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근대 예술의 발전
1) 음악
1860년부터 1910년까지 50년간은 그 이전의 어떤 시기보다 음악과 음악사회를 변화시켰다. 이 변화는 안으로부터 봉건성의 사회모순을 극복하고 밖으로는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투에 대한 민족공동체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 서양문명과 일본문명의 충격은 전통적인 한국음악이 지속·보존·변형·극복 등의 반응으로 새로운 균형과 조정이 일어났으며, 군대·교회·학교를 중심으로 양악과 일본풍의 음악이 전개된 것도 큰 변화였다.
1860년을 근대 기점으로 설정한 것은 안으로 봉건성의 사회모순과 밖으로 세계제국주의에 의한 위기가 민족공동체를 형성하며 근대를 추구하였고, 그것이 음악인의 신분제 철폐와 음악의 상설무대화로 근대적인 소통체계를 확립하여 한국음악사에서 오랫동안 2분법적인 아악과 민악(민속악)이 이 시기에 모두 대중적인 소통화를 이룩하고, 또 산조음악과 창극 등의 민족음악양식이 새로운 변화로 전개되었으며, 그 음악인과 음악들이 외세음악인 서양과 일본음악에 대응하는 민족음악으로서의 성격을 뚜렷하게 드러내며 전개할 수 있었던 모든 음악사적 계기가 1860년이었기 때문이다. 1860년의 역사적 계기가 1894년 동학농민전쟁으로 분수령을 이룬다. 이것은 동학창도와 농민·천민들의 신분제적 토지소유원리 거부와 근대적인 음악전개가 1860년에 비롯되었고, 또 북경조약체결(중국과 영·프)에 따른 민족적 위기가 본격화하면서 부국강병의 국가시책에 따른 근대 병제 확립과 함께 양악의 국가적인 수용의 계기 역시 1860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1860년부터 안을 인간화 음악으로 이끌어 내고, 밖을 자주적 음악으로 대응하며, 그 음악사 전개를 그 이전 시기와 성격이 다른 민족음악으로서 전개한다는 점에서 1860년을 근대 기점으로 구분한다.
따라서 1860년부터 1910년까지를 근대음악사 前期로 보고 이 시기를 네 시기로 구분한다. 즉 1860년부터 강화도조약을 체결하는 1876년까지 약 16년간의 시기를 제1기, 1876년부터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약 18년간을 제2기, 1894년부터 1904년 제1차 한일협약이 강압적으로 체결되는 시기까지를 제3기, 그리고 국권회복운동이 전개되는 1904년부터 1910년까지 6년간을 제4기로 구분한다. 1910년부터 한국음악사회가 새로운 국면을 맞기 때문에 ‘근대음악사 후기’로 구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