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종기 치료술
≪經國大典≫권 3, 禮典 獎勸條에 “의원이 비록 의학서적을 이해하지 못하나 瘡腫과 여러 惡瘡을 치료하여 효과를 가장 많이 본 자를 한 해에 1인씩 뽑아 등용케 한다”는 기록으로 보아 조선 전기에 일반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원 이외에 종기를 전문으로 하는 治腫醫가 있었음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종기 치료 전문의에 대한 확실한 명칭은 중종 38년(1543)에 만들어진≪大典後續錄≫에 처음 보인다. 그리고 선조 36년(1603)에는 종기만 전문으로 치료하기 위한 治腫廳이 궁 안에 따로 설치되기까지 했다. 이는 나중에 典醫監에 병합되었는데, 직원은 敎授 1명, 鍼醫 3명, 前銜 10명, 生徒 10명으로 되어 있었다.
제도에 따르는 치종청의 독립과 함께 종기 치료술에서도 커다란 발전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명종 14년(1559)에 나온 任彦國의≪治腫秘方≫을 들 수 있다. 이 책은 여러 종기의 증상과 치료법에 대해 논하였는데, 특히 소금물 목욕법과 같은 外用的 요법들이 두드러진다. 이 책에 대한 安緯의 서문에 “임언국이 靈隱寺 노승에게 침술의 묘법을 배워 수년 동안에 그 효과를 본 자가 수만이라”고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임언국의 종기 치료술이 매우 뛰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임언국의 종기 치료술은 종래와 같이 고식적인 침에 의한 腫瘡의 절개술에 그친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외과적 수법을 연상할 수 있는 觀血的 절개 요법이 응용되어 있다. 이는 오늘날 초본으로만 전하는 임언국과 그 제자들의 저술로 인정되고 있는≪治腫指南≫을 통해서 증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