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2. 임시정부와 국민대표회의1) 국민대표회의 소집론과 ‘정부옹호파’의 반대운동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1. 문화정치의 실상
          • 1) 경찰기구의 강화
            • (1) 보통경찰제의 확립
            • (2) 신간부의 선정과 보통경찰의 기능
          • 2) 지방제도의 개편
            • (1) 동화정책하의 참정권 문제
            • (2) 지방제도의 개편과 자문기구의 설치
            • (3) 면제의 운영과 촌락정책의 실상
          • 3) 친일세력의 양성
            • (1) 친일과 협력이란 개념
            • (2) 친일파의 육성과 이용책
            • (3) 친일단체의 조직
        • 2. 수탈체제의 강화
          • 1) 총독부 산업정책의 전환
          • 2) 농업―산미증식계획
          • 3) 공업
            • (1) 식민지 공업구조의 형성
            • (2) ‘민족자본’과 조선인 자본
          • 4) 재정·금융
            • (1) 재정
            • (2) 금융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1. 임시정부의 수립과 초기 활동
          • 1) 임시정부 수립의 배경
            • (1) 세계대전의 종전과 민족자결주의
            • (2) 정부수립운동과<대동단결선언>
          • 2) 임시정부의 수립과 통합
            • (1) ‘국민대회’와 국내 정부수립운동
            • (2) 상해 임시정부의 성립
            • (3) ‘통합’ 임시정부의 출범
          • 3) 임시정부의 초기활동
            • (1) 외교·선전활동
            • (2) 국내조직과 활동
            • (3) 군사외교와 독립전쟁 준비
        • 2. 임시정부와 국민대표회의
          • 1) 국민대표회의 소집론과 ‘정부옹호파’의 반대운동
            • (1) 국민대표회의 소집배경과 참가세력
            • (2) 정부옹호파의 국민대표회 반대운동
            • (3) 제10회 임시의정원
          • 2) 국민대표회의의 전개 과정
            • (1) ‘비공식회의’와 제11회 임시의정원
            • (2) ‘삼방회의’와 국민대표회의의 결렬
          • 3) 국민대표회의에서의 쟁점
            • (1) 국민대표회의의 적법·부적법 문제
            • (2) ‘임정존폐’ 문제와 ‘임정법통론’
        • 3. 임시정부와 유일당운동
          • 1) 유일당운동의 배경과 계기
          • 2) 유일당운동의 추진과 임시정부의 개헌
            • (1) 임시정부 중심의 대당결성 주장
            • (2) 대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 결성
            • (3) 임시정부 개헌과 한국유일독립당상해촉성회 결성
            • (4) 의열단의 선언과 광동·무한·남경촉성회 결성
          • 3) 유일당운동의 발전과 임시정부 참여
            • (1) 한국독립당관내촉성회연합회의 결성
            • (2) 전위조직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의 성립
          • 4) 유일당운동의 중단과 임시정부의 여당 결성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1. 독립군의 편성과 국내진입작전
          • 1) 시대적 배경
          • 2) 독립군의 편성
            • (1) 북간도지역
            • (2) 서간도지역
          • 3) 국내진입작전의 전개
            • (1) 독립군의 전력강화
            • (2) 국내진입작전
        • 2. 봉오동승첩과 청산리대첩
          • 1) 봉오동승첩
            • (1) 삼둔자전투
            • (2) 봉오동승첩
          • 2) 청산리대첩
            • (1) 일본군의 간도 침공
            • (2) 독립군의 근거지 이동
            • (3) 독립군의 전투준비
            • (4) 청산리대첩
            • (5) 청산리대첩의 전과와 의의
        • 3. 경신참변과 자유시사변
          • 1) 독립군의 북정
          • 2) 경신참변
          • 3) 자유시사변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1. 통의부의 결성과 활동
          • 1) 통군부의 성립과 남만한족통일회의
          • 2) 통의부의 결성과 활동
        • 2. 3부의 성립과 활동
          • 1) 참의부의 성립과 활동
          • 2) 정의부의 성립과 활동
          • 3) 신민부의 성립과 활동
        • 3. 재만 독립운동단체의 민족유일당운동
          • 1) 민족통일전선운동의 대두
          • 2) 3부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1. 의열투쟁의 의미맥락
        • 2. 의열투쟁 본격화의 배경과 계기
        • 3. 3·1운동 직후와 1920년대의 의열투쟁
          • 1) 3·1운동 직후와 1920년의 의열투쟁
          • 2) 1921년 이후의 의열투쟁 양상과 추이
            • (1) 의열단의 국내외 투쟁
            • (2) 재만 독립군의 국내외 의열투쟁
            • (3) 병인의용대의 의열투쟁
            • (4) 개인 단독의거의 흐름과 사례들
        • 4. 1930년대와 일제말의 의열투쟁
          • 1) 한인애국단의 의열투쟁
            • (1) 이봉창의 동경의거
            • (2) 상해거사의 추진과 윤봉길 의거
            • (3) 국내·만주거사 계획의 추진
          • 2) 재중국 아나키스트들의 의열투쟁
          • 3) 한국혁명당총동맹과 남자현의 의열투쟁
          • 4) 상해와 북경에서의 밀정·친일배 처단 활동
          • 5) 한국독립당과 민족혁명당의 의열투쟁
          • 6) 국내 의열투쟁의 불연속성과 지구성
        • 5. 일제 강점기 의열투쟁의 특징과 역사적 의의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임시정부와 국민대표회의

1) 국민대표회의 소집론과 ‘정부옹호파’의 반대운동

(1) 국민대표회의 소집배경과 참가세력

 1923년 1월에서 6월 초까지 5개월 넘게 상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는 국내외 각지의 거의 모든 독립운동세력이 참가한 최대의 민족대표회의였다. 1919년 4월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정)는 그 해 9월 노령의 대한국민의회와 통합, 통합정부로 거듭나면서 독립운동의 최고 구심점으로서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임정은 독립운동 노선을 둘러싼 내부 분열과 임시대통령 李承晩의 독선, 기호파와 서북파의 지방열 등이 겹쳐 그 역할에 한계를 드러내었다. 한때 국무총리 李東輝와 노동국총판 安昌浩, 젊은 차장들을 중심으로 제도 개혁을 통해 임정을 강화하려던 노력마저 실패하고 그 동안 임정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이동휘·안창호 등이 1921년 초 임정을 떠나면서 임정은 심각한 존폐 위기에 처했다. 국민대표회의는 이러한 임정의 위기와 독립운동 진영의 분열을 극복, 새롭게 통일해야 할 필요성에서 제기되었고, 그것은 1921년 2월 상해에서 朴殷植·元世勳·왕삼덕 등 14명이 발포한<우리 동포에게 고함>을 계기로 구체화되었다.

 박은식 등은 애초 임정을 조직할 당시 각 방면의 여러 의견을 구하지 않고 몇 사람의 擅行으로 신시대에 적합하지 않는 복잡한 계급과 방만한 제도를 설정하여 현재의 위기에 이르게 되었다고 하면서, 전국민의 의사에 의한 통일적인 강고한 정부조직과 독립운동의 최량의 방침을 수립하기 위해 국민대표회 소집을 요구했다.294) 이 선언에 참여한 14명은 대체로 임정 수립 초기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거나 임정의 독립운동 노선과 내분에 반대하여 임정 외곽에서 활동했던 인물이었다.

 국민대표회 소집 요구는 북경, 만주에서도 이어졌다. 반임정 세력의 근거지였던 북경에서는 朴容萬·申采浩 등이 1921년 4월 군사통일회의를 열어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하고 4월 27일 이것을 임시의정원에 직접 전달했다. 5월 6일에는 만주의 독립운동 단체들도 액목현에서 회의를 열고 위임통치를 청원한 李承晩의 퇴거와 임정개조를 요구하는 5개항의 결의서를 채택하고 이것을 서간도 출신 의원이자 의정원 의장이던 尹琦燮에게 전달했다.295) 이 회의를 주도했던 呂準·李沰·金東三·李震山 등은 그 동안 임정을 지지했던 인사들이란 점에서 이 결의서는 임정에 큰 타격이 되었다.

 임정 외곽에서 국민대표회 소집론이 강력히 대두되는 가운데 1921년 5월 12일 상해에서도 국민대표회 소집을 요구하는 연설회가 열렸다. 연설회에서 呂運亨은 임정 자체 내에서의 임정 개조는 공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분규가 극에 달한 시국문제를 해결하려면 국민대표회 소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안창호도 정부를 세울 때 각 방면의 의견을 충분히 구하지 못한 한계를 인정하고 임정을 더욱 견고한 민족적 통일기관으로 만들려면 국민대표회 소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상해·북경·만주 등지에서 제기된 국민대표회 소집론의 밑바닥에는 공통적으로 현재의 임정은 더 이상 독립운동의 최고기관으로서 자기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비판 의식이 깔려 있었다. 그 이유는 대체로 세 가지였다. 첫째는 애초 임정을 조직할 당시 각 방면의 여러 의견을 구하지 못하고 소수인의 擅行으로 성립되어 임정 성립 그 자체에 한계가 있고, 둘째는 임정의 직위와 제도가 실제 독립운동에 적합하게 조직되지 못하여 스스로 불필요한 내부 분열만 낳았고, 셋째는 국제연맹에 위임통치를 주장한 이승만이 임시대통령으로서 부적합하다는 것이었다.

 상해에서 국민대표회 소집을 요구하는 제1차 연설회가 있은 지 1주일 뒤인 1921년 5월 19일에 열린 제2차 연설회에서는 20명의 상해 국민대표회기성회 조직위원을 선거하고, 그 자리에서 상해 국민대표회기성회(이하 상해기성회)가 조직되었다. 이어 7월 16일부터 상해와 북경 양측 대표가 국민대표회의를 9월 15일 개최할 예정으로 협의한 뒤 8월에는 상해기성회 위원 30명, 북경교민회 선출위원 15명, 북경군사통일회 선출위원 5명, 천진교민회 선출위원 5명으로 국민대표회 주비위원회(이하 주비회)를 조직했다.296)

 그러나 국민대표회의의 개최는 1921년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극동아시아의 문제를 다룰 태평양회의가 열린다는 국제 정세의 변화와 경비 조달의 어려움 때문에 계속 연기되었다. 특히 태평양회의에 대한 기대는 국민대표회의 문제를 잠깐 휴식의 상태에 빠지게 했다.

 1922년 2월 기대를 걸었던 태평양회의가 아무런 성과없이 끝나고 태평양회의에 대응하여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극동인민대표회의에 참석했던 대표들이 상해로 돌아오면서 1922년 4월 이후 국민대표회의 소집 추진은 다시 활기를 띠었다. 1922년 5월 중순 북경군사통일회·천진기성회·동녕현기성회·상해기성회에서 선출된 대표들로 주비회를 보완하고 9월 1일 국민대표회의를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자금문제와 대표들의 도착이 늦어져 연기를 거듭해야 했다. 이런 가운데 12월 27일 62명의 주비회원이 국민대표회의 예비회의를 열고 1923년 1월 3일부터 정식회의를 열기로 결정함으로써 역사적인 국민대표회의가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국내외 각지에서 상해의 국민대표회의에 참여한 주요 대표들은 이념적으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으로 구별되었고, 각 진영 모두 자신들의 이념과 독립운동 노선에 따라 국민대표회의에 임하는 입장이 달랐다.

 민족주의 진영은 대체로 임정에 대한 입장과 독립운동 노선에 따라 임정의 개조를 주장하는 개조파와 임정을 부인하고 새로운 기관의 건설을 주장하는 창조 양파로 분화되었다. 개조파에는 상해를 중심으로 임정 안팎에서 활동했던 안창호를 중심한 서북파와 기호파 일부, 서로군정서·한족회가 중심인 서간도의 독립군단체가 대표적인 세력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도 운동노선에서는 안창호 등의 준비론과 서간도의 독립전쟁론의 입장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임정의 외교독립론·준비론에 반발하여 독립전쟁론을 주장하며 북경을 중심으로 반임정 활동을 해 온 박용만·신숙 등 북경군사통일회는 민족주의 진영의 창조파를 대표했다.

 국민대표회의에 참가한 사회주의진영에는 초기 한국 사회주의운동의 특징을 반영하듯 주로 해외 사회주의자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이들은 1918년 노령에서 이동휘가 한인사회당을 조직한 이후 이동휘의 상해파 고려공산당과 김만겸의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으로 분열되어 그 주도권을 둘러싸고 대립해 왔다. 이 가운데 이동휘의 상해파 고려공산당은 노령의 대한국민의회와 상해 임정의 통합에 적극적이었듯이 일찍부터 민족주의 진영과 연합을 꾀해 온 반면에, 김만겸 등의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은 반임정의 입장을 취했다.297) 1922년 코민테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의 통합이 실패한 뒤 상해파는 민족혁명에 우선 목표를 두고 개조파의 입장을 견지한 반면에, 이르쿠츠크파는 반임정의 입장에서 창조파에 참여했다. 국민대표회의에 참가한 개조·창조 양파의 참가세력과 입장을 정리하면 아래<표>와 같다.

  주요 참가 세력 주요 인물 主 義 주 요 입 장
임정에 대한

태도
지 향 운동 노선


상해의 개조파 임정내의 개조파 안창호 등 서북파 민족주의 임정 인정 정부개조 및

대독립당건설
실력양성론
상해파고려공산당 윤자영·김철수 등 공산주의 임정 인정 정부개조 및

민족혁명당건설
무장독립론
서간도의 개조파

(서로군정서·한족회)
김동삼·이진산 등 민족주의 임정 인정 정부개조 무장독립론


북경의 창조파

(북경군사통일회)
박용만·신숙·

신채호
진보적

민족주의
임정불신임 신조직 건설

(위원제정부)
무장투쟁론
상해·노령의

창조파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김만겸 등 공산주의 임정불신임 민족혁명당

건설
무장투쟁론
대한국민의회파 문창범 등 공산주의 임정불신임 신조직 건설

(위원제정부)
무장투쟁론

<표>개조·창조파의 참가세력과 운동노선

*趙澈行,<국민대표회(1921∼1923)연구>(≪史叢≫44, 고려대, 1995), 163∼167쪽.

 <표>에서 보듯이 국민대표회의에 참가한 독립운동 세력들이 각기 이념이나 독립운동 노선을 달리함에도 불구하고 크게 개조·창조 양파로 양립하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임정에 대한 입장 차이 때문이었다.

294)국회도서관,≪韓國民族運動史料(中國篇)≫(1976), 276∼277쪽.
29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4(1973), 516∼517쪽. 1921년 5월 6일 만주의 액목현회의에서 결의된 5개항은 다음과 같다. ① 현재 間西代議士를 소개하여 임시의정원에 향하여 정부 개조의 필요를 제의케 할 일, ② 위임통치를 청원한 사실이 확실한 이상 그 행위의 주창자에게 퇴거를 명할 일, ③ 의정원에 제출한 개조의안이 체결되지 않을 때는 현재 間西의원을 소환할 것, ④ 위 의안의 결정 전에 본 기관 대표 명의로 정부를 파괴하려는 제3 단체의 참가를 불허할 일, ⑤ 양 방면에 대한 제의 또는 권고가 무효로 될 시는 間西는 간서 자체를 보장 자퇴할 일.
296)≪독립신문≫, 1921년 10월 5일.
297)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의 분열, 대립에는 비귀화선인·귀화선인이라는 조직기반의 차이뿐만 아니라 그 배후에는 조선혁명의 성격과 운동론에 대한 뿌리깊은 이견이 있었다. 즉 상해파는 민족해방을 민족혁명으로부터 사회주의혁명으로 성장·전환한다는 연속혁명론을, 이르쿠츠크파는 사회주의혁명론을 주장했다. 때문에 상해 임정에 대한 입장도 크게 달랐던 것이다. 이에 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林京錫,≪高麗共産黨硏究≫(성균관대 박사학위논문, 1992) 참조.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