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방에서의 유통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서의 소금유통 실태를 규명하는 작업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그 이유는 대상범위가 광범하고 분산적이어서 체계적으로 살펴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 소금이나 어물의 유통은 지방에서도 그 성격상 밀접한 관계가 있었으나, 소금이 어물보다 더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었다. 왜냐하면 어물은 다른 물건으로 대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쉽게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인구가 많고 기후가 따뜻한 下三道 내륙지방에서는 특히 무더운 여름철에 음식물의 부패 변질이 심하였으므로, 이를 방지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는 소금이 매우 필요하였다. 그 결과 소금에 대한 수요는 다른 어느 지방보다 컸으며, 특히 경상도 내륙지방은 더욱 그러하였다. 따라서 당시 경상도지방에서의 소금유통 실태를 살펴봄으로써 다른 지방의 그것을 유추하고자 한다.
이 시기에 들어와 경상도지방에서 소금생산지로 유명한 곳은 金海의 鳴旨島였는데,0635) 이 섬은 낙동강 河口에 있었다. 여기서 생산된 소금은 낙동강을 통하여 내륙의 각 고을로 유통되었으므로, 그 곳은 소금을 거래하기 위하여 몰려온 선박들로 붐볐다.0636) 그러므로 포구 일대에는 어염거래를 중개하는 선주인들이 크게 활동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이윤 또한 많았으므로 19세기에 들어와서도 魚鹽商船主人 자리는 비싼 값으로 매매되고 있었다.0637)
낙동강 하구에서 선주인의 중개로 소금을 사들인 상인들은 배를 이끌고 상류쪽으로 강을 거슬러 오면서 소금을 판매하였다.0638) 당시 낙동강은 수상교통의 중추적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유역에 산재한 각 지방의 육상교통까지 발달시켜 그 부근에 도회지를 이루게 하였다. 이러한 곳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에 들어와 場市가 형성된 것은 전국 각 지방의 공통적인 현상이었다.0639)
특히 尙州지방의 洛東場은 낙동강 하류로부터 이곳까지는 강폭도 넓고 수량이 많아, 선박을 통한 수상교통이 발달하여 소금을 비롯한 상품의 집산지로 이름이 높았다. 이와 같이 수운이 편리한 지방은 선박에 의하여 소금이 주로 유통되고 있었으나, 그렇지 못한 곳은 수운이나 육운 양면을 통하여 유통되거나 육상운송 위주로 유통되는 지방도 있었던 것이다.
安東지방의 경우를 보면 이곳은 낙동강 상류지역으로 낙동강 수로를 통하여 소금이 유통되기도 했으나, 상류의 수량이 풍부하지 못하여 동해안에서 생산된 것이 육로를 거쳐 들어오는 일도 많았다. 육로운송의 대표적인 유통시장은 안동부의 동쪽 약 50리 지점에 위치한 鞭巷場으로, 이곳을 중심으로 경상도 북부지방의 소금과 어물유통이 비교적 활발하였다. 그러나 수로가 통하기 어려운 산골 내륙지방에서는 우마차나 등짐을 이용한 육상운송이 소금유통의 주류를 이루었다.
조선 후기 지방의 소금유통에 있어서 褓負商들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그 가운데 부상은 소금이나 기타 수산물 등을 주로 육상을 통하여 유통시켰는데, 이 시기에 이르러 각 지방에 장시가 증설되자 이곳을 서로 연결하면서, 수산물 거래를 통하여 많은 이윤을 확보하였다.0640)
그러나 세도정치 등으로 정치기강이 문란해지자, 각 지방의 관리들도 이에 편승하여 장시에서 무리한 場稅 징수를 강화하였다.0641) 따라서 지방에서 소금유통에 종사하던 사람들도 이익의 상당 부분을 빼앗기게 되어 자율적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