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1. 1920년대 국내 민족주의 세력의 동향2) 1920년대 중후반 자치운동의 전개와 민족주의 세력의 분화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1. 1920년대 국내 민족주의 세력의 동향
          • 1) 1920년대 전반의 ‘문화운동’
            • (1) 신문화건설, 실력양성론의 대두
            • (2) 청년회 운동
            • (3) 학교설립운동
            • (4) 물산장려운동
          • 2) 1920년대 중후반 자치운동의 전개와 민족주의 세력의 분화
            • (1) 자치운동론 대두의 배경
            • (2) 자치운동의 전개
            • (3) 자치론과 반자치론
        • 2. 조선공산당의 성립과 활동
          • 1) 사회주의사상의 도입
            • (1) 사회주의사상의 국내 도입과 수용
            • (2) 국외 전위정당의 결성과 활동
          • 2) 국내 무산계급 운동의 성장
            • (1) 사회주의 분파의 형성
            • (2) 꼬르뷰로 국내부와 화요파의 성립
            • (3) 오르그뷰로와 ‘13인회’
            • (4) 화요파와 민중운동자대회
          • 3) 조선공산당의 창건
            • (1) 조선공산당 1차당대회
            • (2) 조선공산당의 활동과 코민테른의<1925년 9월 15일 결정>
            • (3) ‘1·2차 조선공산당사건’과 조선공산당 2차당대회
            • (4) 조선공산당 3차당대회와 정치노선
          • 4) 조선공산당의 해체와 당재건운동
            • (1) 조선공산당의 해체와<12월테제>·<9월테제>
            • (2) 1920년대 말 당재건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1. 6·10만세운동
          • 1) 융희황제의 승하와 6·10만세운동의 태동
          • 2) 해외의 6·10만세운동 계획과 추진
          • 3) 국내의 6·10만세운동 추진과 발각
          • 4) 학생들의 만세시위 추진
          • 5) 만세시위의 전개와 성격
            • (1) 서울의 만세운동
            • (2) 지방의 움직임과 만세시위
          • 6) 6·10만세운동의 이념
          • 7) 6·10만세운동과 그 영향
        • 2. 신간회운동
          • 1) 창립 배경
          • 2) 신간회의 창립
            • (1) 사회주의자들의 신간회운동론
          • 3) 복대표대회와 신간회의 정비
            • (1) 복대표대회 개최와 규약 개정
            • (2) 복대표대회 선출 간부진의 성격
          • 4) 지회의 설립과 활동
            • (1) 지회의 설립
            • (2) 지회의 성격과 활동
          • 5) 신간회의 해소
            • (1) 신간회 해소론
            • (2) 신간회지회의 해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1. 농민운동
          • 1) 일제시기 농민운동의 성격
          • 2) 일제의 농업정책과 한국 농민의 처지
          • 3) 농민운동 조직의 발전
          • 4) 농민운동의 전개
            • (1) 1920년대 전반기
            • (2)1920년대 후반기
          • 5) 1920년대 농민운동의 특징
        • 2. 노동운동
          • 1) 노동운동 전개의 배경
            • (1) 노동자계급의 상태
            • (2) 사회주의의 보급
          • 2) 노동조합의 조직
            • (1) 전국적 노동조합
            • (2) 지방 노동조합의 조직
            • (3) 산업별 노동조합의 조직
          • 3) 노동조합의 조직 내 사업과 공장 내 활동
          • 4) 노동조합의 후생복지 사업 및 소비자운동
          • 5) 노동조합의 작업부와 생산조합의 조직
          • 6) 노동조합의 문화활동
            • (1) 노동자 교육활동
            • (2) 언론·출판 활동
            • (3) 연예·체육 활동
            • (4) 봉건적 사회제도·문화 타파운동
          • 7) 노동조합의 국내적·국제적 연대
            • (1) 국내에서의 민족·민중 연대
            • (2) 세계 노동자계급과의 동지적 연대
          • 8) 노동자들의 파업투쟁
            • (1) 1920년대 전반기 파업투쟁
            • (2) 1920년대 후반기 파업투쟁
            • (3) 1929년의 원산총파업
        • 3. 여성운동
          • 1) 국내외 항일여성운동
            • (1) 국내 항일여성운동
            • (2) 해외 항일여성운동
          • 2) 한국여성운동의 확대와 발전
            • (1) 서울의 여성계몽교육운동
            • (2) 지방의 여성계몽교육운동
            • (3) 기독교 여성의 여성운동: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와 조선여자
          • 3) 여성 경제의식 성장과 경제자립운동
            • (1) 부녀들의 조선물산장려운동
            • (2) 여성의 경제적 자립활동
          • 4)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대두와 확대
            • (1) 조선여성동우회의 조직과 활동
            • (2)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분파적 확대
            • (3)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지방 확대
          • 5) 근우회의 조직과 활동
            • (1) 근우회 조직의 배경
            • (2) 근우회의 창립과 이념
            • (3) 근우회 활동과 그 성격
            • (4) 근우회의 해소
        • 4. 형평운동
          • 1) 형평사의 창립배경
          • 2) 형평사의 창립
            • (1) 형평사의 창립 과정
            • (2) 형평사 창립에 대한 사회의 반응
          • 3) 형평사의 분열과 그 극복
            • (1) 형평혁신동맹의 창립
            • (2) 조선형평사중앙총본부로의 합동
          • 4) 형평사의 조직
            • (1) 중앙본부의 조직
            • (2) 지분사의 조직
            • (3) 형평사 조직의 확대
            • (4) 하위단체의 조직과 활동
          • 5) 형평사의 활동
            • (1) 차별철폐와 인권신장운동
            • (2) 생활생존권 수호운동
            • (3) 형평사원의 교육과 계몽활동
            • (4) 지방순회 활동
            • (5) 상호부조활동
          • 6) 형평사의 해소
            • (1) 사회주의운동계의 방향전환론
            • (2) 형평사내 급진·온건파의 갈등
            • (3) 형평사 해소론의 대두
            • (4) 형평청년전위동맹사건과 형평사의 종언
        • 5. 청년운동
          • 1) 청년운동의 발생배경
            • (1) 청년의 역사적 등장
            • (2) 청년단체의 출현
            • (3) 조선청년의 현실
          • 2) 조선청년회연합회와 초기 청년단체의 활동
            • (1) 조선청년회연합회의 결성과 ‘문화운동’
            • (2) 초기 청년단체의 주요 활동
          • 3) 조선청년총동맹과 청년운동의 조직적 진출
            • (1) 전조선청년당대회와 청년운동의 분화
            • (2) 조선청년총동맹의 결성과 ‘무산계급 청년단체’의 확산
            • (3) 청년단체의 주요 활동
          • 4) 청년운동의 방향전환과 민족협동전선
            • (1) 조선청년총동맹의 ‘신운동방침’
            • (2) 청년단체의 주요 활동
          • 5) 고려공산청년회와 사회주의 청년운동
            • (1) 사회주의 청년운동의 출현
            • (2) 고려공산청년회의 결성과 조직 변화
            • (3) 고려공산청년회의 청년운동 방침과 주요 활동
          • 6) 조선총독부의 청년단체에 대한 대책
            • (1) 조선총독부의 청년단체 지도방침
            • (2) ‘중견청년’의 양성
        • 6. 학생운동
          • 1) 일제하 학생운동의 배경
            • (1) 근대학생운동의 본질
            • (2) 일제하 한국학생운동의 성격
          • 2) 1920년대 이전의 학생운동
            • (1) 개화·애국계몽운동기의 학생운동
            • (2) 2·8학생운동
            • (3) 3·1운동과 3·5학생운동
          • 3) 1920년대 학생운동의 기저
            • (1) 학생단체
            • (2) 동맹휴학
          • 4) 6·10학생운동
            • (1) 6·10학생운동의 사회적 배경
            • (2) 6·10학생운동의 추진
            • (3) 6·10학생운동의 전개
          • 5) 광주학생운동
            • (1) 광주학생운동의 사회적 배경
            • (2) 광주학생운동의 전개
            • (3) 광주학생운동의 전국적 확대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1920년대 중후반 자치운동의 전개와 민족주의 세력의 분화

(1) 자치운동론 대두의 배경

 자치운동론이란 한마디로 한국의 독립 대신 우선 자치권을 얻어 독립을 위한 실력을 먼저 양성하자는 주장이다. 이같은 주장은 이미 3·1운동 이전 1910년대에도 국내외에서 등장한 바 있었다. 일부 유학생들이 이를 주장하기도 하였지만, 다른 유학생들에 의해 반박을 당하기도 하였다. 또 3·1운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천도교측에서도 한때 자치운동을 고려하기도 하였다. 이같이 국내외 일부 논자들이 자치론을 제기한 것은 한국의 독립 능력에 대한 확고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독립 능력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는 특히 한말과 1910년대에 일본에 유학한 경험이 있는 신지식층에게는 일반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그만큼 일본의 근대문명에 압도되어 있었으며, 국제사회에서의 약육강식의 법칙을 강조하는 사회진화론에 매몰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력에 의한 독립쟁취는 물론, 자력에 의한 독립의 유지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072)

 자치론이 본격적으로 대두한 것은 3·1운동의 여진이 채 가시지 않은 1919년 여름이었다. 그해 8월 高元勳 등 6명은 자치론을 주장하는<의견서>를 총독부에 제출하였는데, 그 안에서 그들은 ① 조선은 조선인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할 것, ② 빠른 시일 안에 조선에 조선의회를 설치할 것, ③ 일본인 총독의 감독하에 조선정부를 설치할 것 등을 요구하였다.073) 이들은 그해 7월 동경에 건너가≪국민신보≫기자 아베 미쓰이에(阿部充家)를 만나 자치운동에 대해 협의하고, 타나카(田中) 육군대신, 우사미 카쓰오(宇佐美勝夫) 조선총독부 내무부장관 등을 만나 조선의회의 개설 등을 주장하는 의견을 제시하였다.074) 또 1921년에는 일본 우익단체인 黑龍會 계열의 조직인 同光會의 조선총지부가 결성되어 총지부장 李喜侃이 이른바<내정독립청원서>라는 것을 일본의회에 제출하려는 운동을 벌였다가 총독부로부터 시정방침에 위배된다하여 단체가 강제로 해산당한 일이 있었다. 이때 그들이 주장한 내정독립이란 일본천황의 통치하에 외교·군사를 제외한 일체의 내정을 독립시켜달라는 것이었다.075) 이같은 자치론은 주로 친일적 성향이 농후한 이들에 의해 제기된 것이었다. 하지만 1920년대 전반 ‘문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던 이들도 이들의 자치운동에 대해 특별히 찬성이나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동아일보≫는 동광회 조선지부의 내정독립운동에 대한 총독부의 탄압에 대해 그것은 독립운동도 아닌데 왜 탄압하는가 하는 비판을 던지고 있었다.076)

 1920년대 중반에 자치론이 대두한 또 하나의 배경은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기성운동 등 ‘문화운동’의 좌절이었다. 앞서 본 것처럼 이들 운동은 1923년 여름 이후 급격히 침체상태에 빠졌고, 이러한 운동을 추진해온 민족주의자들은 크게 당황하게 되었다. 물산장려운동을 뒷받침해온 조선인 자본가, 특히 중급 이상의 자본가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여기에서 이들이 모색한 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총독부측에 대해 다시 조선인 자본의 보호·육성을 호소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으로 일제와 타협하여 자치권과 같은 일정한 정치권력을 얻어 조선인 자본을 보호·육성하는 길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일제의 권력에 의지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최소한의 권력이라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경제적 실력양성’에는 ‘정치권력의 보호’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077)

 이 시기 자치운동론이 대두하게 된 또 하나의 배경으로서 총독부측의 자치론에 대한 내면적인 검토라는 사실을 들 수 있다. 3·1운동 직후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조선자치의 문제는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일본인들 사이에서 조선문제에 대한 대응책으로서는 ① 일시동인주의와 내지연장주의에 입각한 참정권부여론, ② 자치제 실시론, ③ 식민지 방기론 등이 거론되고 있었다.078) 첫번째 참정권부여론은 조선인들에게도 장차 일본인들과 똑같이 지방자치, 혹은 일본의회의 참정권을 부여한다는 것으로서 일본정부와 총독부측의 공식입장이면서 동시에 호소이 하지메(細井肇)·나카노 세이고(中野正剛) 등 관변 언론인들의 어용이론이기도 했다. 국민협회의 閔元植이 일본의회를 상대로 벌인 참정권 청원운동은 이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다. 두번째 자치제 실시론은 무단정책과 동화정책을 폐기하고 조선에 자치의회를 설치하자는 주장이다. 이는 당시 大正데모크라시의 민본주의자인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 등 黎明會 회원들과 동경제대 교수 수에히로 시게오(末廣重雄) 등이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식민지 방기론은 조선을 식민지로부터 독립시키라는 주장으로, 극히 소수지만 당시≪東洋經濟新聞≫간부 이시바시 탄잔(石橋湛山) 등이 이를 주장하고 있었다.079)

 3·1운동 이후 일본정부는 참정권부여론을 공식 입장으로 표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1925년 11월 돌연 총독부의 어용지인≪경성일보≫에 사장 소에지마 미치마사(副島道正)가<총독정치의 根本義>라는 글을 써서 자치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 글이 나오자 일본인 단체인 갑자구락부, 한국인 친일단체인 각파유지연맹·보천교·국민협회 등에서는 이를 맹렬히 비판하고 나왔다. 이에 총독부 당국은 그것은 소에지마 개인의 의견일 뿐이라고 해명하였다. 그러나≪경성일보≫는 다시 사설<副島伯의 조선통치론>을 실어 한편으로는 소에지마의 자치론이 총독부와는 관계가 없다고 해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시 자치론이 조선을 영원히 통치하기 위한 가장 타당한 통치방식이라고 주장하였다.080) 이에≪朝鮮及滿洲≫의 발행인 사쿠오 토요(釋尾東邦)는 자기 잡지에 자치론을 격렬히 비판하는 논설을 실었고, 이에 마치다 운민(町田耘民)이 다시 자치론을 찬성하는 글을 실음으로써 한때 일본인들 사이에서 자치론을 둘러싼 공방이 벌어졌다.081)

 당시 총독부는 소에지마의 자치론이 총독부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경성일보≫측의 자치론 개진이 총독부측과의 사전협의 내지는 양해없이 이루어졌으리라고는 볼 수 없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당시 총독부의 고위관료 가운데에도 이미 자치론자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내무국장 오오쓰카 쓰네사부로(大塚常二郞)는 총독에게 私案으로서<朝鮮議會要綱>을 만들어 제출하였는데, 이는 참정권론에 반대를 표시하면서 조선의회 설치를 주장한 것이었다.082)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이 사설에 관해≪경성일보≫측과≪동아일보≫측 사이에 사전 협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즉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가 소에지마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에 “전번≪경성일보≫에 논설을 싣기 전에≪동아일보≫의 간부에게 의논했던 것인데, 반대론(일본인들의 반대론)이 일어난 것을 보고 그들은 냉소하고 있다”는 구절이 있는 것이다.083) 즉 당시 총독의 정치참모였던 소에지마와 아베(阿部充家) 등은 총독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치론에 대한 긍정적 반응을 얻은 후,≪동아일보≫측과 천도교측의 최린에게 이를 귀띔하고 이어서 여론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경성일보≫에 문제의 사설을 실은 것이다. 뒤에 보게 될 1925년 말 이후의≪동아일보≫와 최린의 자치운동은 이같은 총독부의 자치론 검토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사이토 총독은 일본정부의 분위기를 더 살피다가 1927년 2월 조선인들의 자치운동이 여론에 밀리고, 대신 신간회 결성의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총독부 관료에게 자치론 문제를 본격 연구하도록 지시하였다. 즉 사이토는 자치론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조선지배에 자치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총독은 총독부 관료들이 만든 자치제 초안을 들고 본국과 협의에 나서서 수상에게 구두로 의견을 전했으나, 4월 일본 내각의 교체, 그리고 총독 자신의 제네바회의 대표 파견, 그리고 그에 이은 12월의 총독 경질로 인해 자치제 검토는 유보되고 말았다.084)

 사이토 총독의 경질로 주춤했던 자치론은 1929년 8월 그가 다시 총독으로 부임해오면서 활성화되었다. 아베의 활동이 재개되면서 최린 등과의 접촉이 본격화되었고, 총독부도 연래의 숙제인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의를 거듭하였다. 총독부측은 그 동안의 연구를 토대로<조선에 있어서의 參政에 관한 제도의 방안>이라는 문서를 작성하여 본국 정부에 제출하였다. 총독부가 제시한 안은 조선인 칙선의원이 귀족원에 참여할 수 있게 하며, 조선에 지방의회를 설치한다는 것이었다.085) 당시 이를 실질적으로 담당하여 추진한 사람은 코다바(兒玉) 정무총감으로서 그는 조선의회에서 교육·위생·토목·산업 등의 예산을 다루도록 한다는 구상이었다고 한다. 그는 朝鮮在住者의 이해에 관계가 깊은 문제를 조선재주자의 의원선거권이 없는 본국의 조선의회에서 다루도록 하는 것보다는 조선재주자가 선출한 의원으로 구성되는 조선의회에서 총독의 설명을 듣고 직접 심의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안은 이쿠다(生田) 내무국장 이하 여러 명의 소위원회에서 만든 것이었으며, 사이토 총독은 이 안을 들고 동경에 가서 본국 정부와 협의에 나섰다고 한다.086) 여기서 조선의회는 형식상으로는 일정한 의결권을 갖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총독에 의해 의결의 취소 및 재의의 명령을 받을 수 있는 등 사실상의 자문기관의 성격을 띤 매우 한정적인 권한을 갖고 있었다.

 일본정부는 이러한 안에 대해서도 조선인들에게 자치의회나 참정권을 주는 것은 모두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고 생각하였고, 또 기본적으로 ‘내지연장주의’를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1930년 12월 일본 정부와 총독부는 이 문제를 단순한 지방제도 개정으로 매듭지었다. 즉 기존의 자문기관의 성격만을 지닌 도평의회·부협의회·면협의회 등을 형식적인 의결기관으로서의 道會·府會·面會로 바꾸는 지방제도 개혁을 통해 조선인의 참정권·자치권이 크게 신장된 것처럼 선전하고자 했던 것이다.087)

 이상에서 살핀 것처럼 1925년 이후의 자치운동론의 대두와 자치운동의 전개는 총독부측의 자치의회 검토와 밀접한 연결을 갖고 진행된 것이었다. 총독부측은 장기적으로는 자치제 실시를 통해 독립운동의 기세를 꺾고, 단기적으로는 한국인들의 자치운동을 지원하여 민족운동을 분열시킨다는 이중의 목적으로 갖고 ‘자치제 실시 검토’라는 카드를 활용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밖에도 당시 자치운동의 국제적 배경으로 1922년 에이레가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는 에이레자유국을 성립시켰던 것, 인도에서 1919년 이후 간디가 스와라지(자치)운동을 본격화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072) 이에 대해서는 박찬승, 앞의 책, 306∼308쪽.
073) 近藤劒一編,≪万歲騷擾事件≫2 (1964), 116∼123쪽. 고원훈은 1910년 명치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1911∼1913년 총독부 경부, 1913년 이후 보성전문학교 교수, 1920년 보성전문학교 교장, 1924년 중추원 참의 등을 지낸 인물이다.
074) 박경식 편,≪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1, 113쪽.
075) 近藤劒一編, 앞의 책, 144∼155쪽.
076)≪동아일보≫, 1922년 10월 30일, 논설<내정독립도 독립인가-당국의 기괴한 해석>.
077)≪동아일보≫, 1924년 12월 26·27일, 사설<정치운동에 대하야>(상·하).
078) 松尾尊兌,≪大正デモクラシ-≫(岩波書店, 1974), 278∼310쪽.
079) 松尾尊兌, 위의 책, 303∼310쪽.
080) 두 편의 논설은 副島道正編,≪朝鮮統治に就いて≫에 전문이 실려있다.
081) 釋尾東邦,<自治論者に與へて朝鮮統治の根本方針を論ず>(≪朝鮮及滿洲≫1월호, 1926).

町田耘民,<朝鮮統治論と言論界の奇觀>(李種植 편,≪朝鮮統治策に關する學說≫).
082)≪齋藤實文書≫2(고려서림 영인본)에 수록됨.
083) 강동진,≪日本의 韓國侵略政策史≫(한길사, 1980), 350쪽.
084) 강동진, 위의 책, 365∼368쪽.
085)<朝鮮に於ける參政權制度の方案>·<朝鮮に於ける參政に關する制度の方案>(≪齋藤實文書≫2), 541∼661쪽.
086) 萩原彦三,≪私の朝鮮記錄≫(榮光社印刷所, 1960), 59∼60쪽.
087) 강동진, 앞의 책, 368∼371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