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3권 조선 후기의 경제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3. 광작과 지주제1) 농촌사회 분해와 광작농의 대두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1. 인구의 증가와 분포
          • 1) 인구의 증감
          • 2) 인구의 분포
        • 2. 농업생산력의 발달과 상품작물의 재배
          • 1) 수전농업의 생산력
            • (1) 이앙법의 보급
            • (2) 새로운 품종의 보급
            • (3) 시비법의 발달
            • (4) 새로운 농업기술의 보급
          • 2) 한전농업의 생산력
            • (1) 품종의 증가와 새로운 작물의 보급
            • (2) 새로운 농업기술의 보급
            • (3) 시비법의 발달
            • (4) 윤작의 실시
          • 3) 농구와 수리시설
            • (1) 농기구의 발달
            • (2) 수리시설의 확대
            • (3) 상품작물의 재배
        • 3. 광작과 지주제
          • 1) 농촌사회 분해와 광작농의 대두
            • (1) 광작과 광작농
            • (2) 광작론과 반광작론
          • 2) 지주제의 변동
            • (1) 농촌사회 분해와 토지의 상품화
            • (2) 지주제의 변동과 그 대책
          • 3) 농업에서의 자본주의 맹아론
            • (1) 자본주의 맹아론과 내재적 발전론
            • (2)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생
        • 4. 임노동의 발생
          • 1) 농민층의 분화
            • (1) 부역제의 한계
            • (2) 노동력 수요의 증대
            • (3) 노동예비군의 형성
          • 2) 임노동자의 출현
            • (1) 유민의 증대와 대책
            • (2) 고용관계의 수립
          • 3) 임노동의 양상
            • (1) 임노동의 종류
            • (2) 임노동의 조건
        • 5. 수공업의 발달
          • 1) 자영수공업체제의 형성과 발전
          • 2) 상업자본의 생산적 전회와 선대제의 발생
          • 3) 매뉴팩처의 발생
            • (1) 유기산업부문
            • (2) 야철산업부문
            • (3) 직물산업부문
            • (4) 광업부문
        • 6. 광업의 발달
          • 1) 18세기「별장」제하의 광업 실태
            • (1)「별장」제의 성립과 군수광업의 몰락
            • (2)「별장」제하 은점의 경영 실태
          • 2) 18세기말 19세기 전반「물주」제하의 광업 실태
            • (1)「별장」제의 폐지와「수령수세」제의 성립
            • (2) 물주제하의 광산경영 실태
        • 7. 어·염업의 발달
          • 1) 어업
            • (1) 상품화폐경제의 발달과 어업의 발달
            • (2) 수산물의 종류
            • (3) 어구·어법
            • (4) 어전·방렴류
            • (5) 대규모 어업의 발달
            • (6) 수산양식업
            • (7) 수산제조업
          • 2) 염업
            • (1) 소금과 염업의 중요성
            • (2) 소금 생산방법
            • (3) 제염기술의 발전
            • (4) 소금의 유통구조
            • (5) 염업에 대한 정책
        • 8. 운수업의 발달
          • 1) 육상운송
            • (1) 조선 후기 역의 운영 실태
            • (2) 파발제의 성립과 발달
            • (3) 역마확보의 변화와 고립제
          • 2) 수상운송
            • (1) 관물의 운송
            • (2) 사물의 운송
          • 3) 원과 주막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1. 상인층의 성장과 도고상업의 전개
          • 1) 관상도고의 활동
            • (1) 시전도고의 활동
            • (2) 공인의 활동과 공인자본의 성격
            • (3) 경·영주인과 영저도고의 활동
          • 2) 사상도고의 활동
            • 가. 서울지역에서의 사상의 활동과 신해통공
            • 나. 서울 주변지역에서의 사상도고의 활동
            • 다. 상품생산지 및 집산지에서의 사상도고의 활동
          • 3) 반도고활동의 전개와 상업계의 동향
            • 가. 관상도고에 대한 반도고운동
            • 나. 사상도고에 대한 반도고운동
        • 2. 상품의 유통
          • 1) 농촌장시의 발달
            • (1) 상업적 농업과 농촌수공업의 발달
            • (2) 육상교통의 발달과 장시의 증가
            • (3) 농촌장시의 발달과 시장권 확대
          • 2) 포구상업의 발달
            • (1) 해상교통의 발달과 포구시장권의 형성
            • (2) 경강포구의 상업발달
            • (3) 외방포구의 상업발달
            • (4) 포구상업세력의 성장과 상품유통
          • 3) 상업도시의 형성
            • (1) 전국적 시장권의 형성
            • (2) 서울의 상업도시로의 성장
            • (3) 지방 상업도시의 출현
          • 4) 상업자본의 축적
            • (1) 시전상업체제의 변동과 사상의 성장
            • (2) 도고상업과 상업자본의 축적
            • (3) 상업자본의 생산자 지배
        • 3. 금속화폐의 보급과 조세금납화
          • 1) 금속화폐의 보급과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1) 동전유통 정착의 경제적 기반
            • (2) 17세기말∼18세기 중엽 금속화폐의 유통
            • (3) 18세기 후반∼19세기 중엽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2) 조세금납화와 봉건적 수취체제의 해체
            • (1) 조세금납의 성립조건-17세기 수취제도의 모순
            • (2) 17세기말∼19세기 중엽 조세금납의 전개
            • (3) 19세기 전반 화폐수탈의 급증과 사회적 모순의 심화
        • 4. 대외무역의 전개
          • 1) 청과의 무역
            • (1) 17세기 부연역관의 청·일 간 중계무역
            • (2) 17세기말 18세기 전반 무역별장의 등장과 역관·상인 간의 대립
            • (3) 18세기 후반 19세기 전반 연상무역의 발전과 산업부문 침투
          • 2) 일본과의 무역
            • (1) 무역의 범주
            • (2) 상인
            • (3) 상품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광작론과 반광작론

 광작의 의의에 대해서는 그것을 극력 반대하는 입장과 적극 지지하는 입장으로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앙법과 관련해서도 그러한 논의는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이후 농업경영에 대한 제반 논의를 집약화의 방향 속에 소농민경영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광작화의 방향에서 수렴해 가느냐의 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그러므로 단순히 이앙법이 한발에 약하기 때문에 금지해야 한다는 농업기술사적인 측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사회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 하는 농업정책사적인 문제까지 관련되어 논의될 것이었다. 즉 국가경제 차원에서 소농보호를 표방한 反廣作論 입장과 私經濟 차원에서 광작의 긍정적인 측면을 주목한 廣作論의 대결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광작은 이 시기 지주제와 관련하여 전개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선 지주의 토지를 자작농이나 작인농민이 광작했다는 점에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작에 관한 논의는 지주제 자체가 아니라 지주제를 전제로 해서 나타나는 차경만이 문제가 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양반 지배층의 입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지주제가 아니라, 지주의 토지를 자작농이나 작인농민이 지나치게 광점함으로써 빈농층이 몰락한다는 점에 있었다.

 우선 광작을 반대하는 반광작론의 근거를 주목해보자.

 이앙법은 농민층의 대다수가 선호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가지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발에 약했기 때문에 조선 초기 이래 금지령이 내려지고 있었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농민보호 대책으로서 원칙상 이앙법을 금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반광작론의 입장에 선 대표적인 농학자로는 禹夏永을 들 수 있다. 향촌 유생인 그는 정조에게 시무책을 건의하면서≪千一錄≫을 후세에 전하게 되었는데, 18세기 후반의 다른 농학자와는 달리 광작경영에 대해 비판적이었다.≪農事直說≫단계의 精農的인 집약화를 기본사상으로 하여 노동력의 집약적인 투입에 의한 토지생산성의 고도화를 추구했던 그에게 광작은 생산력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으로 비쳤다.0157) 그가 광작을 반대한 것은 광작농이 경작지를 독점한다는 점과 광작할 경우 비료를 충분히 주지 못하여 토지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점 때문이었다.

 한편 소농경영에 있어 광작의 방향이 아니라 집약화의 방법을 생각했던 농민층이 있을 수 있다. 이앙법을 통해 노동력을 절약할 수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광작하려 했지만 반대로 소농민의 경우 그들의 노동력만으로 광작경영을 행할 수 있었을까는 의문이다. 이들은 농업 노동력과 자본을 확보할 수 없을 때는 광작보다는 집약화의 방향을 취할 가능성이 있었고 더욱이 차경지를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 더욱더 집약화의 방향으로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17세기 후반 이후 시비법이 발달하고 이앙법이 전국적으로 보급되자 절감된 노동력을 광작보다 밭 작물에 투입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은 바로 그러한 예이다.0158)

 이같은 광작 비판의 입장은 경작지의 분배를 균등히 해야 한다는「均竝作論」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分耕論의 형태로서 차경지의 균등한 분배나 경작지 제한을 주장했다.0159) 李圭景은 토지소유권과는 상관없이 경작지만은 귀천없이 戶口의 다과와 壯弱에 따라 균등하게 나누어 경작해야 한다고 均耕論을 주장했다. 정조 20년(1796) 靖陵直長 愼師浚은 작인의 지대를 2/10∼3/10으로 제한하고 경작지는 兩班士夫는 5결, 良人常漢은 3결로 제한하자고 하는 限耕論을 주장했다. 李光漢의 貸田論0160)은 이규경의 균경론과 비슷하다.

 반광작론의 공통점은 광작경영과 그로 인한 소농민의 몰락을 우려하면서 그것을 사회문제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보고 있는 점이다. 이같은 논의는 곧≪農家集成≫이래 정부지배층의 소농보호 차원에서 제기된 농업개혁론과 맥을 같이한다. 이들은 토지의 균분·제한을 주장하는 均田論·限田論의 모순 인식태도와 달리 지주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가운데 나타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서 균병작론을 생각했던 것이다.

 한편 국가의 광작금지 정책에도 불구하고 광작화의 방향은 역사적 대세로서 확대되어 갔다. 이앙법은 한발에 약하지만 높은 생산성 때문에 수리시설이나 시비법이 발달하면서 더욱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갔고, 숙종연간에는 <권농절목>을 제정하여 ‘奉天高燥’한 畓에서만 이앙을 못하게 하고, 물을 댈 수 있는 곳에서는 허락하기에 이르렀다. 영조연간 이후 이앙법 금지령은 사실상 폐지되었다.0161)

 광작경영은 粗放的이라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소농민경영의 경우는 집약경영을 통해 단위 면적당 토지생산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지만, 광작농의 경우는 조방경영을 통한 생산성 제고를 노리고 있었다. 광작의 조방적 성격은 물론 농업기술이 뒷받침될 때 더욱 높은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광작경영의 생산성은 농업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할 뿐 아니라, 고용노동이 확보되어야만 보장될 수 있었다. 노비노동의 비효율적 측면이 두드러지기 시작하면서 집중적인 농업노동력이 필요한 당시 농촌에서는 고용노동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7세기말 농업환경의 개선을 위해 傭役法을 주장했던 柳馨遠은 누구나 자유롭게 고공이 될 수 있도록 명분을 세워 ‘奴主之分’과 다른 ‘雇工之分’을 세운다면 고공이 많아질 것이라고 이미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노비제도를 바꾸어 ‘傭役之法’을 세운다면 기꺼이 고공이 되려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같은 쌍방간의 합의에 의한 和雇는 신분제사회 내의 고용-피고용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고 더 나아가 고용관계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었다.0162)

 이같은 고용노동은 18세기 이후 광작이 일반화되면서 결합될 수 있었다. 농번기에 일용노동력이 필수적인 상황은 영조 37년(1727) 朴文秀가 올린 啓聞 가운데 잘 나타난다.0163)

一日之役은 모름지기 10인으로 하는데 鋤手에게는 貰糧米 3升과 雇價 5分錢을 지급한다. 3차례의 鋤耘과 1차례의 刈穫, 1차례의 打場에 들어가는 노동력이 근 50인에 이른다(≪備邊司謄錄≫82책, 정조 3년 10월 22일).

 이같은 농업노동의 계절적 성격 때문에 18세기 중엽 이후가 되면 일종의 청부노동형태인 雇只노동까지 나타나고 있었다. 이것은 겨울과 춘궁기를 넘기는 빈민의 노동력 궁박판매형태로서 농작업의 일부 또는 전체를 계약에 의해 경작해주는 방식이다. 부농층의 경우 농번기에 노동력을 효과적으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고지노동이 효과적이었던 것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고지노동이 발달한 곳은 주로 평야지대였다. 辛敦復의≪厚生錄≫·≪山林經濟〔補說〕≫에 의하면, 18세기 이후 특히 전라도의 金堤·扶安·沃溝·井邑·高敞·全州·益山 등의 지역을 비롯해, 경기도의 振威·水原·平澤·稷山, 황해도 載寧 등지에서 고지노동이 발달하고 있었다.0164) 그 예로 직산·평택지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겨울에는 1緡(兩)으로 10인을 買傭할 수 있었고, 여름에는 12∼13인을 고용할 수 있었기에 三石畓 三石田 경작에 상용노동력 1남 2녀와 매용노동력 80인이면 족하다고 했다. 1석락 水田이라면 이앙에 20인, 鋤耘에 20인이면 되었다(辛敦復,≪山林經濟[補說]≫권 1, 治農 傭作之法).

 지역에 따라 고지노동의 발달 정도는 차이가 있었지만, 당시 유통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대도시 부근에서는 더욱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상업적 농업에 편승한 광작층의 노동고용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노동력의 효과적이고 집중적인 투입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고용노동은 광작을 하는 농업경영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광작경영의 관건은 노동력 고용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작을 통한 조방경영의 생산성은 이른바 노동력의 효율적인 투입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경영 방식이었다. 그것은 광작농민이 선호하는 것으로서 소농안정을 정책적으로 추구했던 국가지배층의 집약화 방향과는 궤를 달리하는 농법이었다. 국가경제 차원에서는 집약화를 통한 안정적인 토지생산성 확보를 바랬지만, 사경제 차원에서는 이 시기 농법 발달과 상업적 농업의 발달을 배경으로 노동력의 집중적인 투입을 통한 노동생산성 확보에 관심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0157) 宮嶋博史, 앞의 글.
0158) 金建泰, 앞의 글.
0159) 宋贊植, 앞의 글.
0160) 李潤甲, 앞의 글.
0161) 金容燮, 앞의 글(1964a).
0162) 崔潤晤, 앞의 글(1990).
0163) 崔潤晤, 앞의 글(1992).
0164) 허종호, 앞의 책.

金容燮,<≪山林經濟≫의 [補說]과 그 農業經營論>(≪邊太燮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 1985).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