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찬 지리서의 편찬
조선 전기의 관찬 지리서 편찬과는 달리 16세기 이후에는 지방의 관리, 학자들이 중심이 된 읍지가 광범위하게 편찬되기 시작하였다. 중앙정부가 지방사정을 파악하는 자료로 이용되었던 조선 전기 官撰의 通志와는 달리, 이것은 주자학 이해의 심화와 사림파 지식인들의 이상정치 실현을 위한 일련의 향촌사회에 대한 통제정책과 관련된 것으로,0745) 지방통치를 위한 자료의 획득이라는 목적과 더불어 유교적인 향촌교화의 측면이 강조되고 있어 조선 중기 사림파 지식인들의 역사의식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조선에서 편찬된 최초의 사찬읍지는 李耔가 1507년에 편찬한 경상도 義城의≪聞韶志≫로 알려지고 있으며,0746) 현존하는 것으로는 鄭逑(1543∼1620)에 의해 편찬된≪咸州志≫(1585)가 시기적으로 가장 이르다.0747) 그외에도 16∼17세기 동안 경상도와 전라도를 중심으로 활발한 읍지 편찬이 이루어졌으며, 이후 지역적으로 전국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0748)
이러한 읍지 편찬의 성행은 지방의 문화의식을 고양시키는데 기여하였을 것이며, 오늘날에도 지방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사학사적인 의미에서도 중요하다.
한편 通志로서는≪東國輿地勝覽≫이 조선 전기의 문화를 총집성하였으며 그 이후 이를 수정한≪新增東國輿地勝覽≫이 중종 25년(1530)에 편찬되었을 뿐 국가적인 편찬사업으로 전국적인 통지는 편찬되지 못하였다. 그런데 실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柳馨遠에 의해≪東國輿地志≫가 편찬되었던바, 이는 개인 학자에 의해 만들어진 전국규모의 통지일 뿐만 아니라 실학적인 안목으로 작성된 지리서로 지리서의 편찬에 있어 새로운 발전을 의미한다.
0745) | 楊普景,<16∼17世紀 邑誌의 編纂背景과 그 性格>(≪地理學≫27, 대한지리학회, 1983). ―――,≪朝鮮時代邑誌의 性格과 地理的 認識에 관한 硏究≫(서울大 地理學科 博士學位論文, 1987), 66∼9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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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46) | 楊普景, 위의 책, 67쪽. |
0747) | 金慶洙,<鄭逑의≪咸州志≫연구>(≪于江權兌遠敎授 停年紀念論叢≫, 1994). |
0748) | 16∼17세기 편찬된 사찬읍지에 대한 개별적 검토는 다음 글을 참조. 楊普景, 앞의 책. 任世權,<永嘉誌 編纂 및 刊行의 意義>(≪安東文化의 再認識≫, 安東文化硏究會, 1986). 金慶洙, 위의 글. 崔允榛,<16, 17세기에 편찬된 慶尙道의 私撰 邑誌>(≪全北史學≫17, 19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