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기타 신앙 및 도교·민속과의 습합
觀音과 地藏신앙 또는 十王·七星·山神신앙 내지는 도교 및 민속과의 습합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의 불교신앙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대승불교의 신앙에 있어서 가장 보편성을 지니는 관음신앙의 경우, 그것은 정토와 밀교신앙 속에서 드러나는가 하면 華嚴이나 法華사상을 통해 표출되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관음신앙은 밀교의 다라니나 功德·靈驗談 등을 통해 거의 전시대에 걸쳐 유행하였다. 그러나 관음관계 전적의 간행으로 보는 한 그것이 중기에 집중되어 있음은0769) 매우 이채롭다. 역시 이 시기의 정치적 불안 및 사회혼란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장·시왕신앙 등은 49齋나 水陸齋·豫修齋 등을 포함하는 亡者薦度 의례와 깊이 연관된다. 조선시대에는 불교 遺風의 인위적인 제거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망자천도에 관한한 불교와 민중은 그 의례를 중심으로 여전히 밀착관계를 유지하였다. 이런 점에서 지장·시왕신앙의 유형 또한 조선 중기에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밖에 도교 및 습합된 불교신앙 형태도 어느 시대나 예외없이 나타난다. 위의 시왕신앙도 도교적인 사상과 결부되어 있지만 칠성신앙은 더욱 그 색채가 짙은 민간신앙에 속한다. 수명과 생산 또는 복덕을 바라는 기복적인 칠성신앙이나 산악숭배에서 출발하는 애니미즘적인 산신신앙은 현재에도 불교 안에 나란히 공존하고 있다. 또한 安宅·端午·百中·冬至 등 민간 전승의 세시풍습들도 불교신앙 속에 흡수되거나 밀착된 형태로 지속되어 내려오고 있다.0770)
이러한 불교신앙의 여러 형태들은 그대로 조선 중기의 사회상과 불교적 현실의 반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시의 유교적 가치규범과 사회불안 속에서 민중은 종교적 욕구를 불교에서 해소할 수밖에 없었고, 불교 또한 그런 민중의 다분히 주술적이고 기복적인 요구까지도 함께 수용하면서 그 명맥을 유지해 나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