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2. 만주지역 독립군의 무장투쟁1) 조선혁명군의 성립과 항일무장투쟁의 전개(2) 중국의용군과의 연합항전과 변천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1. 병참기지화정책
          • 1) ‘조선공업화’ 정책에서 ‘병참기지화’ 정책으로의 전환
          • 2) ‘병참기지화’ 정책의 특징
            • (1) 군수산업으로의 자원 집중
            • (2) 생산성 감퇴를 수반한 ‘산업고도화’의 실상
            • (3) 군수원료로서 광물의 생산 및 이출 급증
          • 3) ‘병참기지화’ 정책과 조선경제
            • (1) 성장을 모색하던 조선인 자본가의 한계
            • (2) 생산력과 기술 이전의 제약
          • 4) 한국자본주의사에서의 ‘병참기지화’ 정책
        • 2. 국가총동원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1) 민족말살정책의 전개와 그 성격
          • 2)<국가총동원법>의 확대와 관제운동의 실시
          • 3) 교육정책
          • 4) 언론통제정책
          • 5) 조선어 말살정책
          • 6) 창씨개명
          • 7) 신도 강요
          • 8) 결혼정책
          • 9) 징병제와 참정권
        • 3. 전시수탈정책
          • 1) 전시동원체제의 구축
          • 2) 농업증산정책과 농산물 수탈
            • (1) 조선증미계획의 전개 과정과 그 결과
            • (2) 부락생산확충계획과 농촌재편성계획의 내용
            • (3) 미곡공출의 전개 과정과 농가경제의 파탄
          • 3) 노동력 동원정책과 노동력 수탈
            • (1) 노동력의 수요 증대와 노동력 조사
            • (2) 노동력 동원의 방식과 규모
            • (3) 농촌노동력의 동원 실태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1. 농민운동
          • 1) 1930년대 초반 농촌사회의 변화
            • (1) 식민지 지배정책과 농촌사회의 변동
            • (2) 농촌사회 내부의 계급관계의 변화
            • (3) 소작쟁의의 격증
          • 2) 농민조합운동과 개량적 농민운동의 전개
            • (1) 농민조합운동
            • (2) 개량적 농민운동
          • 3) 1930년대 이후 농민운동의 성격
        • 2. 노동운동
          • 1) 노동조합의 조직과 산업별 노조로의 이행
          • 2) 혁명적 노동조합운동
          • 3) 개량주의와 어용 노동조합
          • 4) 노동운동의 전개
            • (1) 1930년대의 노동운동
            • (2) 종전기의 노동운동
        • 3. 여성운동
          • 1) 1930년대 여성운동사 기술의 관점
          • 2) 1930년대 여성운동 변화의 기폭제로서의 근우회 해소
          • 3) 1930년대 전반기 여성운동
            • (1) 여성노동운동
            • (2) 여성농민운동
            • (3) 잠녀(해녀)투쟁
          • 4) 1930년대 후반 이후 여성운동과 여성지식인
            • (1) 1930년대 후반 이후 노동운동
            • (2) 1930년대 후반기 이후 국내 여성농민조직운동과 조국광복회운동
            • (3) 여성운동가들의 결단과 여성지식인들의 일제체제로의 굴복
        • 4. 청년운동
          • 1) 조선청년총동맹의 결성과 와해
          • 2) 일제의 청년운동 탄압
        • 5. 학생운동
          • 1) 군국파쇼 일제의 통치정책과 민족운동의 변화
            • (1) 군국파쇼 일제의 통치정책
            • (2) 민족운동의 변화
          • 2) 1930년대 학생운동
            • (1) 문화계몽운동
            • (2) 동맹휴학
            • (3) 비밀결사
          • 3) 태평양전쟁하의 학생운동
            • (1) 비밀결사 흑백당의 활동
            • (2) 부산2상·동래중학의 군사훈련 반대항쟁
            • (3) 학병거부항쟁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1. 중국관내 독립운동정당의 활동
          • 1) 독립운동정당의 성립과 활동
            • (1) 한국독립당
            • (2) 의열단
            • (3) 신한독립당
            • (4) 조선혁명당
          • 2) 제 정당의 통합노력과 양대 정당체제의 성립
            • (1) 조선민족혁명당
            • (2) 한국국민당
          • 3) 양대 연합체제와 통합노력
            • (1)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
            • (2) 조선민족전선연맹
            • (3) 7당·5당 통일회의와 전국연합진선협회
          • 4) 양대 정당체제의 재현
            • (1) 한국독립당
            • (2) 조선민족혁명당
          • 5) 임시정부로의 합류
            • (1) 한국독립당
            • (2) 조선민족혁명당
            • (3) 조선민족해방투쟁동맹
            • (4)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 (5) 신한민주당
          • 6) 1930년대 이후 독립운동정당의 특성
        • 2. 만주지역 독립군의 무장투쟁
          • 1) 조선혁명군의 성립과 항일무장투쟁의 전개
            • (1) 조선혁명군의 성립과 초기 활동
            • (2) 중국의용군과의 연합항전과 변천
            • (3) 조선혁명군(정부)의 해체와 동북항일연군 합류
          • 2) 한국독립군의 성립과 항일무장투쟁의 전개
            • (1) 한국독립군의 성립 및 중국의용군과 연합항전
            • (2) 한국독립군의 해체와 주도세력의 관내 이동
          • 3) 동북항일연군내 한인들의 활약과 조국광복회
            • (1) 한인들의 중국공산당 입당과 항일유격대의 성립
            • (2) 동북인민혁명군(동북항일연군)의 성립과 한인들의 활약
            • (3) 조국광복회의 결성과 ‘항일민족통일전선’의 확산
          • 4) 1930년대 만주지역 독립군 무장투쟁의 의의
        • 3. 미주·일본지역의 독립운동
          • 1) 미주지역의 독립운동
            • (1) 1930년대 하와이 한인사회의 통일운동과 독립운동
            • (2) 1930년대 북미한인사회의 통일운동과 독립운동
            • (3) 1940년대 미주 한인사회의 독립운동
          • 2) 일본지역 민족운동
            • (1) 1930년대 일본지역 조선인의 상태
            • (2) 재일조선인 민족해방운동의 방향전환
            • (3) 1930년대 전반 일본지역 민족해방운동
            • (4) 1930년대 후반·40년대 일본지역 민족해방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1.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
          • 1) 한국독립당의 창당
          • 2) 정부 조직의 확대와 개편
          • 3) 건국강령의 제정 반포
        • 2. 한국광복군의 창설과 활동
          • 1) 광복군의 창설
          • 2) 중국관내 무장세력의 광복군 편입
            • (1) 한국청년전지공작대의 편입
            • (2) 조선의용대의 편입
          • 3) 연합군과의 공동작전
        • 3. 임시정부로의 통일전선 형성
          • 1) 좌익진영의 임시정부 참여
          • 2) 좌우연합정부 구성
          • 3)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와의 통일운동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중국의용군과의 연합항전과 변천
가. 한중연합항전

중국 동북에서 활동하던 민족운동가들은 한국이 일제에 병합된 뒤 지속적으로 중국 동북의 군벌과 국민당 정권에 한중연합항전을 호소했다. 실제로 1931년 6월 경 국민부 吉黑특별위원회 위원장 金履大 등은 중국 길림성 당국자와 접촉하고 공산당의 소탕과 조선혁명 지원, 일제 驅逐 및 주구기관과 주구배 파괴·박멸 등을 밀약한 바 있었다.618) 또 비슷한 시기 조선혁명당 중앙집행위원장겸 군 총사령 현익철은 길림에 가서<東北韓僑情勢一般>과<中韓민족 합작의견서>를 제출하고 한중연합투쟁을 제의하였다.619)

하지만 그해 7월 萬寶山 사건이 발발하고 8월 말 현익철이 瀋陽에서 일제에 체포되는 등 상황이 악화되어 이 계획은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당시 중국인이나 중국 관헌들이 일제의 직접적 침략책동이 없는 한 일본과 충돌하여 복잡한 문제를 일으키려 하지 않았던 이유도 컸다. 그러나 1931년 9월 18일 일제가 만주를 전면 침공한 ‘9·18사변(만주사변)’이 일어난 뒤부터 한중합작문제는 큰 진전이 있었다.

조선혁명당과 군의 주요간부들은 1932년 1월 19일 新賓縣에서 당면 대책회의를 개최하다가 일본 경찰과 중국 관헌의 습격을 받고 대거 체포되는 불상사를 겪었다. 이 때 조선혁명당 중앙집행위원장 李浩源, 군 사령관 金保安(일명 金寬雄, 본명 金俊澤), 부사령관 張世湧(본명 張元濟), 국민부 공안부집행위원장 李鍾建(본명 李鐘淳), 朴致化·李奎星 등 핵심간부 10여 명이 체포되었다.620) 또 이후 3월 초까지 계속된 일본 경찰의 검거로 국민부와 조선혁명당·군의 관계자들은 모두 9개 현에서 80여 명이 검거되는 커다란 타격을 받고 말았다.621)

그러나 그러한 위기를 겪은 뒤에도 조선혁명당·군·국민부는 高而虛와 梁世奉·梁基瑕(호는 荷山) 등 피신한 간부들에 의해 곧 재건되었다. 이 ‘신빈사변’ 이후 국민부 중앙집행위원장은 양기하, 당의 위원장은 고이허, 군사령관은 양세봉이 분담하였다.622) 조선혁명군은 이후 신빈·통화·환인 등 지방부대에서 우수한 청년들을 선발하여 400여 명의 편제를 갖추고 사령부를 신빈현 왕청문에 두는 한편, 남만주 각지의 유력한 중국인사들과 연락을 취하며 연대를 모색하였다.

특히 9·18사변 이후 일제가 중국 동북을 점령하고 1932년 3월 1일 괴뢰국가인 ‘滿洲國’을 세우자 중국 동북 각지에서는 구 동북군벌계의 중국의용군은 물론 마적, 大刀會·紅槍會 등 종교집단 계통의 각종 항일부대까지 대거 봉기하는 국면을 맞이하였다. 양세봉을 비롯한 조선혁명군 간부들은 이러한 기회를 맞이하여 중국의용군과 공동투쟁의 방략을 적극적으로 강구하였다.

1932년 3월 초 조선혁명군 사령관 양세봉은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중국인 王彤軒과 梁錫福 등 대도회 세력이 이끄는 의용군과 연대하여 공동투쟁키로 합의했다. 그리하여 같은 달 6일 조선혁명군은 이들과 함께 遼寧農民自衛團(일설에는 요녕민중자위단)이라는 한중연합의용군을 조직하여 남만의 유하현 四鋪炕에서 선포식을 거행하고 연합군의 봉기를 내외에 천명하였다.623) 이 때 사령관은 왕동헌, 부사령관은 양세봉이 맡았는데, 전체 병력은 2,000여 명이나 되었다. 이 달 11일 조선혁명군은 요녕농민자위단 부대와 함께 근거지인 왕청문에서 한중연합 항일투쟁의 첫 출정을 단행하였다. 이후 조선혁명군은 신빈현 南陡嶺에서 신빈에 주둔하고 있던 괴뢰 만주국 공안대와 격전을 치른 뒤 신빈의 西永陵街를 점령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신변현의 木奇·黑牛·上夾河 등 여러 고을을 점령하고 큰 전과를 거두었다.624) 이 같은 전투는 조선혁명군이 중국항일의용군과 연합항전을 개시하는 서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투는 조선혁명군이 각 지방에서 분산활동하고 있던 병력을 집결시켜 체제를 재편성하고 한중연합군을 편성하여 본격적 항일무장투쟁의 길로 나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조선혁명군이 요녕농민자위단의 일원으로 투쟁하고 있을 때 北京에서 결성된 ‘동북항일민중구국회’에서는 만주의 항일투쟁을 촉진하기 위해 환인현에 주둔하고 있던 구 동북군부대 지휘관 唐聚五 등 동북정권 관련자들에게 밀사를 파견하여 봉기를 촉구하였다. 특히 9·18사변 직후 관내로 피신했던 중국국민당의 동북군 수뇌 張學良은 항일의지가 굳은 당취오를 방어군(요녕육군 보병 제1단) 단장으로 임명하고 적극 후원하였다. 이리하여 국민당 특파원 王育文·李春潤 및 王鳳閣 등 유력자들과 동변도 10개현 대표 30여 명이 3월 21일 환인현에 모여 ‘遼寧民衆救國會’를 조직하게 되었다.625) 이 조직 아래에는 정치 및 군사의 두개 위원회가 있었는데, 군사위원회 아래 ‘요녕민중자위군’ 총사령부를 두었고, 당취오가 군사위원회 위원장 및 총사령을 겸직하였다. 이 때 신빈 東大營에 주둔하고 있던 구 동북군의 영장 이춘윤이 군사위원회 위원겸 제6로군 총사령이 되었다.626)

조선혁명군이 참여해서 같이 싸우고 있던 요녕농민자위단 사령관 왕동헌은 추후 이 소식을 듣고 이 조직에 참여하였다. 그 결과 조선혁명군은 왕동헌 등의 부대와 함께 요녕민중자위군의 제11로군으로 편성되었다. 조선혁명군은 이 연합부대에 참가했지만, 독립군으로서의 독자적 지위를 분명히 하기 위해 새로운 작전협정을 요구하였다. 즉 4월 29일 참모장 김학규를 환인에 파견하여 요녕민중자위군 총수 당취오 등과 한·중 양 민족의 연대투쟁 문제를 협상케 했던 것이다.627)

이 협정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제5항으로서, 조선혁명군이 장차 한국내로 진격하여 독립전쟁을 수행하고자 하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목표의 수립은 조선혁명군이 중국의용군과 같이 일제와 싸우는 한편, 지속적으로 국내침투작전을 추진하고 있었다는 사실로도 증명된다.

실제로 1932년 한해 동안 조선혁명군은 16차에 걸쳐 101명의 대원을 국내로 침투시켜 군자금의 모집과 일제 기관의 습격, 친일파 처벌 등의 투쟁을 벌였다.628) 이 수치는 일제 당국에 포착된 경우만 밝혀진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훨씬 많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1932년 3월 결사대원 李先龍을 국내로 파견하여 군자금을 모집케 한 경우였다. 이선룡은 양세봉의 특명을 받고 국내로 잠입하여 東一銀行 장호원 지점을 습격했다. 그는 13,000원에 달하는 거액의 자금을 빼앗았으며 충청·경기·강원 일대의 치안을 교란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는 일인 경찰과 교전하여 중상을 입히는 등 크게 활약했고, 비록 4월 5일 체포되고 말았으나 그가 일으킨 파문은 매우 컸다.629)

조선혁명군은 요녕민중자위군의 일원으로 투쟁하면서 자주적 협정을 체결하고 공동작전을 수행하였다. 그 뒤 이 부대는 요녕민중자위군의 특무대와 선전대대로 편성되었고, 총사령관 양세봉은 특무대 사령으로, 金光玉은 선전대대 대장으로 활동하였다. 이 독립군부대가 이렇게 편성된 것은 중국군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우수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무대는 8개 산하부대로 편제되었다. 이후 조선혁명군은 1932년 10월까지 다른 요녕민중자위군 부대와 함께 공동으로 거의 200여 차례의 대소전투를 치르며 크게 용맹을 떨쳤다.630) 조선혁명군은 이 무렵 요녕민중자위군 사령부이자 임시항일정부인 ‘요녕성정부’ 소재지인 通化(江甸子)에 속성군관학교를 설치하여 400여 명의 장교 및 병사들을 양성하였다. 이 때 조선혁명군은 중앙군(현역, 정규군)과 지방군(예비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중앙군의 규모는 300명 가량이었다.631)

가장 치열한 전투를 치렀던 1932년 한해 동안 조선혁명군이 중국의용군과 함께 전개한 주요 전투를 간단히<표 1>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러한 대활약으로 남만일대에서 조선혁명군의 명성은 크게 높아졌다. 또 300여 명의 조선혁명군은 1932년 9월 양석복이 거느리는 대도회군과 함께 대도시인 撫順공략전에 참가하여 일·만군과 격전을 치렀다.632) 물론 이밖에 상세히 알려지지 않은 전투도 많다. 우리는 이를 통해 조선혁명군이 중국의용군과 함께 매우 다양한 항일투쟁을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시 기 지 점 조선혁명군 부대 요녕민중자

위군 부대
전 과
未詳

4∼5월


6월




7월 상순

7월 중순

7월 하순

8월
신빈현 경내

신빈현 老城

신빈현 永陵街

신빈현성 부근

청원현 경내

輯安·臨江縣

桓仁縣 雅河

신빈현 石人溝

撫松縣 老溝台

통화현 快大茂

淸原縣 馬山衛子
대부대

崔允龜·趙化善部隊


양세봉부대

최윤구 부대

金光玉 部隊

文英燦 部隊

양세봉 부대

未詳

최윤구·조화선부대

조화선부대
李春潤 부대





孫秀岩 부대

5로군

이춘윤 부대

불참

불참

불참
克縣城을 여러번 공격

80여 명 敵 살상

2일간 적과 교전

新賓縣城을 3차례 奪占

일·만군과 10여 차례 교전

일·만군과 30여 차례 교전

일·만군의 공격을 수차 격퇴

일·만군 40여 명 살상

일·만군 거점을 습격

일·만군 80여 명 섬멸

일·만군 36명 섬멸

<표 1>1932년 4월부터 8월까지 조선혁명군이 행한 주요 연합전투 및 단독전투

*新賓滿族自治縣民委朝鮮族志編纂組 編,≪新賓朝鮮族志≫(瀋陽:遼寧民族出版社, 1994), 27쪽.

조선혁명군이 중국의용군과 공동작전을 수행하는 기간인, 1932년 8월 경 조선혁명당·군의 본거지인 신빈 또는 통화에 국민부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정부’를 수립하려고 했던 사실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독립정부 수립’ 구상이야말로 조선혁명군 계열 인사들의 독자성과 자존심을 상징한다.633) 왜냐하면 그들은 상해 임시정부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만주 무장투쟁 세력이야말로 진정으로 민족해방운동(독립운동)의 정통성과 주류적 위상을 계승하고 있다는 자존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임시정부를 존중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반임시정부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독립정부 수립계획은 1932년 10월 일본군이 신빈·통화·환인 지역에 대거 출동하고 공동투쟁하던 중국의용군이 패퇴함으로써 실천되지 못하였다. 일제측 기록에 따르면 조선혁명군 사령관 양세봉은 중국의용군 총수 당취오와 협상하여 장차 의용군의 지반이 공고해지면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위해 10만여 명의 병력과 무기를 대여하고 적극적 원조를 시행키로 하는 밀약을 체결했다고 한다.634) 물론 이 정보의 사실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는 조선혁명군의 원대한 독립전쟁 전략을 알아볼 수 있는 하나의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다.

618)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독립운동사자료집≫10, 591쪽.
619)金學奎,<三十年來韓國革命運動在中國東北>(≪光復≫1-4, 1941년 6월: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7년 영인본), 28쪽.
620)金學奎, 위와 같음.

<中國九一八事變後朝鮮革命黨在東北工作經過狀況>(≪震光≫6호, 1934년 9월: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8년 영인본), 15쪽.

<李浩源 등 가출옥 관계서류>(정부기록보존소 소장, 수원대 박환 교수 제공).
62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독립운동사자료집≫10, 606·613∼616쪽.
622)金學奎, 앞의 글(1941), 29쪽.

≪外事警察報≫121, 69쪽(李命英,≪權力의 歷史≫, 성균관대출판부, 1983, 88쪽에서 재인용).
623)曹文奇, 앞의 책(1990), 202쪽.
624)金學奎, 앞의 글(1941), 29쪽.
625)譚譯·王駒·邵宇春,<9·18사변 후 동북의용군과 한국독립군의 연합항일>(≪國史館論叢≫44, 1993), 201쪽.

張洪軍,≪九·一入全史≫3(瀋陽:遼海出版社, 2001), 155쪽.
626)曹文奇, 앞의 책(1990), 112쪽.

金學奎, 앞의 글(1941), 29쪽.

張洪軍, 위의 책, 181쪽.
627)협정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東邊道(압록강 건너편과 남만주 남쪽 일대) 일대(즉 당취오 관할지)에서 조선혁명군의 활동을 정식으로 승인할 것.

② 당취오군 관할 내에 예속하는 각급 관공서와 민중이 조선혁명군의 활동에 관한 일체에 대하여 적극 원조해 줄 것을 당취오군 사령부에서 지시할 것.

③ 조선혁명군의 군량 및 장비는 중국 당국에서 공급할 것.

④ 일본군을 향하여 작전할 때 쌍방이 호응원조함으로써 작전의 임무를 완성 할 것.

⑤ 조선혁명군이 일단 압록강을 건너 한국 본토작전을 전개할 때 중국군은 그 전력을 기울여 한국독립전쟁을 원조할 것(金學奎,<白波自敍傳>,≪한국독립운동사연구≫2, 1988, 586∼587쪽).
628)朝鮮總督府 警務局,≪最近に於ける朝鮮の治安狀況≫(京城, 1933), 213쪽.
629)≪조선일보≫, 1932년 3월 31일·4월 13일.

≪동아일보≫, 4월 1·15일.
630)金學奎, 앞의 글(1941), 29쪽.

―――, 앞의 글(1988), 587쪽.
631)桂基華,<3府·國民府·朝鮮革命軍의 독립운동 회고>(≪한국독립운동사연구≫1, 1987), 140쪽.

張洪軍, 앞의 책, 185쪽.
632)계기화, 위의 글, 410∼411쪽.

張洪軍, 위의 책, 185쪽.
633)1932년 8월 5일 신빈현 葦子谷에서 부근의 한인 농민대표와 조선혁명당 국민부 조선혁명군의 주요 영도자들이 모여 비밀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때 이들은 ① 국민부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정부 조직, ② 독립정부의 군대편성, ③ 각현 행정기관 정비, ④ 재만 조선인 단체의 통일 및 중국 국민당정부와 연락, ⑤ 조선 현재의 사회·정치기구 교란·파괴, ⑥ 재정방침 및 징병제도의 확립과 임원선임 등의 주요방침을 결정했다(<在滿朝鮮人の不逞行動及取締狀況>,≪日本外務省警察史≫在滿大使館 第1, 국회도서관 소장 일본 외무성문서 제책본 제2268권, 2614∼2616쪽).
63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독립운동사자료집≫10, 607∼608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