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2. 만주지역 독립군의 무장투쟁2) 한국독립군의 성립과 항일무장투쟁의 전개(1) 한국독립군의 성립 및 중국의용군과 연합항전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1. 병참기지화정책
          • 1) ‘조선공업화’ 정책에서 ‘병참기지화’ 정책으로의 전환
          • 2) ‘병참기지화’ 정책의 특징
            • (1) 군수산업으로의 자원 집중
            • (2) 생산성 감퇴를 수반한 ‘산업고도화’의 실상
            • (3) 군수원료로서 광물의 생산 및 이출 급증
          • 3) ‘병참기지화’ 정책과 조선경제
            • (1) 성장을 모색하던 조선인 자본가의 한계
            • (2) 생산력과 기술 이전의 제약
          • 4) 한국자본주의사에서의 ‘병참기지화’ 정책
        • 2. 국가총동원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1) 민족말살정책의 전개와 그 성격
          • 2)<국가총동원법>의 확대와 관제운동의 실시
          • 3) 교육정책
          • 4) 언론통제정책
          • 5) 조선어 말살정책
          • 6) 창씨개명
          • 7) 신도 강요
          • 8) 결혼정책
          • 9) 징병제와 참정권
        • 3. 전시수탈정책
          • 1) 전시동원체제의 구축
          • 2) 농업증산정책과 농산물 수탈
            • (1) 조선증미계획의 전개 과정과 그 결과
            • (2) 부락생산확충계획과 농촌재편성계획의 내용
            • (3) 미곡공출의 전개 과정과 농가경제의 파탄
          • 3) 노동력 동원정책과 노동력 수탈
            • (1) 노동력의 수요 증대와 노동력 조사
            • (2) 노동력 동원의 방식과 규모
            • (3) 농촌노동력의 동원 실태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1. 농민운동
          • 1) 1930년대 초반 농촌사회의 변화
            • (1) 식민지 지배정책과 농촌사회의 변동
            • (2) 농촌사회 내부의 계급관계의 변화
            • (3) 소작쟁의의 격증
          • 2) 농민조합운동과 개량적 농민운동의 전개
            • (1) 농민조합운동
            • (2) 개량적 농민운동
          • 3) 1930년대 이후 농민운동의 성격
        • 2. 노동운동
          • 1) 노동조합의 조직과 산업별 노조로의 이행
          • 2) 혁명적 노동조합운동
          • 3) 개량주의와 어용 노동조합
          • 4) 노동운동의 전개
            • (1) 1930년대의 노동운동
            • (2) 종전기의 노동운동
        • 3. 여성운동
          • 1) 1930년대 여성운동사 기술의 관점
          • 2) 1930년대 여성운동 변화의 기폭제로서의 근우회 해소
          • 3) 1930년대 전반기 여성운동
            • (1) 여성노동운동
            • (2) 여성농민운동
            • (3) 잠녀(해녀)투쟁
          • 4) 1930년대 후반 이후 여성운동과 여성지식인
            • (1) 1930년대 후반 이후 노동운동
            • (2) 1930년대 후반기 이후 국내 여성농민조직운동과 조국광복회운동
            • (3) 여성운동가들의 결단과 여성지식인들의 일제체제로의 굴복
        • 4. 청년운동
          • 1) 조선청년총동맹의 결성과 와해
          • 2) 일제의 청년운동 탄압
        • 5. 학생운동
          • 1) 군국파쇼 일제의 통치정책과 민족운동의 변화
            • (1) 군국파쇼 일제의 통치정책
            • (2) 민족운동의 변화
          • 2) 1930년대 학생운동
            • (1) 문화계몽운동
            • (2) 동맹휴학
            • (3) 비밀결사
          • 3) 태평양전쟁하의 학생운동
            • (1) 비밀결사 흑백당의 활동
            • (2) 부산2상·동래중학의 군사훈련 반대항쟁
            • (3) 학병거부항쟁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1. 중국관내 독립운동정당의 활동
          • 1) 독립운동정당의 성립과 활동
            • (1) 한국독립당
            • (2) 의열단
            • (3) 신한독립당
            • (4) 조선혁명당
          • 2) 제 정당의 통합노력과 양대 정당체제의 성립
            • (1) 조선민족혁명당
            • (2) 한국국민당
          • 3) 양대 연합체제와 통합노력
            • (1)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
            • (2) 조선민족전선연맹
            • (3) 7당·5당 통일회의와 전국연합진선협회
          • 4) 양대 정당체제의 재현
            • (1) 한국독립당
            • (2) 조선민족혁명당
          • 5) 임시정부로의 합류
            • (1) 한국독립당
            • (2) 조선민족혁명당
            • (3) 조선민족해방투쟁동맹
            • (4)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 (5) 신한민주당
          • 6) 1930년대 이후 독립운동정당의 특성
        • 2. 만주지역 독립군의 무장투쟁
          • 1) 조선혁명군의 성립과 항일무장투쟁의 전개
            • (1) 조선혁명군의 성립과 초기 활동
            • (2) 중국의용군과의 연합항전과 변천
            • (3) 조선혁명군(정부)의 해체와 동북항일연군 합류
          • 2) 한국독립군의 성립과 항일무장투쟁의 전개
            • (1) 한국독립군의 성립 및 중국의용군과 연합항전
            • (2) 한국독립군의 해체와 주도세력의 관내 이동
          • 3) 동북항일연군내 한인들의 활약과 조국광복회
            • (1) 한인들의 중국공산당 입당과 항일유격대의 성립
            • (2) 동북인민혁명군(동북항일연군)의 성립과 한인들의 활약
            • (3) 조국광복회의 결성과 ‘항일민족통일전선’의 확산
          • 4) 1930년대 만주지역 독립군 무장투쟁의 의의
        • 3. 미주·일본지역의 독립운동
          • 1) 미주지역의 독립운동
            • (1) 1930년대 하와이 한인사회의 통일운동과 독립운동
            • (2) 1930년대 북미한인사회의 통일운동과 독립운동
            • (3) 1940년대 미주 한인사회의 독립운동
          • 2) 일본지역 민족운동
            • (1) 1930년대 일본지역 조선인의 상태
            • (2) 재일조선인 민족해방운동의 방향전환
            • (3) 1930년대 전반 일본지역 민족해방운동
            • (4) 1930년대 후반·40년대 일본지역 민족해방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1.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
          • 1) 한국독립당의 창당
          • 2) 정부 조직의 확대와 개편
          • 3) 건국강령의 제정 반포
        • 2. 한국광복군의 창설과 활동
          • 1) 광복군의 창설
          • 2) 중국관내 무장세력의 광복군 편입
            • (1) 한국청년전지공작대의 편입
            • (2) 조선의용대의 편입
          • 3) 연합군과의 공동작전
        • 3. 임시정부로의 통일전선 형성
          • 1) 좌익진영의 임시정부 참여
          • 2) 좌우연합정부 구성
          • 3)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와의 통일운동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한국독립군의 성립과 항일무장투쟁의 전개

(1) 한국독립군의 성립 및 중국의용군과 연합항전
가. 한국독립군의 성립

남만주 지역에서 조선혁명당과 국민부·조선혁명군이 삼위일체로 중국 항일투쟁 세력과 연대하여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을 때 북만주와 동만주 일대에서도 한국독립당과 한족자치연합회·한국독립군이 1930년대 초반 활발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30년 7월 북만주 葦河縣에서 창립된 한국독립당은 대부분 대종교 신자 및 유림·기호지방 출신 인사들, 그리고 漢學 수학이나 무관학교를 졸업한 양반·지주 출신 인사들에 의해 주도되었다.684) 이에 따라 이 당은 대체로 민족주의 및 반공적 성향을 띠게 되었다. 사실 이 당의 창건배경에는 북만에서 활동하고 있던 민족주의 계열 운동세력의 위기의식이 크게 반영되어 있었다. 즉 한국독립당의 전신인 한족총연합회의 주요 지도자 金佐鎭이 1930년 1월 공산주의자에게 피살되고, 한인들이 대다수 거주하는 연변 및 북만지방에서 한인 중심의 공산주의운동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어서 민족주의 세력의 결집이 필요했던 것이다. 여기에 남만지역에 국민부와 조선혁명당·군이 성립한 상황도 적지 않게 영향을 미쳤다. 때문에 이 당은 창립시 당과 군의 조직체계 확립, 반공대책의 수립 등을 긴급현안으로 판단하고 몇 가지 사항을 결의하여 구체적 활동을 전개하였다.685)

한국독립당은 이러한 새 방침에 따라 독립운동 및 자치운동, 교육·산업진흥운동, 한인 교민 보호 등의 여러 활동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초창기에는 공산주의자들을 상대로 한 반공투쟁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이들은 張作相과 같은 중국 군벌정권의 유력자와 연계하여 한인 공산주의자들을 ‘토벌’하였다.

이에 따라 이 곳에서 양 계열 사이에 바람직하지 않은 공방전이 벌어져 민족운동의 역량을 허비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1930년 8월 초 180여 명의 한인 공산당원들이 海林站에 있던 한국독립당 본부를 습격했다. 반대로 한국독립당의 南大觀·權秀貞(본명 이종형, 후에 변절) 등은 길림성 당국의 허가를 받아 ‘探共隊’를 조직하고, 이듬해 6월 경 동·북만 일대에서 다수의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하여 처벌하였다.686)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무고한 한인들이 희생되는 경우가 있어 북만지역 한인 대중의 원성을 사고, 공산주의자들에게 반격의 명분을 제공하는 등 스스로의 존립기반을 무너뜨리는 사례도 있었다.

1931년 9월 일제의 만주 침략이 단행되자 항일투쟁의 좋은 기회가 온 것으로 판단한 한국독립당은 10월 5일 길림성(현재는 흑룡강성) 오상현 大石河子에서 긴급중앙위원회의를 열고 급박한 시국정세와 향후의 투쟁노선을 논의하였다. 이 때 일제의 침략이 만주에 그치지 않고 중국관내 등 다른 지역까지 미치는 것은 물론 세계대전으로 확대될 것이 예견되었고, 이에 따라 한국독립의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전망하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그리고 중국군과 공동작전을 펴 이들의 지원을 받으며 투쟁하면서 세계연합군의 교전단체로 참가하여 국내로 상륙작전을 전개하면 전후 강화회의에서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는 전략이 세워지게 되었다.687) 이 회의에서 중요한 3가지 안건이 의결되었다.688)

한국독립당은 이 결의에 따라 하얼빈 근교의 中東線 철도 연변을 중심한 각 군구에 총동원령을 내려 재향군인의 소집과 청장년들의 징집을 실시하는 한편, 당 군사위원장 李靑天(본명 池大亨)을 총사령으로 하는 한국독립군의 편제를 정했다. 11월 중순의 편제를 보면 부사령관에 남대관, 참모관에 申肅, 재무겸 외교관에 安也山, 의용군 훈련대장에 李光雲, 의용군 중대장에 吳光鮮, 별동대 대장에 韓光彬, 헌병대 대장에 裵成雲, 중국구국군 후원회장에 권수정 등이었다.689)

창립 초기의 한국독립군은 지휘부 위주로 편성되었고, 실제 병력은 약 150명 정도였다. 연변이나 남만지역과 달리 북만지역은 한인 사회가 드문드문 산재한 데다가 500戶 이상 집단거주하는 한인사회가 거의 없어 그 기반이 취약한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초창기 한국독립군은 중국항일군과 연계관계가 없어 오히려 중국군의 탄압을 받는 등 곤경을 치렀다. 하지만 11월 28일 중국군에 체포된 권수정의 적극 해명에 힘입어 총사령관 이청천과 참모 신숙 등은 12월 초순 북만 중국항일 세력의 본거지인 賓縣에 가서 중국항일군과 연합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였다.690) 빈현에는 일제의 침략에 야합하여 성립한 熙洽의 괴뢰정부에 반대하던 誠允이 11월 12일 길림성정부를 세우고 부근 10개 현을 기반으로 적극 항전하고 있었던 것이다.691) 이 때 양측에서 논의한 약속사항은 다음과 같다.692)

① 한·중 양군은 어떤 열악한 환경을 막론하고 장기항전을 맹세한다. ② 中東鐵路를 경계로 하여 서부전선은 중국군이 맡고, 동부전선은 한국군이 담당한다. ③ 한·중 양군의 전시 후방교련은 한국군의 장교가 부담하고, 한국독립군의 소요일체 군수물자는 중국군이 공급한다.

위 협정에서 남만의 조선혁명군처럼 ‘한국(조선) 독립’이나 한국 독립전쟁의 지원과 같은 언급이 없는 것은 아쉬운 점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북만지역은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사실상 국내진입작전을 전개하기가 매우 어렵고 정착한 한인 교민의 숫자도 적었으며, 한국독립군 자체의 역량이 조선혁명군 세력에 비해 미흡하기 때문에 그러한 기대가 무리한 측면이 있다. 이는 초창기 한국독립당이 독자적 항일투쟁을 통해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는 전략보다는 중국항일군과 연대투쟁하여 ‘교전단체’로 인정받으려는 현실적 방침을 우선 고려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693) 때문에 우리는 소수의 무장조직이 다수의 중국군과 연대투쟁을 모색하여 난관을 타개하려 한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중동선 철도의 동쪽을 한국독립군이 맡은 이유는 그곳이 산악지대가 많았으므로 유격전을 수행하기 유리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후 한국독립군은 총사령부의 위치를 흑룡강성 依蘭縣으로 정하고 韓永浩 등을 당 중앙에 파견하여 위 내용을 보고했으며, 후방 각 군구의 조직들이 전선에 집중할 것을 촉구했다.694) 이에 한국독립당은 동·북만의 각 지역을 縣 단위로 구분하여 趙擎韓·오광선·洪震(한국독립당 위원장) 등 12명의 징집책임자를 파견하고 각자 담당구역에서 새로 모집한 장정을 3·3제로 편성케 했다. 3·3제란 30명을 1개 소대, 3개 소대를 1중대, 3개 중대를 1대대, 3개 대대를 1연대로 편성하는 조직방침을 말한다. 또 한국독립군은 하사 이상 간부들을 소집한 재향군인 가운데서 우선 임명하여 초급훈련을 실시한 뒤, 총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지정구역으로 이동케 하고 추후 무기 등을 지급받아 작전에 임할 것을 결정했다.695) 이러한 분투 결과 1931년 말에는 약 300∼500여 명의 대원을 동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무기와 장비 등은 별로 없어 실제 전투를 수행할 수 없었다.

684)박 환, 앞의 글, 143∼145쪽.
685)이 때 아래의 사항에 결의되었다.

① 당의 지부는 縣 지부·區 지부 등 3칭체계를 둘 것.

② 軍은 당군으로 편성하되 전 만주를 15구로 나누어 신병을 모집하며 3개월씩 일기로 미리 훈련할 것.

③ 당원 및 청소년 훈련을 적극 추진하여 赤色(공산주의)의 오염을 방지할 것.

④ 농민 성인에 대한 강습은 농한기나 가을·겨울간 야간을 이용할 것(趙擎韓,≪白岡回顧錄≫, 한국종교협의회, 1979, 91쪽).
686)<昭和 6년 7월 2일 在間島岡田總領事發信幣原外務大臣宛報告要旨>(≪일본 외무성·육해군성 문서≫, 국회도서관 소장 복사제책본 제321권), 7125∼7129쪽
687)趙擎韓, 앞의 책(1979), 94쪽.
688)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각 군구에 총동원령을 내려 정비된 군사행동을 개시할 것.

② 당내 모든 공작을 군사방면에 집중할 것.

③ 특파원을 길림성 항일군사당국에 파견하여 한중합작을 상의할 것(一靑(趙擎韓),<‘九一八’後韓國獨立軍在中國東北殺敵略史>,≪光復≫2-1, 1942년 1월;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7년 영인본, 53쪽).
689)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5(1970), 599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독립운동사자료집≫10, 619쪽.
690)趙擎韓,<韓國獨立軍與中國義勇軍聯合抗日記實>(≪革命公論≫창간호, 洛陽, 1933;독립기념관 소장 사본), 69쪽.
691)郭廷以 編,≪中華民國事史日≫3(臺北: 中央硏究院 近代史硏究所, 1984), 106쪽.
692)一靑(趙擎韓), 앞의 글, 53쪽.
693)사실상 이러한 전략은 한국독립당·군의 취약한 현실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한국독립군의 주요 간부로 활약했던 조경한은 후일 자신의 회고록(앞의 책)에서 한국독립군이 만주의 중국의용군은 물론 중국 중앙군과도 공동작전을 펴고, 나아가 세계연합군의 교전단체로 참가할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은 당시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694)趙擎韓, 앞의 글(1942), 53쪽.
695)趙擎韓, 앞의 책(1979), 96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