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3. 독립협회의 기본사상3) 자강개혁의 근대화사상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1. 삼국간섭과 을미사변
          • 1) 삼국간섭과 일본의 대조선 정책
          • 2) 민비시해
          • 3) 사후 수습과 정황
        • 2. 아관파천
          • 1) 을미사변 직후 일본의 압제와 단발령
          • 2) 아관파천
            • (1) 항일의병의 봉기
            • (2) 스페이에르의 내한과 고종의 아관파천
          • 3) 친러·친미내각의 성립
            • (1) 러·일의 반응
            • (2) 조선의 신내각
          • 4) 고종의 환궁
            • (1) 러시아 군사교관의 초빙
            • (2) 궁궐 경비병의 확보와 고종의 환궁
        • 3. 러·일의 한반도 분할 획책
          • 1) 청일전쟁과 한반도 분할안
            • (1) 영국의 남북한 분할 제안
            • (2) 청일전쟁 중 러·일의 한반도정책
            • (3) 민비시해와 러시아의 대한정책
          • 2) 아관파천과 일본의 한반도 분할 제안
          • 3) 러시아의 한반도 분할 제안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1. 열강의 이권쟁탈상
          • 1) 미국의 이권쟁탈상
            • (1) 광산이권
            • (2) 철도이권
            • (3) 전기사업 독점권
          • 2) 러시아의 이권쟁탈상
            • (1) 광산이권
            • (2) 삼림채벌권
          • 3) 독일·영국의 이권쟁탈상
            • (1) 광산이권
          • 4) 일본의 이권쟁탈상
            • (1) 광산이권
            • (2) 철도이권
            • (3) 전선이권
          • 5) 기타 각국의 이권쟁탈상
        • 2. 독립협회 전후 일제의 이권강점
          • 1) 독립협회 전후 한국을 둘러싼 국제관계와 이권문제
          • 2) 철도이권
          • 3) 광산이권
          • 4) 연해어업이권
        • 3. 이권수호운동
          • 1) 정부측 대응
          • 2) 언론 및 지식인의 이권양여 반대운동
          • 3) 현지민의 저항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1. 서재필의 귀국활동과 독립협회 창립
          • 1) 서재필의 귀국과 초기 활동
          • 2) 독립신문의 창간과 독립협회의 창립
        • 2. 독립협회의 조직과 운영
          • 1) 모금·계몽운동기의 조직과 운영
            • (1) 창립사업과 모금운동체제
            • (2) 계몽활동·주간토론회와 정치교육체제
          • 2) 정치활동전개기의 조직과 운영
            • (1)정치활동에서 드러난 독립협회의 정치적 역할 인식
            • (2) 지도체제의 통합과 수평적 역할 분담의 조직운영
            • (3) 정치활동의 변동 추이와 국가의 대응
        • 3. 독립협회의 기본사상
          • 1) 자주국권의 민족주의사상
            • (1) 국가평등권론
            • (2) 국가자주권론
            • (3) 이권양도 반대론
            • (4) 자주중립외교론
            • (5) 개화자강 독립론
          • 2) 자유민권의 민주주의사상
            • (1) 국민평등권론
            • (2) 국민자유권론
            • (3) 국민주권론
            • (4) 국민참정권론
            • (5) 민주정치론
          • 3) 자강개혁의 근대화사상
            • (1) 입헌정체론
            • (2) 상공업경제론
            • (3) 평등사회론
            • (4) 근대문화론
            • (5) 자주국방론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1. 독립의식의 계발
          • 1) 독립기념물의 건립
          • 2) 신문·잡지의 간행
          • 3) 강연회·토론회 개최
          • 4) 국학교육장려
        • 2. 국권수호 및 민권보장
          • 1) 구국운동 선언과 국권수호운동
          • 2) 국토·국익수호운동
          • 3) 민권보장운동
        • 3. 참정권운동과 개혁의 추진
          • 1) 수구파내각 퇴진운동
          • 2) 개혁정부의 수립
          • 3) 언론과 집회의 자유 쟁취운동
          • 4) 의회설립운동
          • 5) 관민공동회
          • 6) 의회(상원)설립법의 공포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1. 만민공동회의 활동
          • 1) 만민공동회의 성립
          • 2) 독립협회 지도자 석방운동
          • 3) 독립협회 복설운동
          • 4) 황국협회의 공격 격퇴
          • 5) 황제 친유와 중추원 의관 임명
          • 6) 김덕구 만민장 시위와 만민공동회의 재개
          • 7) 국정개혁 요구와 중추원 의관의 인재 투표 선출
        • 2. 수구파 및 외세의 독립협회세력 탄압
          • 1) 수구파 및 외세의 독립협회·만민공동회 탄압
          • 2) 독립협회·만민공동회의 강제 해산
        • 3. 독립협회·만민공동회운동의 역사적 의의
          • 1) 독립협회·만민공동회운동의 실패 원인
          • 2) 독립협회·만민공동회운동의 역사적 의의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4) 근대문화론

 독립협회는 문화면에서는 조선시대의 형식적인 인문중심의 문화형태를 실용위주의 근대적 문화형태로 전환시키려 하였다.

 문호개방 이후 서양의 근대문화를 접하게 된 조선정부는 서구문화의 섭취를 위한 근대교육에 눈을 돌리게 되었으며,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대처하기 위해 개화·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한 민간인들도 근대교육운동을 폭넓게 추진하였다. 한편 조선에 진출한 기독교 선교단체들도 근대학교를 세웠다.0797) 조선의 근대교육은 개화운동의 일환으로 18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함경도 德源 주민들은 개화파 인사들의 권유에 의하여 元山學舍를 세웠고, 정부는 同文學이라는 영어강습소를 세웠으며, 育英公院을 세워 상류층 자제들에게 근대학문을 교육하였다. 개신교 선교사들도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을 세웠다. 1890년대에는 갑오개혁에 의해 근대적 교육제도가 마련되고, “국가의 부강은 국민의 교육에 있다”는 敎育立國詔書가 반포되어, 소학교·중학교·사범학교·외국어학교 등 각종 관립학교가 세워지면서 근대교육이 본격화되었다.

 첫째로 독립협회는 자강개혁의 근대화를 이루는 데 있어 국민에 대한 근대지식과 근대교육의 보급을 제1차적인 사업으로 제시하였다. 독립협회 회원들은 독립과 자강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을 普施하여 인민이 실학실업을 연구케”하는 것0798)이라 하여, 제1회 토론회 주제도 “조선에 급선무는 인민의 교육임”으로 정하였으며, 정부도 “돈을 들여 첫째 학교를 설시하고, 둘째 각양 제조소를 설립할 것”0799)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입헌정체를 마련하여 국민국가를 건설하는 데에도, 근대산업을 개발하여 부국강병을 이루는 데에도, 자유민권을 확립하여 시민사회를 만드는 데에도, 그리고 국민에 의한 전반적인 자강개혁을 추진하는 데에도 국민의 근대지식이 필수 불가결의 요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0800)

 둘째로 독립협회는 우선적으로 어린이 교육과 여성교육을 강조하였다. 독립협회 회원들은 어릴 때의 교육이 가장 효과가 있으며, “전국 어린이들을 잘 가르쳐 놓으면 전국 인구가 다 교육될 터”이라 하여, 어린이 교육과 소학교 설립을 가장 시급한 것으로 생각했고, “어머니의 지식과 학문 유무가 자녀의 교육에 크게 관계가 되는 것”이며, 지식 있는 부인이 진정한 내조자가 된다고 하여, 남성교육과 똑같이 여성교육과 여학교설립이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0801) 이것은 양반중심·남성중심의 전통교육에서 남녀를 포함한 전국민에 대한 보통교육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들은 소학교와 여학교가 어느 정도 전국적으로 설립된 다음에는, 외국의 제도를 참작하여 중학교와 대학교를 설립해야 할 것이며,0802) 실업학교와 전문학교, 특히 공업기술학교의 설립과 농업학교의 설립이 시급한 것으로 생각하였다.0803)

 셋째로 독립협회가 강조한 근대교육의 내용은 ‘실상학문’ 또는 ‘실학’이었다. 독립협회 회원들은, 구지식은 경서·사서·시문·譜學·理氣哲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虛學’에 불과하며, 신지식은 ‘利用厚生 富國强兵 實事求是’를 내용으로 하는 ‘실학’이라고 주장하였다.0804) 그리고 그들은 서양 각국은 실학을 숭상하여 부강한 나라가 되었고, 한국은 허학만 숭상하여 빈약한 나라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정부에서 “허학을 없애고 실학을 숭상하여 인민의 공업을 흥황케 가르치는 것이 제일 방책”이라고 주장하였다0805) 이처럼 독립협회 회원들은 서양의 학문과 지식 곧 실상학문을 하여야 근대적인 강국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이 실상학문·근대교육으로 강조한 교과목은 정치학·경제학·법률학·兵學·의학·理財學·商務學·농학·산림학·공학·기계학·格致學·수학·화학·생물학·천문학·지리학·역사학(세계사, 국사)·국어학·외국어학·체육 등이었다.0806) 여기에는 근대산업 발달과 관계되는 실업계통의 과목, 과학기술의 발달과 관계되는 이공계통의 과목, 그리고 근대국가의 경영과 관계되는 사회과학 계통의 과목이 망라되어 있고, 민족문화나 민족정신과 관계되는 한국학 계통의 과목도 포함되어 있다.

 넷째로 독립협회 회원들은 국가의 자강독립을 위해서는 ‘세계와 時勢’를 알고 ‘자기’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외국 학문’과 더불어 ‘조선의 일을 공부’해야 한다고 하여, 국사와 국어의 연구와 교육을 중시하였다.0807) 그들은 역사란 “옛적 것만 史記라 하는 것이 아니라 어저께 것도 사기요 아까 것도 사기라”하고, “자기 나라 사기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각국 사기를 공부하여” 과거 일과 현재 일을 알고 미래 일을 전망하는 데에 역사 공부의 목적이 있다고 보았다.0808) 이처럼 독립협회 회원들은 세계사적 관련속에서 국사를 연구할 것을 강조하면서도, “남의 나라의 사기도 알려니와 자기 나라 사기를 먼저 알아” 조국의 흥쇠를 파악하여 교훈으로 삼는 것이 애국의 길이라고 하여,0809) 국사의 연구를 통하여 민족의식을 가지고 국가의 현실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고 보았다. 한편 독립협회 회원들은 종래 ‘諺文’으로 천시되던 한글을 ‘국문’이라 칭하고, 근대적인 문법체계 면에서 볼 때 “조선 글자가 세계에서 제일 좋고 학문이 있는 글자”라고 하여 한글의 우수성을 강조하고,0810) 국문법을 연구 정리했으며, 한글 띄어쓰기를 시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한문은 어려워 지식을 특수 계층에 독점케 하고, 한글은 쉬워서 모든 국민이 학문을 할 수 있게 한다는 이유를 들어 ‘국문전용’을 주장했고, 독립신문을 통하여 이를 실천하였다.0811)

 이처럼 독립협회는 세계 각국의 실용적인 근대문화를 수용하여 국가의 자강을 실현하고, 우리의 역사·언어·문화를 합리적으로 발전시켜, 중국중심의 한자문화권에서 탈피하여 세계문화권 속에 새로운 한국문화권을 정립하려 하였다.

0797)姜萬吉,≪고쳐 쓴 한국근대사≫(창작과 비평사, 1994), 287쪽.
0798)≪大朝鮮獨立協會會報≫4, 1897년 1월 15일,<北米合衆國의 獨立史를 閱하다가 我大朝鮮國獨立을 論함이라>.
0799)≪독립신문≫, 1897년 8월 29일, 논설.
0800)愼鏞廈, 앞의 책, 644쪽.
0801)≪독립신문≫, 1898년 9월 13일,<여인교육>.
0802)≪大朝鮮獨立協會會報≫14, 1897년 6월 15일,<興新學說>.

≪독립신문≫, 1897년 7월 6일, 논설.
0803)尹致昊,≪尹致昊日記≫ 5, 1897년 2월 7일 및 8월 5일.
0804)≪독립신문≫, 1897년 8월 17일,<윤치호 연설> 및 1898년 3월 8일, 논설.

≪大朝鮮獨立協會會報≫1, 1896년 11월 30일,<獨立協會序>.
0805)≪독립신문≫, 1898년 6월 14일, 논설.
0806)愼鏞廈, 앞의 책, 226쪽.
0807)≪독립신문≫, 1896년 5월 30일, 논설.
0808)≪독립신문≫, 1898년 4월 2일, 논설.
0809)≪독립신문≫, 1896년 9월 22일, 논설.
0810)≪독립신문≫, 1897년 4월 22일,<주상호씨 국문론>.
0811)≪독립신문≫, 1896년 4월 7일, 논설 및 1897년 8월 5일, 논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