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려 시대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3. 고려왕조의 멸망2) 이성계의 집권과 고려왕조의 멸망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1. 정치조직의 변화
          • 1) 중앙 통치체제의 변화
            • (1) 도평의사사
            • (2) 충렬왕대의 관제격하
            • (3) 충선왕대의 관제개혁
            • (4) 공민왕대의 관제개혁
            • (5) 고려 후기 정치체제의 성격
          • 2) 지방 통치체제의 변화
            • (1) 감무제의 확산과 농촌사회의 변화
            • (2) 문무교차제의 시행과 외관간의 갈등
          • 3) 관리 등용제도의 변질
            • (1) 인사행정의 문란과 관원의 숫적 증가
            • (2) 과거제와 음서제 등의 변질
            • (3) 첨설직제와 납속보관제의 신설
          • 4) 군제의 개편
            • (1) 원간섭기의 군제
            • (2) 군역체계의 변화
            • (3) 중앙군제의 개편
            • (4) 지방군제의 재편
        • 2.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
          • 1) 권문세족의 성립과 그 성격
            • (1) 세족층의 형성과 그 특징
            • (2) 고려 후기 권력구조와 세족
            • (3) 고려 후기 사회모순의 심화와 세족층의 동향
            • (4) 고려 후기 세족의 역사적 성격
          • 2) 신진사대부의 대두와 그 성격
            • (1) 신진사대부의 대두 배경
            • (2) 사대부의 성격과 용어에 대한 논의
            • (3) 사대부의 성격과 시기구분
          • 3) 개혁정치의 추진과 신진사대부의 성장
            • (1) 개혁정치의 추진
            • (2) 개혁정치의 성격
            • (3) 신진사대부의 성장
        • 3. 고려왕조의 멸망
          • 1) 고려왕조 멸망의 배경
            • (1) 이인임 정권의 한계와 무장세력의 대두
            • (2) 이인임 정권 내부의 갈등과 최영의 집권
            • (3) 요동정벌과 위화도회군
          • 2) 이성계의 집권과 고려왕조의 멸망
            • (1) 이성계 집정체제 강화를 위한 개혁
            • (2) 공양왕 옹립과 이성계의 실권 장악
            • (3) 정몽주 살해와 이성계의 왕권찬탈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1. 농장의 성립과 그 구조
          • 1) 전시과체제의 붕괴
          • 2) 농장의 발달과 그 구조
            • (1) 수조지집적형 농장
            • (2) 사적 소유지형 농장
          • 3) 녹과전의 설치
          • 4) 사전·농장의 혁파
        • 2. 수취제도의 변화
          • 1) 조세
          • 2) 공부와 요역
            • (1) 공부
            • (2) 토목공사에서의 부역실태
            • (3) 수취기준의 변화
        • 3. 농업기술의 발전
          • 1) 농법의 발전
          • 2) 목면의 재배
        • 4. 수공업과 염업
          • 1) 수공업
            • (1) 관청수공업
            • (2) 소 수공업
            • (3) 사원수공업
            • (4) 민간수공업
          • 2) 염업
            • (1) 고려 전기 소금의 생산과 유통
            • (2) 고려 후기 소금 전매제의 실시
        • 5. 상업과 화폐
          • 1) 국내상업
            • (1) 도시상업
            • (2) 지방상업
            • (3) 고려 후기 상업의 발달과 신분제의 변동
          • 2) 대외무역
            • (1) 원과의 무역
            • (2) 다른 지역과의 교역
          • 3) 화폐의 유통
            • (1) 포화
            • (2) 은병과 소은병
            • (3) 쇄은과 은전
            • (4) 원의 보초
            • (5) 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정몽주 살해와 이성계의 왕권찬탈

 이상 살핀 바와 같이 우왕 14년 위화도회군 이후 실권을 장악한 이성계는 개혁파사대부들의 협조하에 고려사회에 누적된 사회적 폐단을 제거하는 과감한 사회경제적 개혁을 단행하는 한편, 김저의 옥, 윤이·이초의 옥 등을 통해 자신의 집권에 방해가 되는 세력을 차례로 제거하면서 마침내 軍國의 大權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창왕 때에는 舊家世族세력이 잔존하여 이성계세력을 어느 정도 견제하였으나 공양왕을 옹립한 뒤로부터 국왕의 존재가 완전히 괴뢰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성계의 인척이기도 한 공양왕은 천성이 우유부단한 貴公子로서 쓰러져가는 고려왕조의 국운을 재건하기에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0617) 대신 이성계는 소위 ‘공양왕옹립 9功臣’의 元勳으로서 守門下侍中(공양왕 원년 11월)·領三司事(동왕 2년 10월)를 거쳐 門下侍中(동년 12월)에 올랐으며, 아울러 領八道軍馬(동왕 2년 정월)·都摠中外軍事(동년 11월)의 무권을 겸하더니 동왕 2년 12월에 軍制를 개혁, 군최고사령부로서 三軍摠制府를 설치하고 이듬해 정월에 三軍都摠制使에 올라 완전히 군권을 장악하였다. 이처럼 이성계는 문무의 대권을 한 손에 쥐고 왕위를 형해화시켰을 뿐 아니라, 刑曹·憲司·臺諫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의 일파를 배치하여 그에 대항하는 잔존세력을 끊임없이 탄핵하여 제거하였다.0618)

 하지만 이러한 이성계의 전횡은 그에 의해 왕위에 오른 공양왕뿐 아니라 그와 함께 위화도회군, 전제개혁, 공양왕 옹립에 이르기까지 그의 정책을 지지해 온 정몽주마저 이성계세력에서 이탈하게 하였다. 공양왕 2년 7월 이성계세력이 ‘이초당’을 다시 심하게 논핵하자 정몽주가 4대를 추봉하는 기회에 이색·권근 등을 사면하는 은혜를 내리기를 건의하였고,0619) 이에 헌부와 형조에서 반발하고 나서면서 정몽주와 이성계세력의 충돌이 시작되었다.

① 가을 7월에 大赦하였다. 찬성사 鄭夢周가 대간이 이초당을 논핵함이 매우 심하므로 왕에게 아뢰기를 ‘마땅히 4대를 추봉하는 기회에 李穡·權近 등을 사하는 큰 은혜를 내리소서’하니 그 말을 따른 것이다. ② 헌부와 형조에서 소를 올려 彛初黨의 죄를 다스리기 청하였다. 이튿날 대간이 다시 청하였으나 모두 대답하지 않았다. ③ 8월에 헌부와 형조에서 다시 이초당의 죄를 다스리기를 청하니 都堂에 내리어 의논하게 하였다. 정몽주가 아뢰기를 ‘이초의 무리는 죄가 명백하지 않으며, 또 사함을 받았으니 다시 논죄할 수 없습니다’ 하였으나, 왕이 오히려 여러 사람의 의논을 따라 禹玄寶·權仲和·慶補·張夏를 먼 지방으로 귀양보냈다(≪高麗史節要≫권 34, 공양왕 2년 7월·8월).

 위의 사료를 통해 이초당 사건에 대한 처벌에 있어 정몽주와 공양왕이 뜻을 같이하여 형량을 낮추거나 사면에 처하였으나, 그 후에도 이성계일파로 보여지는 대간들의 상소가 끊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의 공격에 지친 왕은 이를 도당에서 심의하도록 하자, 정몽주는 “이초의 무리가 죄가 명백하지도 않고 또 용서를 받았으니 다시 논죄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자세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이미 대세를 이루고 있는 대간들의 뜻에 따라 우현보 등을 귀양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초당에 대한 정몽주의 태도를 둘러싸고 司憲府·刑曹·門下府 郎舍들 간에는 정몽주를 옹호하는 세력과 그 반대세력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결국 대사헌 金士衡을 중심으로 집의 安景儉·崔遠, 장령 許周·崔兢, 지평 趙庸, 형조판서 安景恭 등이 뭉쳐 정몽주에 동조하는 좌시중 鄭寓·좌사의 崔云嗣·헌납 李蟠·정언 權壎 등과 대립하여 서로를 탄핵함으로써 대간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0620) 이로써 이초당 처벌문제로 인하여 대간직 내부에는 비록 열세이기는 하였지만 이초당을 옹호하는 ‘鄭夢周黨’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 사건은 정몽주와 공양왕의 결속을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양왕 2년(1390) 11월 김종연사건으로 숙청된 심덕부를 대신해 이성계가 시중의 자리에 올랐을 때 공양왕은 정몽주를 수시중에 임명하여 이성계를 견제할 수 있도록 하였다. 더욱이 이듬해 봄 군제개혁을 통해 이성계가 군통솔권의 수뇌인 3도도총제사가 되고 趙浚·鄭道傳·裵克廉 등이 각각 左·右·中軍摠制使로서 군권을 장악하자 정몽주 동조세력들은 활발한 대간활동을 통해 이성계세력을 견제해 가고 있었다. 물론 공양왕 역시 이들을 지지하면서 소위 이성계세력에 의해 숙청되었던 ‘5罪’0621)의 인사들의 형벌을 감해주었다.0622)

 그리하여 같은 해 9월에도 사헌부에서 소위 立昌黨·迎禑黨·彛初黨 관련자들에 대한 가중처벌을 요구하자, 왕은 정몽주·尹虎·柳曼殊·金溱 등을 불러 의논하여 이색과 우현보를 석방하고, 조민수·변안열은 가산을 몰수하며 李乙珍은 율에 따라 단죄하며, 池勇奇·朴可興은 그대로 유배해 두되, 禹仁烈·王安德·朴葳 등은 경외에 편리한 대로 살게 할 것을 명하였다. 이 자리를 빌어 처음부터 彛初黨의 죄가 분명치 않다고 주장해 온 정몽주는 “지금 이후 다시 이들을 論劾하는 자는 誣告罪로 다스리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이성계 일파와의 정면 대결을 선언하였다. 아울러 이를 계기로 정몽주는 5죄로 처벌되었다가 풀려난 인사들을 그의 세력 내지 그의 동조세력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

좌상시 金震陽이 말하기를 ‘(鄭)夢周·李穡·(禹)玄寶가 李崇仁·李種學·趙瑚를 보내어 신 등에게 말하여 李 判門下가 공을 믿고 권력을 마음대로 하는데 지금 말에서 떨어져 병이 위독하니 먼저 우익인 趙浚을 제거한 후에야 도모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 (≪高麗史≫권 117, 列傳 30, 金震陽).

 위의 사료를 통해 공양왕 4년(1392) 4월, 이전까지 이성계세력에 의해 탄핵받아 유배되었던 이색과 우현보가 정몽주와 대등한 입장에서 이성계세력을 탄핵하고 나서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종학·이종선·이숭인·조호 등 우창당으로 유배되었던 인물들도 정몽주의 동조세력에 합류하고 있었을 알 수 있다. 즉 정몽주와 같은 정치노선을 가진 인물뿐 아니라 이색·조호·우현보 등과 같이 우왕·창왕대의 정치질서를 유지하려 했던 세력들도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정몽주와 연대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0623) 이로써 공양왕 4년초에 이르면 이성계세력에 대항하는 정몽주를 중심으로 고려왕조를 옹호하는 세력이 결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공양왕 3년 9월부터 4년 4월 정몽주가 살해되기 전까지 우창당과 연대한 정몽주에 합류한 세력은 이성계세력을 압도하고 있었다고 보인다.

 그리하여 한산부원군으로 복직된 이색에게 이성계는 끓어 앉아 술을 청해야 했고0624) 반면 鄭道傳은 대간을 비방했다는 죄목으로 형조의 탄핵을 받아 奉化縣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羅州, 保州로 이배되었다. 趙璞·尹紹宗·南在·南誾 등 역시 유배되고, 吳思忠은 삭탈관직되는 등 이성계에게 충실한 개혁파 사대부들은 거의 중앙정계에 남아 있지 못하였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문하부 낭사 김진양은 소를 올려 조준·정도전 등을 극형에 처하도록 요구하였다. 왕의 재가만 얻는다면 이성계의 우익을 모두 제거하고 이성계까지 제거할 수 있을 정도로 공양왕 4년의 정국은 정몽주 동조세력들이 언론직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0625)

 그러나 공양왕은 이성계의 독주에 지쳐 있었지만 정몽주세력의 요구에 놀라 이성계세력에 대한 탄압을 중지하게 하고 정도전을 廣州로, 조준을 泥山으로 가까이 옮기도록 명하였다. 이어 남재·조박·윤소종·오사충 등 역시 수원으로 불러들여 국문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소강의 기회를 포착한 李芳遠은 이성계에게 事勢의 위급함을 알려 정몽주 제거라는 비상수단을 동원, 실천에 옮겼다. 결국 정몽주는 善竹橋에서 격살되고 그의 黨類마저 모두 유배되었다.

 이와 같이 이성계는 최후로 남아 있던 고려왕조 유지론자인 정몽주를 제거하였다. 아울러 왕조교체를 반대하였던 이색을 비롯하여 이숭인·조호·김진양·李擴·偰長壽·金履·이무·이빈·安魯生·崔關·金膽, 우현보와 그의 당여 및 종실 南平君 和·壽延君 珪 등 20여 명을 먼 곳으로 귀양보내었다.0626)

 왕실을 두호하던 중신과 종실을 모두 잃고 고립무원에 빠진 공양왕은 4년(1392) 7월 밀직제학 이방원과 사예 趙庸을 불러 동맹의 형식을 빌어 이성계에 의지하여 고려왕조를 유지할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이성계파 우시중 裵克廉은 “왕이 昏暗하여 君道를 이미 잃고 인심이 떠나 있어 社稷과 生靈을 맡길 수가 없습니다”하며 폐위상소를 올리니, 결국 왕대비의 명으로 공양왕은 폐위되어 原州로 방출되었다.0627) 이로써 고려왕조의 國璽는 마침내 이성계에게 넘겨져, 1392년 7월 17일 權知高麗軍國事로서 즉위하니0628) 34대 475년에 걸친 고려왕조는 무대 뒤로 사라지고 말았다.

<朴天植>

0617)처음에 이성계가 興國寺에서 중신회의를 열고 정창군을 세우자고 발의할 때에 이성계의 심복이었던 趙浚도 “定昌君은 부귀한 가정에서 성장하여 다만 治財를 알 뿐 治國은 모른다”하며 반대할 정도였다.
0618)이 시기 臺諫의 활동은 종래 對王權規制의 기능보다는 新進士類와 舊族大臣 양대세력의 정권쟁탈전에 앞장서고 있었다고 지적된 바 있다(朴龍雲,≪高麗時代 臺諫制度硏究≫, 一志社, 1980, 209∼215쪽).
0619)≪高麗史節要≫권 34, 공양왕 2년 7월.
0620)≪高麗史≫권 104, 列傳 17, 金方慶 附 士衡.
0621)5罪란 ① 王氏를 세우는 의논을 저지시키고 禑의 아들 昌을 세운 자(禑昌黨 ; 李穡·曹敏修 등), ② 金宗衍의 모의에 참여한 자(宗衍黨 ; 池勇奇·朴可興 등), ③ 신우를 맞이하여 왕씨를 영구히 끊게 하려는 자(禑昌黨 ; 변안열·우현보 등), ④ 尹彛와 李初를 上國에 보내어 친왕이 천하의 군사를 움직여 이성계를 치도록 요청한 자(彛初黨), ⑤ 선왕의 서손을 꾀어 반역을 도모한 자(池湧奇)를 칭한다(≪高麗史≫권 117, 列傳 30, 鄭夢周).
0622)劉璟娥, 앞의 책, 113∼115쪽 참조.
0623)劉璟娥, 위의 책, 120쪽.
0624)≪高麗史≫권 115, 列傳 28, 李穡.
0625)劉璟娥, 앞의 책, 121쪽 참조.
0626)≪高麗史節要≫권 35, 공양왕 4년 6월.

鄭在勳, 앞의 글, 75∼77쪽.
0627)≪高麗史節要≫권 35, 공양왕 4년 7월 신묘.
0628)≪太祖實錄≫권 1, 태조 원년 가을 7월 17일 병신.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