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자에 대한 사료의 수집
이 시기의 역사연구 경향으로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16세기 이후 성리학적 역사철학이 주조를 이루면서 이와 짝하여 예치 중심의 역사철학이 발전하였던 점이다. 특히 우리 나라 교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고 믿어져 온 箕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이에 따라 기자에 대한 문헌들이 집성되기도 하였으며, 대표적인 것으로 尹斗壽(1533∼1601)가 지은≪箕子志≫와 李珥(1536∼1584)가 지은≪箕子實記≫가 있다.
윤두수가≪기자지≫를 편찬한 직접적인 계기는 선조 10년(1577) 명나라에 謝恩使로 갔다가 중국인으로부터 기자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을 못하였던 데 있었다. 중국에서 돌아온 후 그는 經史子集에서 기자에 관한 기록을 발췌하여 서술형태별로 분류하여 선조 13년≪기자지≫를 편찬하였다. 이이도≪기자실기≫라는 기자의 전기를 썼는데 기자가 우리 민족을 교화하여 중국인과 같은 문화수준으로 향상시킨 공로를 높이 존숭하였다.0722) 이는 또한 당시 일반적으로 고조되어 가던 기자에 대한 종숭을 반영한 것이었다.
기자의 역사에 대한 고조된 관심은 이 당시 학자들의 문집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바,≪기자지≫를 쓴 윤두수의 문집인≪梧陰集≫의 기자 관련 기록은 후일 여러 사서에서 인용되었으며,0723) 韓百謙은<箕田遺制說>을 지어 기자의 井田制가 조선에 실행된 것으로 정리하여 기자 교화의 공을 더욱 현창하였다.0724) 한편 이 시기 기자에 대한 崇奉이 강화되는 모습은 실록 기록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