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장백현
장백현은 험준한 산악지역임에도 불구하고 3월 16일 長白街에서 천도교인 30명이 주도하여 시위운동을 벌이며 헌병주재소를 습격하였으나 일본 헌병의 반격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다음날 각구 면장 6명과 기독교인, 민족운동가 35명이 협의하고 장백현에서도 국내 동포들과 함께 궐기할 것을 결의하였다. 29일 장백현 팔도구에서 200명의 한인들이 모여<독립선언서>를 게시하고, 집집마다 배포하였으며, 30일 정몽학교에서 300명이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운동을 벌였으며 일제 하수인 노릇을 하는 헌병보조원·순사보 등에게 제복을 벗고 민족운동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였다. 4월 8일 정몽학교 학생 25명이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였으며, 10일 천도교인과 기독교인 및 학생 70명이 연합하여 압록강을 건너 혜산진에서 시위운동을 벌이고자 압록강 대안 보혜면 송봉리에 집결하였으나 중국 관헌의 제지를 받아 실행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장백현 독립운동가들은 4월 중순 이후 일제의 감시와 중국 관헌의 탄압을 피해 운동 근거지를 통화현·무송현 등지로 옮겼다. 이들은 독립운동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장백현 1만 한인들에게<독립선언서>1매에 2원 50전에 판매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