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려 시대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3. 고려왕조의 멸망2) 이성계의 집권과 고려왕조의 멸망(2) 공양왕 옹립과 이성계의 실권 장악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1. 정치조직의 변화
          • 1) 중앙 통치체제의 변화
            • (1) 도평의사사
            • (2) 충렬왕대의 관제격하
            • (3) 충선왕대의 관제개혁
            • (4) 공민왕대의 관제개혁
            • (5) 고려 후기 정치체제의 성격
          • 2) 지방 통치체제의 변화
            • (1) 감무제의 확산과 농촌사회의 변화
            • (2) 문무교차제의 시행과 외관간의 갈등
          • 3) 관리 등용제도의 변질
            • (1) 인사행정의 문란과 관원의 숫적 증가
            • (2) 과거제와 음서제 등의 변질
            • (3) 첨설직제와 납속보관제의 신설
          • 4) 군제의 개편
            • (1) 원간섭기의 군제
            • (2) 군역체계의 변화
            • (3) 중앙군제의 개편
            • (4) 지방군제의 재편
        • 2.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
          • 1) 권문세족의 성립과 그 성격
            • (1) 세족층의 형성과 그 특징
            • (2) 고려 후기 권력구조와 세족
            • (3) 고려 후기 사회모순의 심화와 세족층의 동향
            • (4) 고려 후기 세족의 역사적 성격
          • 2) 신진사대부의 대두와 그 성격
            • (1) 신진사대부의 대두 배경
            • (2) 사대부의 성격과 용어에 대한 논의
            • (3) 사대부의 성격과 시기구분
          • 3) 개혁정치의 추진과 신진사대부의 성장
            • (1) 개혁정치의 추진
            • (2) 개혁정치의 성격
            • (3) 신진사대부의 성장
        • 3. 고려왕조의 멸망
          • 1) 고려왕조 멸망의 배경
            • (1) 이인임 정권의 한계와 무장세력의 대두
            • (2) 이인임 정권 내부의 갈등과 최영의 집권
            • (3) 요동정벌과 위화도회군
          • 2) 이성계의 집권과 고려왕조의 멸망
            • (1) 이성계 집정체제 강화를 위한 개혁
            • (2) 공양왕 옹립과 이성계의 실권 장악
            • (3) 정몽주 살해와 이성계의 왕권찬탈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1. 농장의 성립과 그 구조
          • 1) 전시과체제의 붕괴
          • 2) 농장의 발달과 그 구조
            • (1) 수조지집적형 농장
            • (2) 사적 소유지형 농장
          • 3) 녹과전의 설치
          • 4) 사전·농장의 혁파
        • 2. 수취제도의 변화
          • 1) 조세
          • 2) 공부와 요역
            • (1) 공부
            • (2) 토목공사에서의 부역실태
            • (3) 수취기준의 변화
        • 3. 농업기술의 발전
          • 1) 농법의 발전
          • 2) 목면의 재배
        • 4. 수공업과 염업
          • 1) 수공업
            • (1) 관청수공업
            • (2) 소 수공업
            • (3) 사원수공업
            • (4) 민간수공업
          • 2) 염업
            • (1) 고려 전기 소금의 생산과 유통
            • (2) 고려 후기 소금 전매제의 실시
        • 5. 상업과 화폐
          • 1) 국내상업
            • (1) 도시상업
            • (2) 지방상업
            • (3) 고려 후기 상업의 발달과 신분제의 변동
          • 2) 대외무역
            • (1) 원과의 무역
            • (2) 다른 지역과의 교역
          • 3) 화폐의 유통
            • (1) 포화
            • (2) 은병과 소은병
            • (3) 쇄은과 은전
            • (4) 원의 보초
            • (5) 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나. 윤이·이초의 옥과 반이성계파의 확대

 尹彛·李初의 獄은 공양왕 2년(1390) 5월 明에 파견되었던 王昉과 趙胖이 돌아와 보고한 내용이 계기가 되어 이색·우현보 등 반이성계파 33인이 彛初黨에 몰려 처벌된 사건이다.

① (명) 禮部에서 신 등을 불러 이르기를 “너희 나라 사람 尹彛와 李初가 와서 황제에게 호소하기를, ‘고려의 李侍中이 (王)瑤를 세워 왕으로 삼았으나, 요는 宗室이 아니라 곧 그의 姻親입니다. 요가 이시중과 함께 군사를 동원하여 上國을 칠 것을 꾀하므로 재상 李穡 등이 반대하였더니, 곧 이색 등 10명을 살해하고, 禹玄寶 등 9인을 먼 곳으로 귀양보냈습니다. 그래서 귀양가 있는 재상들이 몰래 우리들을 파견하여 황제에게 고하고, 親王이 천하의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토벌해 주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예부에서는) 윤이와 이초 등이 기록한 이색 등의 성명을 보여주면서 “너희가 속히 귀국하여 왕과 재상들에게 말하여 尹·李가 기록한 사람들을 잡아다 물어보고 나에게 보고하라”고 하였습니다(≪高麗史≫권 45, 世家 45, 공양왕 2년 5월 계사).

② 무술일 밤에 金宗衍이 도망하였으므로 경내를 크게 수색하고 드디어 禹玄寶·權仲和·慶補·張夏·洪仁桂·尹有麟을 순군옥에 가두고, 또 崔公哲 등 11인을 옥에 가두었으며, 이색·李琳·禹仁烈·李仁敏·鄭地·李崇仁·權近·李種學·李貴生 등은 청주옥에 가두었다(≪高麗史≫권 45, 世家 45, 공양왕 2년 5월 무술).

 이와 같이 彛初의 옥에 대한≪高麗史≫기록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 사료 ①은 이초사건의 발단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왕방과 조반이 명에 갔을 때 명의 예부로부터 尹·李가 명제에게 고소한 사실을 듣고 귀국하여 공양왕에게 상계한 내용이다. 사료 ②는 윤·이 등이 명에 보고했다는 명단 안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 있음을 알게 된 김종연이 처벌이 두려워 야밤도주함으로써 이 사건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이색·우현보·우인열·정지·이임·경보·이숭인 등이 하옥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의 숙청을 초래한 왕방과 조반의 보고내용 즉, 사료 ①의 내용은 다시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공양왕은 종실이 아니고 이성계의 인척이라는 것, ⓑ 이성계가 병마를 동원하여 명을 공격하려 했다는 것, ⓒ 이 때문에 이색 등이 죽임을 당하거나 원지에 유배되었기 때문에 ⓓ 윤이와 이초를 명에 보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이성계일파를 토벌해 줄 것을 청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 그러나 명황제는 윤이와 이초의 호소가 무고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조반으로 하여금 귀국하여 왕 및 재상과 협의하여 윤·이가 제출한 명단의 인물들을 조사하여 보고하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보고되자 헌부와 형조에서는 잇따라 소를 올려 ‘彛初黨’을 처벌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왕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0609) 그런데 池湧奇로부터 ‘彛初의 명단’ 자신의 이름이 실려 있어 위태할 것이라는 말을 들은 김종연이 야밤에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큰 옥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처음 고발한 조반이 그 후 ‘개국 2등공신’에 오를 만큼 이성계의 우익이었다는 점에서 이 사건 역시 김저사건처럼 이성계파에 의해 확대 내지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0610)

 이성계는 공양왕을 즉위시키면 자신의 의도대로 정국을 주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장단에 은거해 있던 이색이 대궐로 나와 하례하자 왕은 그에게 자신을 도와달라 간절히 호소하면서 이색을 판문하부사, 변안렬을 영삼사로 임명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까지 이성계세력이 배제했던 이색 등이 공양왕과 밀착될 가능성을 예측하게 해준다. 더구나 9공신을 무함하는 말까지 들리면서 사태는 이성계세력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즉 공양왕 즉위 후 이성계세력의 대간들은 이초의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소위 ‘禑昌黨’(신돈의 아들인 우·창을 옹립하여 왕실의 맥을 끊으려는 자)을 모두 살해하도록 왕에게 끊임없이 요구해 왔었다. 그러나 공양왕은 오히려 우창당의 편에 서서 원만한 해결을 강구할 뿐이었다. 이러한 위기상황 속에서 이성계는 자기 세력의 결속을 공고히 할 필요성을 느꼈으며, 우창당의 처리문제를 놓고 공양왕과 충돌이 한창이던 동왕 2년 4월 회군공신을 정하여 포상을 거행한 것도 이러한 정국위기 극복의 수단으로 자신의 지지기반에 대한 결속과 보장책의 일환이었음이 분명하다 하겠다.0611)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반대세력을 일거에 숙청할 계기를 찾고 있었던 중 마침 발생한 것이 바로 윤이·이초의 사건이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33인이 연루되었는데 그 가운데 이색·조민수·권근·이숭인 등 13명은 이미 ‘우창당’으로 탄핵되어 처벌받았던 인물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다시 ‘이초당’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우창당’에 대한 처리가 이성계세력이 의도한 만큼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0612) 또한 21명이 새로 ‘이초당’에 추가된 것도 이성계세력의 정국주도에 반대하는 세력이 그 만큼 확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그 가운데 19명이나 되는 인물들이 모두 무장세력으로서 활동한 경험이 있거나 무관직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성계에 반대하는 무인들의 반발이 커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0613)

 그런데 11월에 다시 ‘김종연사건’이 발생하고 또 한차례 반이성계파가 숙청된다. ‘이초당’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가 탈출한 김종연이 서경에 와서 서경천호 尹龜澤·楊百之 등에게 군사를 청하여 개경의 沈德符·池湧奇·鄭熙啓·朴葳·尹師德·李沃·李彬·李茂·陳乙瑞 등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이성계 등 9공신을 살해하려고 모의하였다는 것이다.0614)

 이 ‘김종연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 가운데는 무장출신이 심덕부·지용기·박위·윤사덕·이무·진을서·이옥 등 7명이 있고, 하급무인은 金兆府·張翼·魏种 등 14명이었다. 특히 공양왕 추대의 공신이기도 한 심덕부·지용기·박위 등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것 등은 이성계세력 내부, 특히 무장세력 내부에 분열과 대립이 생겼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반발에 대하여 이성계세력은 김종연을 참혹하게 처형하여 각 지방에 조리를 돌림으로써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반발세력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며, 하급사병까지 철저하게 숙청하는 등 매우 강경한 조치를 취하였다. 아울러 ‘종연당’ 처벌 후 여러 元帥의 인장을 모두 회수하여 무장들이 가지고 있던 사병집단을 흡수하였고 아울러 공양왕 3년 정월에는 이성계가 서울과 지방의 군사를 모두 통솔할 수 있게 되었다.0615) 뿐만 아니라 한달 뒤에는 우창당·이초당에 빠져 있던 지용기마저 역모죄로 몰아 杖流하였으니 이로써 9공신 가운데 이성계와 견줄 만한 능력을 가진 무장은 하나도 남지않게 되었다.0616)

0609)≪高麗史節要≫권 34, 공양왕 2년 5월.
0610)이 사건의 발단에 대하여 이색 등 구세력이 직접 개입한 것은 아니지만 궁지에 몰린 구세력을 지지해 온 일부 인물들이 조작한 사건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趙啓纘, 앞의 글, 444∼446쪽). 물론 이색 등은 이미 창왕 때 왕의 친조를 추진하여 명에 의지하여 이성계세력을 견제하려고 노력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때에도 명에 도움을 요청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사건에 연루된 이색·조민수·이임·변안렬·이숭인·권근·이종학·이귀생·우현보·우인렬·정지 등이 이미 모두 귀양가 있어 이와 같은 사건을 꾸밀 만한 능력을 가진 인물들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더욱이 이초사건 후 청주에서 큰 수재가 났다고 하여 곧 청주옥에 수감되어 있던 이초사건 관련자를 석방한 사실에서도 이 사건이 무고였음을 이성계파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증거로 보기도 한다(劉璟娥, 앞의 책, 108쪽).
0611)朴天植, 앞의 글(1979) 참조.
0612)劉璟娥, 앞의 책, 103쪽.
0613)劉璟娥, 위의 책, 102쪽<표 7>참조.
0614)≪高麗史≫권 104, 列傳 17, 金周鼎 附 宗衍.

李相佰, 앞의 책, 78∼87쪽.
0615)≪高麗史節要≫권 34, 공양왕 2년 11월·3년 정월.
0616)≪高麗史≫권 114, 列傳 27, 池湧奇.

劉璟娥, 앞의 책, 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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