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허준의 의서 편찬
허준은 조선에서 가장 뛰어났던 실증적인 의학자이다. 그는 명종대에 태어나서 선조 일대를 통하여 대업적을 남겼고 광해군 때 죽었다. 선조초에는 內醫로 명성이 높았으며, 선조의 신임을 받아 정1품 輔國崇祿大夫의 위치까지 올랐다.
허준의 의학적 업적은 선조 14년(1581)에≪纂圖方論脈訣集成≫ 4권의 교정판을 내놓으면서 시작되었다. 高陽生이 편찬한≪纂圖脈≫은 조선 초기까지 가장 훌륭한 진맥서로 醫科의 필독서로 채용되어 널리 이용되었지만, 시대가 지남에 따라 문자의 착오가 많아지고 글이 번잡스럽게 되어 배우는데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래서 허준은 왕명으로 여러 의서를 참고하여≪찬도맥≫을 엄밀히 교정하여≪찬도방론맥결집성≫을 만들어 냈다. 이 교정본은 진맥학의 기본적 지식을 총정리한 것으로 조선말까지 널리 읽혀졌다.
다음에 착수한 책이≪동의보감≫이다.≪동의보감≫을 저술하는 동안 허준은 별도로 다른 중요한 의서의 편찬 작업을 병행하여 조선초부터 널리 사용되어 오던 세 가지 의서인 노중례의≪태산요록≫, 임원준의≪창진집≫과 세조 명으로 편찬된≪구급방≫을 다시 정리하는 한편, 이 세 책 모두에 언해를 붙였다.
≪痘瘡集要≫는≪창진집≫을 고쳐 만든 것으로 선조 41년 내의원에서 간행하였다. 이 책은 당시 명의 의서를 인용하여 새로이 고쳐서 언해를 붙인 것으로, 선조 34년에 이미 편찬된 것을 전쟁의 피해가 어느 정도 복구되면서 발간한 것이다.≪태산집요≫는≪태산요록≫을 고쳐서 출간한 것인데≪두창집요≫처럼 역시 명의 의서를 인용하여 다시 근본부터 손을 보았다. 이 역시≪두창집요≫와 같은 시기에 발간되었다.≪언해구급방≫은≪구급방≫의 내용을 증보하여 언해를 덧붙여 편찬하였는데 간행연도는 미상이다.
≪두창집요≫·≪태산집요≫·≪언해구급방≫ 등 세 책은 종래부터 사용되어 오던 것을 고치는 형식이었지만,≪두창집요≫와≪태산집요≫는 당시의 새로운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근본적으로 개편한 것이므로 이전의 책과는 다른 별종의 의서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 책은 이후 상당히 오랫동안에 걸쳐 우리 나라에서 널리 이용되었다.
허준은≪동의보감≫을 완성한 후에도 두 가지 전염병 전문서를 편찬하였다.≪신찬벽온방≫과≪벽역신방≫이 그것이다.≪신찬벽온방≫은 광해군 4∼5년(1612∼1613)간에 전국적인 규모로 유행했던 전염병을 구료하기 위해 왕명을 받아 찬출한 것으로 광해군 5년에 내의원에서 간행·반포하였다. 이 책은 중종 때 나온≪간이벽온방≫과 비교해 볼 때, 질병에 대한 기술이 상세하면서도 정확하다.≪벽역신방≫은 광해군 5년 가을 唐紅疫(오늘날의 성홍열)이라는 전염병이 크게 유행하자 허준이 왕명을 받아 새로이 편찬하여 같은 해 12월에 발행한 의서이다. 이 두 책은 전염병서로서 매우 뛰어난 것으로, 당시 전염병의 개별 진단이 동양은 물론 서양에서도 혼란스러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예리한 관찰력이 더욱 경탄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