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Ⅲ. 갑오경장4. 갑오경장의 역사적 의의1) 갑오경장의 실시상황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1. 청일전쟁과 1890년대의 동아시아
        • 2. 전쟁의 배경과 전개
          • 1) 조선에서의 청·일 대립
          • 2) 일본의 전쟁 준비와 갑오농민전쟁
        • 3. 전쟁의 경과
          • 1) 한반도에서의 전투와 황해 해전
          • 2) 중국에서의 전투
        • 4. 중재와 강화
          • 1) 열강의 중재
          • 2) 강화 외교
        • 5. 전쟁의 영향
          • 1)<시모노세키 강화조약>과 전후의 동아시아
          • 2) 전쟁의 영향과 의의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1. 청·일군의 조선 출병과 농민군의 전주성 철수
        • 2. 청일전쟁의 발발과 농민군의 정세인식
        • 3. 평양전투와 농민군의 동향
        • 4. 일본군의 청국 진입과 농민군의 재봉기
      • Ⅲ. 갑오경장
        • 1. 제1차 개혁
          • 1) 제1차 개혁의 배경
            • (1) 동학농민봉기에 대한 정부의 대응
            • (2) 청일전쟁 중 일본의 대한정책
          • 2) 제1차 개혁의 추진세력
          • 3) 제1차 개혁의 내용
            • (1) 대외관계의 개혁
            • (2) 동학 ‘비도’에 대한 대책
            • (3) 정치·행정제도의 개혁
            • (4) 지방행정제도의 개혁
            • (5) 경제제도의 개혁
            • (6) 군사제도의 개혁
            • (7) 경찰제도의 개혁
            • (8) 사법제도의 개혁
            • (9) 사회제도의 개혁
            • (10) 교육제도의 개혁
        • 2. 제2차 개혁
          • 1) 제2차 개혁의 배경
            • (1) 항일운동의 탄압
            • (2) 내정개혁의 추진
          • 2) 제2차 개혁의 추진세력
          • 3) 제2차 개혁의 내용
            • (1)<홍범 14조>의 반포
            • (2) 대외관계의 개혁
            • (3) 정치제도의 개혁
            • (4) 지방행정제도의 개혁
            • (5) 경제제도의 개혁
            • (6) 군사제도의 개혁
            • (7) 경찰제도의 개혁
            • (8) 사법제도의 개혁
            • (9) 사회제도의 개혁
            • (10) 교육제도의 개혁
            • (11) 기타 개혁
        • 3. 제3차 개혁
          • 1) 제3차 개혁의 배경
          • 2) 제3차 개혁의 추진세력
          • 3) 제3차 개혁의 내용
            • (1) 대외관계의 개혁
            • (2) 정치제도의 개혁
            • (3) 지방행정제도의 개혁
            • (4) 경제제도의 개혁
            • (5) 군사제도의 개혁
            • (6) 경찰제도의 개혁
            • (7) 교육제도의 개혁
        • 4. 갑오경장의 역사적 의의
          • 1) 갑오경장의 실시상황
            • (1) 대외적 자주·독립의 선양 조치
            • (2) 정치제도
            • (3) 지방제도
            • (4) 경제제도
            • (5) 군사·경찰제도
            • (6) 사법제도
            • (7) 사회제도
            • (8) 교육제도
          • 2) 갑오경장의 역사적 자리매김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정치제도

갑오경장 기간에 채택된 내각제도는 국왕 및 왕실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내각중심의 입헌군주제 정부를 수립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관파천 이후 고종과 수구파 관료들은 실추된 왕권을 강화시키는 것을 급선무로 삼았다. 따라서 그들은 국가의 위신을 회복하고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왕의 권위를 높이고 중앙정부의 운영을 정상화시켜야 된다는 판단 하에 내각제를 폐지하고 의정부를 복설하였다.

내각제 폐지 논의는 1896년 2월 말경에 南路宣諭使로 파견되었다가 6월 4일에 학부대신에 취임한 申箕善에 의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그는 당시의 모든 주요 관제를 갑오경장 이전으로 복구시키라는 상소를 국왕에게 올렸다. 그는 내각제에 대해 “정부에 규칙이 있어 내각대신이 국사를 의론하여 일을 작정하는 것은 님군의 권리를 빼았는 것이요 백성에게 권리를 주는 것이니 이것은 모두 이왕 정부에 있던 역적들이 한 일이라”고 비판하였다.599) 이에 대해서≪독립신문≫은 내각의 권한 강화가 곧 군주권의 약화를 초래한다는 논리를 부정하는 동시에 민권을 보장 내지 확대시키려 했던 갑오경장의 개혁정신을 옹호하고, 나아가 서양의 선진 제도를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600)

한편 6월 초순 고종은 내각을 폐지하고 의정부를 복설하라는 밀지를 金炳始 등에게 내렸다. 이에 김병시 등은 영의정 및 좌·우의정을 두고 각부의 명칭을 吏·戶·禮·兵·刑·工·外部 등 7부로, 大臣을 尙書로, 協辦을 侍郞으로 각각 바꾼다는 의정부 復舊案을 국왕에게 올렸다. 또한 신기선·심상훈 등은 승정원을 부활시키고, 다른 관명·직명들을 舊制로 복구함으로써 완고한 지방 유생층의 호응을 유도하였지만 그대로 실현되지는 않았다.601)

그러나 지방제도의 개편 이후 내각의 존폐 문제에 대해서 타협이 이루어져 9월 24일에 의정부가 부활되었다. 이 때 고종은 갑오경장 당시 의정부를 내각으로 개칭함으로써 “典憲은 이로 말미암아 무너지고 中外는 이로 말미암아 騷然하여 百官萬民의 憂憤痛駴함이 이제 3년이며 국가의 汚隆에 관계됨이 또한 컸다”고 반성하면서 “舊章을 率하되 新規를 참고하여 무릇 民國의 편의에 관계된 것은 짐작 절충하고 반드시 시행되기를 힘쓰라”는 취지의 조칙을 반포하였다.602) 이로써 근대적 내각의 기능을 유지한 채 전통적 의정부의 형식을 갖춘 절충형의 새로운 의정부체제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 조칙에 의거해서 당일에 칙령 제1호로<議政府官制>가 제정되었다. 이<의정부관제>는 “대군주폐하께서 萬機를 統領하사 의정부를 설치하시니라”고 규정하여 국정의 운영권이 국왕에게 있음을 선포한 前文과 3款 35條로 구성되었다. 그 3款(職員·會議·奏案)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의정부의 구성원으로는 총리대신을 개칭한 議政, 내부대신이 例兼하는 參政, 외부·탁지부·군부·법부·학부·농상공부 등 6部의 대신을 포함한 11인의 贊政, 그리고 參贊 1인 등을 두었다. 다음으로 의정부 회의는 각료들만 개회할 수 있었던 종전의 내각제도와는 달리 국왕이 會[議]席에 친임하거나 왕세자가 代任한 가운데 열릴 수 있으며, 법률·규칙·제도의 신·개정 및 폐지, 외국과의 開戰과 조약체결, 내란진압, 전선·철로·광업개설, 세출입의 예·결산 및 예산외의 특별지출, 조세제도 개혁, 직원봉급의 개정, 民有토지·삼림의 보상, 대군주폐하의 特別下付사항, 법률·장정의 반포 등 중요한 국정 사항을 의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奏案에서는 의정부에서 결정된 의안을 국왕이 재론시키거나 부결된 의안을 재가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603) 이처럼 새로 마련된 의정부제도는 갑오경장으로 인하여 약화되었던 왕권을 강화시키려는 데 그 특징이 있었다.604)

그러나 이<의정부관제>는 형식상 총리대신을 의정으로 개칭하고 참정·찬정·참찬 등 새로운 직제·직명들이 추가되었을 뿐 각 부의 구성과 권한은 실제로 내각제도와 큰 차이가 없었다. 또한 내각제도 하에서 내각과 분리되어 있던 궁내부대신은 다른 각 부의 대신들과 달리 찬정을 예겸할 수 없도록 규정함으로써 의정부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고, 의정부에서 결의된 주요 사안은 비록 국왕에 의해 최종적으로 결정되지만 회의에서만은 참석자들간에 자유로운 토론이 보장되었다. 그리고 지방관의 임용권을 장악한 내부대신의 지위를 다른 대신들보다 우위에 두었다. 이러한 조항들은 왕권을 강화하면서 내각제도에서와 같이 의정부의 기능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조치였다.605) 따라서 새 의정부관제는 갑오경장 때 채택된 내각제도의 장점을 수용하면서 국왕의 권위를 높여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편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에서 환궁한 후 군주권을 강화시키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1897년 10월 13일 조야의 칭제 요구를 받아들여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즉위식을 거행함으로써 국정의 운영권을 직접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후 1898년 6월에는<議政府次對規則>이 반포되어 의정 이하 각 부 대신들이 매주 1회 모여 황제의 자문에 응하는 入對가 실시되고, 또한 매일 2명씩 돌아가면서 입대하는 전통적인 次對가 부활되었다. 이로써 고종은 군권을 제약하였던 각종 규제에서 벗어나 국정을 주도할 수 있는 권한을 회복한 것이다.606)

또한 고종은 1898년 봄부터 내각의 자문기관으로 전락한 중추원을 근대적의회로 개편·활용하자는 독립협회의 요구를 묵살하고, 독립협회마저 해산시킴으로써 황제권을 공고히 하였다.607) 이어서 1899년 7월 2일에 고종은 교전소를 法規校正所로 개칭하고 새로운 국제를 마련토록 지시한 결과 8월 17일에 법규교정소에서 마련한<大韓國國制>가 반포되기에 이르렀다.

<대한국국제>에 의하면, 대한제국은 세계 만국이 공인한 자주독립국이자 萬世不變의 專制政治國이었다. 따라서 황제는 육·해군의 통솔 및 편제, 계엄 및 해엄, 법률의 제정·반포·집행·개정과 사면·복권, 행정 각부의 관제와 문무관의 봉급 제정·개정, 관리의 임면, 외국과의 조약·선전·강화·사신파견 등에 관한 권한을 행사하게 되었다.608) 즉, 황제는 행정·사법·입법은 물론 군사·외교 등 국정 전반에 걸쳐 무한대의 불가침적 군권을 향유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받게 된 것이다.609)

<대한국국제> 선포 후 고종은 갑오경장 때 신설된 궁내부의 권한을 강화시키고 이를 충분히 활용하면서 황제권을 확장하였다. 궁내부는 갑오경장 기간 탁지부 관할 아래 놓여진 각 궁 소관의 宮庄土와 驛屯土, 漁鹽稅·船稅·包肆稅 등 각종 잡세의 수세권 및 홍삼 전매권을 탁지부로부터, 광산 이권을 농상공부로부터 각각 이관받아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또 화폐주조 수입을 독차지함으로써 황실의 재정수입을 확장하였다. 아울러 궁내부는 갑오경장으로 위상이 격하되었던 弘文館·敦寧院·太醫院과 근대화사업 추진과 관련있는 通信司·鐵道院·鑛學局, 그리고 팽창되는 황실재산을 관리하는 內藏院 등을 그 산하에 두었다. 이처럼 궁내부의 조직이 비대하고 소관업무가 방대해짐에 따라 의정부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었고 국고수입이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610)

이상과 같이 갑오경장 기간 입헌군주제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제정되었던 내각제도는 대한제국기에 이르러 폐기되고 말았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대한국국제>를 반포함으로써 갑오경장 때의 내각제 실시와 독립협회의 의회개설 시도 등으로 위협받았던 전제군주제를 공고히 하였다. 아울러 고종은 궁내부의 조직과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내각제 대신 부활된 의정부의 기능마저 약화시켰다. 그 결과 군주권은 갑오경장 이전보다 더 강화되고 있었다.611)

599)≪독립신문≫, 1896년 6월 4일.
600)≪독립신문≫, 1896년 6월 4일.
601)韓哲昊,<俄館播遷期 貞洞派의 개혁활동>(≪한국근현대사연구≫4, 1996), 303∼304쪽.
602)≪韓末近代法令資料集≫2, 177∼178쪽.
603)≪韓末近代法令資料集≫2, 179∼184쪽.
604)宋炳基, 앞의 글(1976a), 58∼59쪽.
605)≪독립신문≫도 개정된 의정부에 대해 “새 관제는 유럽과 미국정부를 지배하는 법들과 유사하며, 그리고 관료계층의 가능한 부패를 최소화시키게 될 것이다”고 긍정적으로 평하였다.≪The Independent≫, 1896년 10월 1일, Editorial 및≪독립신문≫, 1896년 10월 6일, 논설 등 참조.
606)오연숙,<대한제국기 의정부의 운영과 위상>(≪역사와 현실≫19, 1996), 48∼49쪽.
607)愼鏞廈, 앞의 책, 361∼375쪽.
608)≪韓末近代法令資料集≫2, 541∼543쪽.
609)田鳳德,<大韓國 國制의 制定과 基本思想>(≪韓國近代法思想史≫, 博英社, 1981), 110∼118쪽.
610)徐榮姬,<1894∼1904년의 政治體制 動向과 宮內府>(≪韓國史論≫23, 서울대 국사학과), 384∼386쪽.
611)宋炳基, 앞의 글(1976b), 89·90·105·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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