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Ⅳ. 학문과 종교7. 불교계의 동향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1. 16세기 사족의 향촌지배
          • 1) 사족지배체제의 형성과 그 의미
          • 2) 재지세력의 변화
          • 3) 사족지배체제와 수령권
          • 4) 향촌기구의 여러 양상
            • (1) 향약의 도입과 정착
            • (2) 유향소의 기능
            • (3) 향교와 사마소
        • 2. 향촌자치조직의 발달
          • 1) 향촌자치조직의 발달 배경
          • 2) 향촌자치조직의 내용과 성격
            • (1) 유향소와 경재소
            • (2) 향약과 향규
            • (3) 동계와 동약
          • 3) 향촌자치조직의 변질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1. 사족의 향촌지배조직 정비
          • 1) 난후의 향촌실정
          • 2) 향촌지배조직의 복구와 정비
            • (1) 경재소의 혁파와 향촌지배조직의 정비
            • (2) 동계·동약의 중수와 상하합계
        • 2. 사족의 향촌지배와 서원의 발달
          • 1) 사족 중심의 향촌운영
          • 2) 서원의 증설과 역할의 증대
          • 3) 서원정책의 추이
        • 3. 사족의 향권과 수령권
          • 1) 조선 중기 향권의 의미
          • 2) 사족의 향권의 내용
          • 3) 수령권 강화와 사족의 향권 상실
          • 4) 조선 후기 향권의 추이
        • 4. 사족지배체제하의 신분질서
          • 1) 사족 중심 신분질서의 확립
          • 2) 양란중의 신분 혼효와 정리
          • 3) 각 신분의 존재 양상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1. 예학의 발달
          • 1) 가례의 연구와 집성
            • (1)≪주자가례≫에 대한 학문적 관심
            • (2)≪주자가례≫의 주석과 언해
            • (3)≪주가가례≫연구의 심화
          • 2) 고전 예서의 연구
          • 3) 예학의 경향과 전례 논쟁
            • (1) 예학의 두 경향
            • (2) 전례 논쟁의 배경
            • (3) 인종의 문소전 부묘 논의와 공의전의 복제 논쟁
            • (4) 공빈의 추숭 논란
            • (5) 원종(정원군) 추숭의 전례 논쟁
        • 2. 종법제의 보급과 가족제도의 변화
          • 1) 종법제의 원리
          • 2) 종법과 가족제
          • 3) 제사와 상속
          • 4) 족보의 보급과 동성마을의 형성
        • 3. 유교문화와 농민사회
          • 1) 유교문화 원리의 보급
          • 2) 교육기구의 운용과 의례의 수용
          • 3) 의례변화의 제양상
            • (1) 관혼례의 변화
            • (2) 상제례의 변화
          • 4) 농민사회의 예속 변화의 몇 문제
        • 4. 순국·순절자의 포정
          • 1) 사림의 정표운동
          • 2) 국가의 정표정책
      • Ⅳ. 학문과 종교
        • 1. 성리학의 발달
          • 1) 학파의 분화
          • 2) 이기철학의 발달과 전승
          • 3) 17세기 성리학의 추세
            • (1) 율곡학파
            • (2) 퇴계학파
            • (3) 퇴율절충론
            • (4) 탈주자학적 유학사상
          • 4) 존주론과 명분주의
        • 2. 양명학의 전래와 연구
          • 1) 양명학의 전래와 초기 수용형태
          • 2) 양명학의 비판과 수용의 문제
          • 3) 초기 양명학 수용자들의 현실 인식
        • 3. 서양문물의 전래와 반응
          • 1) 서양문물 도입의 주역
            • (1) 내도 양인의 문화적 의의
            • (2) 접촉과 재래의 주역 연행사행원들
          • 2) 17세기 서양문물의 도입
          • 3) 조선사회의 서양문물에 대한 반응
            • (1) 곤여만국전도와≪직방외기≫
            • (2)≪천주실의≫와≪교우론≫
            • (3) 서양기기
            • (4) 한역 천문서와 역산서
          • 4) 서양문물의 실용적 채용
          • 5) 17세기 서양문물 전래의 역사성
        • 4. 실학의 태동
          • 1) 실학의 성립과 그 개념
          • 2) 초기 실학의 계보와 성격
        • 5. 국문 보급과 국어 연구
          • 1) 시대적 특성과 경향
          • 2) 국문 보급과 언문자모
          • 3) 음운학 연구의 전개
          • 4) 어휘 정리와 고증적 해석
        • 6. 역사학
          • 1) 역사학의 사상적 배경
          • 2) 고려 이전의 역사에 대한 서술
            • (1) 사략형 사서의 유행
            • (2) 기자에 대한 사료의 수집
            • (3) 강목형 사서의 출현
            • (4) 역사지리학 연구의 심화
            • (5) 해동악부체 시가의 출현과 그 발전
          • 3) 당대사의 편찬
            • (1) 실록의 편찬과 보관
            • (2)≪비변사등록≫등 연대기 기록의 편찬
            • (3) 야사형 사서의 편찬
            • (4) 사찬 지리서의 편찬
            • (5) 일기의 작성
          • 4) 역사학과 사학사상의 특징
        • 7. 불교계의 동향
          • 1) 산중승단
          • 2) 산승의 법통
          • 3) 불교신앙의 제형태
            • (1) 정토신앙
            • (2) 밀교신앙
            • (3) 미륵신앙
            • (4) 기타 신앙 및 도교·민속과의 습합
          • 4) 의승군의 조직과 활동
        • 8. 도교와 민간신앙
          • 1) 도교
            • (1) 과의도교
            • (2) 수련도교
            • (3) 도교적 양생론과 의약 연구
            • (4) 수경신(경신수야)
          • 2) 민간신앙
            • (1) 선서와 관제신앙
            • (2) 도인들의 비밀집단
            • (3) 지리도참
      • Ⅴ. 문학과 예술
        • 1. 문학
          • 1) 시가문학
          • 2) 소설과 판소리
          • 3) 한문학
        • 2. 미술
          • 1) 회화
            • (1) 산수화의 제경향
            • (2) 인물화의 경향
            • (3) 동물화와 화조화의 경향
            • (4) 사군자화와 묵포도화의 경향
          • 2) 서예
            • (1) 고법으로의 복귀
            • (2) 석봉체의 유행
            • (3) 초서와 전예의 명가
            • (4) 필적 간행과 금석 수집
            • (5) 한글서체의 필사화
          • 3) 조각
          • 4) 공예
            • (1) 도자공예
            • (2) 금속공예
          • 5) 건축
            • (1) 일반건축양식
            • (2) 도성과 궁궐
            • (3) 읍성과 관아, 객사
            • (4) 유교건축
            • (5) 사찰건축
            • (6) 주택
            • (7) 석탑·부도
        • 3. 음악
          • 1) 궁정음악의 전승과 변화
            • (1) 보태평과 정대업
            • (2) 여민락
            • (3) 보허자와 낙양춘
            • (4) 영산회상
            • (5) 정읍과 동동
            • (6) 유황곡과 정동방곡
            • (7) 생가요량과 쌍화곡
            • (8) 제향아악
          • 2) 단가의 발생과 전개
            • (1) 대엽
            • (2) 만대엽
            • (3) 북전
            • (4) 중대엽
            • (5) 삭대엽
          • 3) 기악풍류의 성립과 발달
            • (1) 다스름
            • (2) 영산회상
            • (3) 보허자
            • (4) 여민락
          • 4) 향악조
            • (1) 향악조의 궁
            • (2) 계면조의 음계변화
          • 5) 음악유산
        • 4. 민속
        • 5. 무용·체육
          • 1) 무용
            • (1) 정재무
            • (2) 일무
            • (3) 나례희와 처용무
            • (4) 광대 소학지희
            • (5) 나례우인
          • 2) 체육
            • (1) 성균관에서의 대사례
            • (2) 향교의 향사례
            • (3) 방희
            • (4) 격구
        • 6. 의식주 생활
          • 1) 의생활
            • (1) 시대배경 및 의생활
            • (2) 의생활 변모의 3단계
            • (3)≪국조오례의≫와≪경국대전≫의 복식
            • (4) 일반 편복 구조
          • 2) 식생활
            • (1) 의례음식의 규범 정립
            • (2) 가정 상비식품의 발달
            • (3) 향토음식의 발달
          • 3) 주생활
            • (1) 주거의 계층적 특성
            • (2) 유교적 생활문화의 확산과 주거 공간의 분화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4) 의승군의 조직과 활동

 한국불교의 하나의 특성으로 그 호국적 史實을 논할 때, 임진왜란을 통한 義僧軍 활동은 특기할 만 하다. 물론 조선 중기 의승군 활동은 비단 임진왜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정묘·병자호란 때에도 그 활약상이 보이며, 남한산성(1624년 축성)과 북한산성(1711년 축성)의 축조 및 그 계속된 수비 또한 승군이 주 임무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호국의 정신성은 물론 조직규모나 활동내용 나아가 실제 성과에 이르기까지, 임란왜란 당시의 의승군 활동은 불교의 여타 호국사례와는 크게 대비되는 것임에 분명하다.

 임진왜란은 선조 25년(1592) 4월 왜군의 東萊城 침략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이들과 접전을 벌인 최초의 의승군은 公州 甲寺에 있던 靈圭와 그가 거느린 8백 명의 의승군들이었다. 이 8백의승군은 趙憲의 7백의병과 합세하여 그 해 8월 왜적에게 함락당한 淸州城을 수복함으로써, 왜란 발발 이후 첫 승전을 기록하고 있다.

 비교적 개전 초기부터 큰 활동상을 보이고 있는 이런 의승군이 처음 이루어진 것은 선조 25년 5월 경부터인 것 같다. 몽진 길에 올라 평양에 머물고 있던 왕에게 당시의 병력현황을 밝히는 비변사의 啓書 가운데 6백 명 가까운 승군이 열거되고0771) 있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의승군이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된 것은 같은 해 7월 선조가 義州 幸在所에 머물 때 승병모집을 위해 妙香山에 있던 휴정을 초치한 이후부터이다.0772) 世亂을 구할 것을 간곡히 부탁하는 왕에게 휴정은 忠赤을 맹세하고 있으며, 이에 감탄한 선조는 그에게 八道十六宗都摠攝의 직을 내려 전 승군을 관장케 하였다.0773) 이로부터 의승군의 전국적인 확대가 시작된 것이다.

 왕을 進謁하고 돌아온 휴정은 전국 8도 사찰에 격문을 보내 궐기할 것을호소하는 한편 그 자신 73세의 노령으로 문도들을 포함하여 自募한 승군 1,500명을 거느리고 順安 法興寺에 주둔하였다. 법흥사 주둔 의승군은 휴정의 위촉을 받은 義嚴에 의해 잠시 통솔되었는데, 의엄은 황해도에서 봉기한 義僧將이었다. 이어 관동을 중심으로 8백 명의 의승군을 모아 평양성 인근에 주둔해 있던 휴정의 제자 惟政이 합류하고부터 법흥사 의승군의 지휘는 유정이 맡았다. 이렇게 해서 의승군의 본거지가 된 법흥사 鎭營에 집결된 의승군의 수는 5천여 명에 이르렀다. 그 밖에 호남 지리산에서 處英이 의승군을 모아 봉기한 것을 비롯하여 각 도에서 의승군이 일어나고 있지만, 왜란 기간중의 정확한 의승군 수는 파악되지 않는다. 다만 법흥사에 집결했다는 그 인원을 통해 의승군 활동 초기의 규모를 유추해 볼 뿐이다.

 이런 의승군이 전국적인 조직을 이루었을 것임은, 이미 선조가 휴정에게 내린 팔도십육종도총섭의 직함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중앙에 도총섭을 두고 그 아래로는 전국 8도에 각각 선·교 양종 2명씩 16명의 총섭을 둔 조직체계인 것이다. 조정으로부터 임명되어 직첩을 받았던 도총섭과 총섭은 ‘領軍討賊之僧’을 가리키는 명칭으로서,0774) 그것이 전국에 걸쳐 시행된 것은 선조 26년 8월부터였다. 그러나 마치 선·교 양종의 복구를 방불케하는 이 일원체계는, 바로 이 점 때문에 조정 유신들의 논란 대상이 되기도 하여 각 도에 반드시 2명씩의 총섭이 임명되지는 못하였다.0775)

 도총섭·총섭의 지휘를 받는 의승군은 都元帥의 節制下에 관군과 협력하거나 또는 독자적으로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한편 군량운송과 산성 축성 등 후방지원을 담당하며 準官軍의 형태로 활동하였다. 우선 임진왜란 당시 크고 작은 전투에서 활약한 의승군의 주요 전적을, 선조 26년 서울이 수복되어 왕이 還都하는 그 해 7월까지로 한정하여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0776)

① 靈圭軍·趙憲軍 청주성 수복 (선조 25년 8월) ② 영규군·조헌군 錦山 전투, 전멸 (선조 25년 8월) ③ 信悅軍·진주성 방어전 때 丹城에서 전투 (선조 25년 10월) ④ 休靜·惟政軍 평양성 탈환 전투 참전 (선조 26년 1월) ⑤ 處英軍 행주산성 전투에 참전 (선조 26년 1월) ⑥ 義能·三惠水軍 薺浦 공격에 참전 (선조 26년 7월) ⑦ 유정군 진주성 방어전 참전 (선조 26년 6월) ⑧ 도총섭 휴정 1백 명의 승군과 還都하는 大駕수행 (선조 26년 7월)

 이 밖에도 의승군의 전투활동은 육·해전을 막론하고 전국 일원에서 끊임없이 계속되어 큰 전적을 올렸다. 그러나 선조 26년 4월 서울이 수복되고 왜적이 남하하여 전황이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의승군 활동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장기전에 대비하여 군량운송에 의승군이 투입되거나 대부분 의승군이 각지의 산성 축성의 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또 일부 의승군들은 주둔지역 내에서 군량 조달을 위해 屯田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거나 뗄감을 모으는 등 전쟁물자 비축의 임무를 수행하고도 있다. 이같은 후방지원 및 전쟁대비 활동 가운데서도 특히 의승군의 산성축성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전국 각지에서 대대적으로 이루어져 갔다.0777) 유정이 西生浦에 주둔해 있던 적장 加藤淸正의 진영을 출입하면서 일본의 강화조건이 불가함을 역설하고 罷兵을 종용하는 등 외교활동을 벌였던 것0778) 또한 의승군 활동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의승군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여러 방면에 걸쳐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한편 7년간에 걸친 지루한 왜란이 끝나고 그 상처가 가시기도 전에 다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에도 의승군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전쟁의 성격상 임진왜란 때의 의승군 활동에 비해 크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이 때의 의승군 규모나 활약 또한 주목해 볼만 하다. 정묘호란 때에 활동한 의승장은 明照였다. 휴정-유정계의 법맥을 잇고 있는 그는 인조 5년(1627) 後金이 來侵했을 때 조정으로부터 八道義僧都大將에 임명되어 4천여 명의 의승군을 거느리고 安州에서 항전하여 큰 전공을 세웠다.0779) 다시 인조 14년에 淸軍이 침입했을 때에는 의승장 覺性의 활동이 돋보인다. 임진왜란 때 明將 李宗城과 함께 海戰을 지원하기도 했던 그는 선조 2년(1624) 승군의 남한산성 축성시에는 8도도총섭으로서 役事를 감독하여 3년만에 축성을 완성한 바 있다. 역시 휴정의 동문 浮休의 제자인 각성은 축성을 완료한 뒤 화엄사에 있던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승군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주로 남방 각지에서 모여든 3천여 명의 의승군을 ‘降魔軍’이라 이름하고 스스로 의승대장이 되었다. 각성은 이 의승군을 이끌고 북상하던 중 淸과의 굴욕적인 강화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진군을 중지하였다.0780)

 이상에서 대강 살펴온 바와 같이 조선 중기 의승군 활동은 전 불교계가 능력과 관심을 총집결시켰을 만큼 가장 비중이 큰 활동이었다. 그 결과로서 특히 임진왜란 이후 불교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인식이 새로워지고 어느 정도 그 위상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의승군 활동은 어디까지나 불교 외적인 활동이었다. 따라서 국가의 성리학적 이념의 기본 억불방향에 큰 변화는 없었던 것이며, 불교계 또한 전후에는 다시 산중승단으로 돌아가 守黙할 수밖에 없었다.

<李逢春>

0771)≪宣祖實錄≫권 26, 선조 25년 5월 병술.
0772)≪宣祖修正實錄≫권 26, 선조 25년 7월 무오.
0773)<淸虛堂休靜大師碑銘>(≪朝鮮金石總覽 上≫), 854쪽.
0774)≪宣祖實錄≫권 48, 선조 27년 2월 병자.
0775)安啓賢,<朝鮮前期의 僧軍>(≪韓國佛敎思想史硏究≫附篇, 東國大 出版部, 1983), 386∼392쪽.
0776)李章熙,<壬辰倭亂僧軍考>(≪李弘稙博士回甲記念 韓國史學論叢≫, 1969).

安啓賢, 위의 글.

禹貞相,<朝鮮佛敎의 護國思想에 대하여>(≪朝鮮前期佛敎思想硏究≫, 東國大 出版部, 1985).
0777)李章熙, 위의 글, 349∼354쪽.
0778)惟政의 행적 및 임진왜란 중 활동에 관해서는 金東華·金煐泰·睦楨培,≪護國大聖四溟大師硏究≫(東國大 佛敎文化硏究院, 1971) 참조.
0779)<虛白堂大師碑銘>(≪朝鮮金石總覽 下≫), 914쪽.

≪虛白集≫盧夢修序(≪韓國佛敎全書≫8), 380쪽.
0780)<華嚴寺碧巖大師碑銘>(≪朝鮮金石總覽 下≫), 918쪽.

<法住寺碧巖大師碑銘>(≪朝鮮金石總覽 下≫), 923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