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역사학
1) 역사학의 사상적 배경
조선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性理學은 이념적인 표방에 그쳤으며 일반 생활윤리로 정착하지 못하였다. 15세기 말부터 중앙의 보수적 세력과는 달리 지방에 거주하면서 사적인 교육을 통해 관료로 새로이 성장하였던 士林들이 16세기 이후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하고, 또한 정국의 주도세력이 훈척에서 사림으로 넘어오게 되면서 문화활동의 주역은 사림으로 바뀌었다. 훈척에서 사림으로의 전환상의 충돌이 士禍로 나타났다.
사림의 문화적 기반은 성리학에 있었다. 그들은 성리학이 철학적 기초 위에서 사물을 보았으며, 이를 근간으로 새로운 사회질서를 구축하려고 하였다. 성리학적인 이념이 사회적으로 실현된 것은 17세기 후반인 조선 후기부터라고 이해된다. 당시 사회를 이끌고 나간 사림들은 이전의 훈구파와는 다른 생활태도와 학문적 성향을 보였다. 이들은 국가건설이라는 초기의 목표가 달성되면서 사익집단화한 훈구파가 개인적인 치부에 매달려 있었던 것과는 달리 도덕적 실천행동을 중시하게 되었다. 사림의 도덕적 표상은 집현전학사들의 의리의 추구였다. 세조의 왕위찬탈에 영합한 사람들이 훈척들이었다.
그리고 중종반정과 인조반정과 같은 일련의 왕권교체와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건국되는 국제사회의 변동은 성리학적인 명분론과 정통론이 새로운 중요성을 가진다고 인식하였으며, 그 결과 현실문제에 성리학이 더욱 강고하게 적용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역사학은 조선 전기가 국가의 관료 중심적인 것인데 반하여 중기 이후에는 개인적 관심과 개인적 재력에 의하여 연구 간행되었다. 관료 중심적인 역사학이 국가재정을 기반으로 함으로써 규모면에서 체계적이고 양적인 면에서 거질이었다.≪高麗史≫와≪東國通鑑≫의 편찬은 그 대표적인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사림의 역사학은 개인적 관심에 기초하였기 때문에 역사서술의 형태가 다양하고 그 서술목적이 현실적이었다. 이 점이 바로 조선 중기의 역사학이 초기의 역사학과 다른 점이었다. 또한 중기에는 교양으로서의 역사학은 중국사에 집중되는 경향을 낳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우리 나라 역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교육을 위한 역사서가 편찬되었다. 조선 중기의 역사학을 크게 고려 이전의 역사와 당대사의 정리로 구분하여 이를 유형별로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