 함께 발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0656)

 통일신라시대에는 지방간의 식생활에서의 교류도 확대되었을 것이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삼국의 문화를 수용하였고, 식생활문화도 신라의 수도인 경주와 지방간에 교류가 지속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각 지방에서는 그 자연적 조건에 따라 톡특한 식생활문화를 발전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상호교류를 통해 식생활을 보다 다양하고 풍부하게 하였다. 지방간의 식생활 교류에는 시장이 큰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통일 이전에 경주에 東市를 열었던 신라는 효소왕대에 西市와 南市를 설치하였다.0657) 이를 보면 시장을 통한 상업활동이 왕성했다고 보여지며, 여기에는 식생활과 관련된 교류도 포함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지방도시였던 소경들은 지방문화의 중심이 되었고, 각 지방의 특징있는 음식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발달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식생활문화의 국제적인 교류도 있었을 것이다. 신라는 당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지대하였으며 적극적인 무역활동을 벌였다. 유학자·승려들 가운데에는 당에서 수학하고 활동하였던 인물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당에 건너간 신라인들의 거주지인 신라방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식생활문화의 교류가 생겨, 당의 식생활문화가 우리 나라에 전해졌으며 우리의 것이 당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일본과의 문화적 접촉도 있었다. 삼국은 일본에 커다란 문화적 영향을 주었고 이는 통일신라시대에도 계속되었다. 여기에는 식생활의 요소도 포함되었을 것이며 교역을 통해서 더욱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식생활의 국제적 교류는 음식문화의 다양화에 크게 기여하였을 것이다.

 이상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식생활에 대해 살펴보았다. 여기에서 살펴본 자료들은 귀족들의 식생활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전체적인 식생활문화를 이해하기에는 제한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에 식생활문화가 전 시기보다 더욱 발달하였음은 여러 가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주식을 비롯한 먹거리의 생산이 확대되었고, 식생활 용구와 조리·가공기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음식들이 만들어져 일상식의 구조가 갖추어졌다고 보여진다. 다양한 음식들의 예를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특별음식·절식 등도 더욱 다양화되었을 것이다. 또한 불교와 같은 새로운 문화요소와 국제교류를 통한 다른 나라의 식생활문화도 영향을 주었다고 보여진다. 아울러 삼국이 발달시킨 특색있는 식생활문화는 지방에 따라 독특한 음식들을 발전시켰을 것이며, 통일신라시대에는 지방간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식생활문화를 보다 풍부하고 다양하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0611)李基白,<永川 菁堤碑 貞元修治記의 考察>(≪新羅政治社會史硏究≫, 一潮閣, 1974), 284∼287쪽.
0612)≪三國史記≫권 11, 新羅本紀 11, 원성왕 6년·헌안왕 3년 4월.
0613)金光彦,<신라시대의 농기구>(≪신라사회의 신연구≫, 서경문화사, 1987), 289쪽.
0614)≪三國史記≫권 7, 新羅本紀 7, 문무왕 21년.
0615)≪三國遺事≫권 1, 紀異 2, 太宗春秋公.
0616)≪三國遺事≫권 2, 紀異 2, 文虎王法敏.
0617)≪東文選≫권 47, 狀 人蔘三斤天麻一斤.
0618)≪高麗史≫권 92, 列傳 5 崔凝.
0619)李盛雨,≪동아시아속의 고대 한국식생활사연구≫(향문사, 1992), 326∼327쪽.
0620)≪東文選≫권 47, 狀 崔致遠의 謝櫻桃狀.
0621)≪三國史記≫권 4, 新羅本紀 4, 법흥왕 16년·권 8, 新羅本紀 8, 성덕왕 10년·권 27, 百濟本紀 5, 법왕 즉위년.
0622)≪新唐書≫권 220, 列傳 145, 東夷 新羅.
0623)≪안압지발굴조사보고서≫(문화재관리국, 1978), 182∼245쪽.
0624)≪舊唐書≫권 199上, 列傳 149上, 東夷 新羅.

≪新唐書≫권 220 列傳 145, 東夷 新羅.
0625)≪三國史記≫권 33, 志 2, 器用.
0626)≪안압지발굴조사보고서≫, 391∼395쪽.
0627)≪三國史記≫권 48, 列傳 8, 百結先生.
0628)崔茂藏·임연철,≪고구려벽화고분≫(신서원, 1990) 119∼124쪽.
0629)≪新唐書≫권 220, 列傳 145, 東夷 新羅.
0630)≪三國遺事≫권 5, 孝善 9, 眞定師孝善雙美.
0631)李盛雨, 앞의 책, 380∼383쪽.
0632)≪三國遺事≫권 4, 義解 5, 關東楓岳鉢淵藪石記.
0633)≪東文選≫권 4, 五言古詩 寓興.
0634)≪三國史記≫권 41, 列傳 1, 金庾信 上.
0635)≪三國史記≫권 48, 列傳 8, 百結先生.
0636)≪三國遺事≫권 2, 紀異 2, 孝昭王代 竹旨郞.
0637)≪三國遺事≫권 2, 紀異 2, 文虎王法敏.
0638)≪三國史記≫권 8, 新羅本紀 8 신문왕 3년.
0639)≪東文選≫권 57, 書 答浙西周司空書.
0640)姜仁嬉, 앞의 책, 165쪽.
0641)尹瑞石,<신라의 음식>(≪신라사회의 신연구≫), 198쪽.
0642)≪三國遺事≫권 3, 塔像 4, 洛山二大聖觀音正趣調信.
0643)≪三國遺事≫권 5, 孝善 9, 眞定師孝善雙美.
0644)姜仁嬉, 앞의 책, 162쪽.
0645)尹瑞石, 앞의 글, 164∼165쪽.
0646)≪三國史記≫권 4, 新羅本紀 4 지증왕 4년.

≪新唐書≫권 220, 列傳 145, 東夷 新羅.
0647)≪三國史記≫권 33, 志 2, 器用.
0648)<雙谿寺眞鑒禪師大空塔碑>(≪朝鮮金石總覽≫ 上, 朝鮮總督府, 1919).
0649)≪三國遺事≫권 2, 紀異 2, 聖德王.

≪三國史記≫권 10, 新羅本紀 10, 원성왕 2년.
0650)≪新唐書≫권 220, 列傳 145, 東夷 新羅.
0651)≪三國史記≫권 11, 新羅本紀 11, 헌강왕 6년.
0652)≪三國遺事≫권 2, 紀異 2 駕洛國記.
0653)≪三國遺事≫권 2, 紀異 2, 景德王忠談師表訓大德.
0654)≪三國遺事≫권 5, 感通 7, 月明師兜率歌.
0655)≪三國史記≫권 10, 新羅本紀 10, 흥덕왕 3년.
0656)姜仁嬉, 앞의 책, 163∼165쪽.
0657)≪三國史記≫권 8, 新羅本紀 8, 효소왕 4년.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