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강목형 사서의 출현
양란 이후 성리학적 역사학이 심화되면서 역사서술에서는 강목형 서술이 유행하여 이 시기 역사서술에서의 특징적인 한 양식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일군의 학자들이 조국 강토에 대한 학문적 관심에서 역사지리학을 발전시킨 것과는 달리 이들은 朱子의 綱目法을 더욱 충실히 따르려고 하였다.
강목형 사서의 시작은≪春秋≫이다. 공자가 쓴≪춘추≫는 노나라 역사로 강에 해당하며, 좌씨전·공양전·곡량전은 목에 해당한다. 그런데 송나라의 주자에 의해≪資治通鑑綱目≫이 편찬되면서 강목형식은 역사서술의 한 형식으로 널리 이용되었다.≪자치통감강목≫은 ≪자치통감≫의 내용을 강목형식으로 재편찬한 것으로, 이에는 많은 범례가 있어 성리학적 역사서술의 큰 원칙을 제시하였다. 이에서는 정통, 명분, 도덕과 같은 관념이 강조되었다.
강목형의 역사서술은 도덕적인 역사평가를 역사서술형태로 나타낸 것이다. 즉 높이 칭찬하여야 하거나 크게 비난하여야 할 사건은 큰 글씨로 서술하였기 때문에 綱으로 기술된 내용은 찬자가 중시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에 관련된 상세한 내용의 서술은 줄을 내려 작은 글씨의 目으로 서술하였다.
한국에서 강목형의 역사서술로는 고려시대 金寬毅에 의하여 편찬되었다고 하는≪本朝編年綱目≫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전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알 수가 없다. 강목형에 의한 한국사의 서술은 17세기에 크게 발전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兪棨(1607∼1664)의≪麗史提綱≫, 柳馨遠(1622∼1673)의≪東國史綱目條例≫, 洪汝河(1621∼1678)의≪東國通鑑提綱≫·≪彙纂麗史≫, 洪萬宗의≪東國歷代總目≫등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주자가≪자치통감강목≫에서 제시하였던 凡例를 직접 원용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강목형의 역사서술은 18세기에 들어가 林象德(1693∼1719)의≪東史會綱≫과 安鼎福(1712∼1791)의≪東史綱目≫에 이르러 주자의 강목범례를 충실히 반영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