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Ⅳ. 종교5. 개신교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1. 일제의 교육정책
          • 1) 식민지 교육정책의 기본성격
          • 2) 제1차<조선교육령>과 식민지 교육제도
          • 3) 민족교육기관에 대한 탄압
        • 2. 민족교육의 정비
          • 1) 문화정치와 교육실태
          • 2) 민족운동의 전환과 실력양성론
          • 3) 제2차<조선교육령>과 민족교육
        • 3. 민족교육운동의 전개
          • 1) 사립학교 교육
          • 2) 민립대학설립운동
          • 3) 민중계몽 교육운동
            • (1) 민중교육기관 설립의 배경
            • (2) 민중교육기관의 성격
            • (3) 민중교육운동의 주체
        • 4. 민족교육의 수난
          • 1) 침략전쟁과 황국신민화정책
          • 2) 황민화교육과 민족교육의 수난
      • Ⅱ. 언론
        • 1. 일제의 언론정책
          • 1) 법적 규제
          • 2) 사전탄압과 사후탄압
        • 2. 무단통치기의 언론
          • 1) 총독부 기관지 독점기
          • 2) 도쿠토미의≪국민신문≫과≪매일신보≫
          • 3) 잡지의 발달
        • 3. 문화정치기의 언론
          • 1) 3·1운동 직후의 여러 독립신문
          • 2) 상해의≪독립신문≫
          • 3) 3대 민간신문의 창간
            • (1)≪조선일보≫
            • (2)≪동아일보≫
            • (3)≪시사신문≫
          • 4)≪시대일보≫와≪중외일보≫
            • (1)≪시대일보≫
            • (2)≪중외일보≫
          • 5) 일제의 언론탄압
            • (1) 행정처분
            • (2) 사법처분
        • 4. 1930년대의 언론
          • 1) 논조의 위축과 사세의 신장
          • 2) 잡지 발행 경쟁과 일본제품 광고
          • 3) 문자보급-농촌계몽운동
          • 4) 3대 민간지의 폐간
      • Ⅲ. 국학 연구
        • 1. 국어학
          • 1) 국어연구 단체의 조직과 국어연구
            • (1) 국어연구 단체
            • (2) 국어연구
          • 2) 국어운동의 전개
          • 3) 조선어학회사건
        • 2. 국문학
          • 1) 국학파의 연구
          • 2) 실증주의적 국문학 연구와 그 분화
        • 3. 국사학
          • 1) 민족주의사학
          • 2) 사회경제사학
          • 3) 실증사학
      • Ⅳ. 종교
        • 1. 일제의 종교정책
          • 1) 일제 종교정책의 기조
          • 2) 무단통치기의 종교 억압·통제정책
          • 3) 문화정치기의 종교 회유·분열정책
          • 4) 침략전쟁기의 종교 이용·탄압정책(1931∼1945)
        • 2. 천도교·대종교
          • 1) 천도교
            • (1) 천도교의 창시
            • (2) 교규의 정비와 교리의 정립
            • (3) 3·1운동의 주도와 임시정부 수립 활동
            • (4) 문화운동론의 수용과 문화운동의 전개
            • (5) 사회변혁론의 모색과 천도교의 분열
          • 2) 대종교
            • (1) 대종교의 중광과 그 배경
            • (2) 대종교의 확산과 조직의 정비
            • (3) 대종교의 독립운동
            • (4) 대종교의 수난
        • 3. 불교
          • 1) 식민지 불교의 성립
            • (1)<사찰령>체제
            • (2) 원종 및 임제종의 퇴진
            • (3) 30본산 연합제규와 불교의 중흥
          • 2) 3·1운동과 불교계의 각성
            • (1) 3·1운동 참여
            • (2) 독립운동에 동참
            • (3) 불교의 자주화와 통일기관
            • (4) 불교전통의 회복
          • 3) 불교자주화의 시련
            • (1) 불교운동의 기반 구축
            • (2) 승려대회와 종헌
          • 4) 조계종의 성립과 식민지체제에 좌절
            • (1) 총본산건설운동과 조계종
            • (2) 군국주의 체제에 좌절
        • 4. 유교
          • 1) 일제강점기의 유교문제
          • 2) 유림의 항일운동과 일제의 탄압
            • (1) 순절과 망명의 항거
            • (2) 유림의 독립청원활동
          • 3) 계몽운동과 유교개혁운동
            • (1) 계몽운동과 민족의식 고취
            • (2) 유교개혁운동의 양상
          • 4)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과 분열정책
            • (1)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
            • (2) 일제의 유림 분열정책
          • 5) 일제의 동화정책과 유교전통의 파괴
            • (1) 일제의 제도적 동화정책
            • (2) 일제의 문화적·풍속적 동화정책
          • 6) 일제하의 유교의 특성
        • 5. 개신교
          • 1) 식민지시기 개신교의 상황
          • 2) 개신교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
          • 3)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을 위한 활동
            • (1) 언론·출판
            • (2) 한글 연구와 보급
            • (3) 역사와 지리 연구
            • (4) 문학·음악·미술·건축
            • (5) 물산장려운동
        • 6. 천주교
          • 1) 교육활동
          • 2) 출판·언론활동
          • 3) 문학·건축·예술활동
      • Ⅴ. 과학과 예술
        • 1. 과학
          • 1) 국내 과학기술교육의 여건
          • 2) 민간 주도의 해외유학
          • 3) 과학기술자들의 활동
        • 2. 음악
          • 1) 제1기-무단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한국전통음악의 약체화
            • (3) 일본 음악교육의 강제화
            • (4) 민족음악의 전개
          • 2) 제2기-문화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일본음악교육의 강제화
            • (3) 민족음악의 전개
          • 3) 제3기-전시체제하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 통제와 친일파 육성
            • (2) 전시체제하 노래 및 음악교육
            • (3) 전문음악가들의 창작활동
            • (4) 민족음악의 전개
        • 3. 미술
          • 1) 전통 화단과 서양화의 이입
          • 2) 서화협회와 조선미술전람회
          • 3) 서양화의 정착과 새로운 모색
          • 4) 근대적 성격의 조각
          • 5) 전시체제하에서의 미술
        • 4. 체육·무용
          • 1) 일제하 근대체육의 성장과 시련
            • (1) 일제의 식민지 체육정책과 민족체육의 대응
            • (2) 3·1운동 이후 문화통치와 민족체육의 성장
            • (3) 전시파쇼체제와 민족체육의 저항
          • 2) 일제하 근대무용의 시련과 성장
            • (1) 일제하 전통무용의 계승과 시련
            • (2) 일제하 신무용의 출현과 성장
        • 5. 연극·영화
          • 1) 1910년대-전통극과 신파극
          • 2) 3·1운동이후∼1920년대-소인극운동
          • 3) 1930년대-대중극·신극과 영화의 발전
          • 4) 1940년대-연극·영화의 암흑기
      • Ⅵ. 민속과 의식주
        • 1. 민속
          • 1) 식민지시기 민속의 변화
          • 2) 생산관련 민속
          • 3) 가족과 친족
          • 4) 촌락과 향촌사회
          • 5) 신앙과 의례
          • 6) 세시풍속, 예능 및 설화
        • 2. 의생활
          • 1) 의생활 변화의 흐름과 양상
          • 2) 흐름의 대세
            • (1) 의복개량
            • (2) 백의금지와 색의권장
            • (3) 몸뻬출현
            • (4) 국민복
          • 3) 변화의 양상
            • (1) 두식(모발과 관모)
            • (2) 의복
            • (3) 기타
        • 3. 식생활
          • 1) 식생활 환경의 변화
            • (1) 소작농과 화전민 급증
            • (2) 토막민·실업자·걸인의 급증
            • (3) 일본의 곡물 수탈
            • (4) 식품 제조업의 발달
            • (5) 서구식 영양 이론의 도입
            • (6) 일본과 외국 음식의 전파
            • (7) 식료품 배급제도
            • (8) 전통 식생활의 전승과 신여성 교육
          • 2) 식품의 종류와 유통
            • (1) 식사 횟수와 섭취량
            • (2) 주식의 곡물 식품
            • (3) 곡류 식품의 생산과 유통
            • (4) 육류 찬물과 축산 식품
            • (5) 어패류 찬물과 수산 식품
            • (6) 소채 찬물과 소채 식품
            • (7) 과실류
            • (8) 조미식품
            • (9) 기호식품
        • 4. 주생활
          • 1) 주생활 개선을 통한 주택개량운동
          • 2) 근대건축가들의 등장과 문화주택
          • 3) 도시형 한옥의 등장
          • 4) 조선주택영단의 설립과 영단주택의 건설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5. 개신교

1) 식민지시기 개신교의 상황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혹독한 무단통치하에서 개신교회는 민족적 또는 사회적 문제보다는 종교적 방면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은 망국의 비애를 신앙의 열성으로 잊어보려 했으며, 특히 일제와의 갈등을 두려워 한 서양선교사들은 한국 개신교인들을 비정치적인 경향으로 지도·감독했다.

 그러나 1919년 3·1운동은 이같은 상황을 반전시켰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3·1운동의 계획과 확산 단계에서 개신교인들의 역할은 매우 두드러졌다. 그 동안 침묵했던 교인들은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벌였고, 독립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되었다.

 ‘경술국치’ 이후 최대의 민족적 거사라 할 수 있는 3·1운동과 개신교의 관계를 알아보는 것은,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을 위한 개신교인들의 활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다음<표 1>은 3·1운동 당시 入監者와 被檢者의 종교별 상황을 정리한 것이다. 이 표를 보면, 3·1운동 당시 종교인들의 역할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입감자의 39.43%(3,572/9,059), 피검자의 32.3%(6,314/19,525)가 종교인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당시의 종교 인구에 비추어 볼 때 결코 작은 비율이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천도교와 개신교의 비율이 높았으며, 불교와 천주교의 경우 그 교세에 비해 비율이 낮았다. 천도교는 입감자의 15.1%, 피검자의 11.8%를, 개신교는 입감자의 22%, 피검자의 17.6%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두 종교인들의 ‘민족의식’이 상대적으로 높았음을 보여준다.

종교

(입감자/피검자)

(입감자/피감자)
합계

(입감자/피감자)
비율

(입감자/피감자)
천도교

시천교
1,361/2,264

5/14
2/15

-
1,363/2,283

5/14
15.1%/11.8%

-
불 교 105/220 1/- 106/220 1.2%/1.1%
유 교 55/346 - 55/346 0.6%/3.6%


장로교 1,322/2,254 119/232 1,441/2,486 22%/17.6%
감리교 401/518 37/42 438/560
조합교회 7/7 - 7/7
기 타 81/286 16/34 97/320
천주교 45/54 8/1 53/55 0.5%/-
기 타 7/21 - 7/21 -/0.1%
무종교 5,455/9,255 31/49 5,486/9,304 60.6%/47.7%
미 상 1/3,809 -/98 1/3,907 -/20.2%
합 계 8,845/19,054 214/471 9,059/19,525 100%/100%

<표 1>3·1운동 당시 입감자와 피검자의 종교별 현황

≪조선총독부 통계보고≫(1919년 5월);≪일본헌병대 조사보고≫(1919년말);김승태,<종교인의 3·1운동 참여와 기독교의 역할>(≪韓國基督敎史硏究≫25, 한국기독교사연구회, 1989), 21∼22쪽.

 더불어 주목할 점은 여성 입감자와 피검자의 비율이다. 입감자와 피검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2.4%(214/9,059)와 2.4%(471/19,525)였다. 그러나 개신교의 경우 여성 입감자와 피검자는 각각 8.7%(172/1,983)와 9.1%(308/3,373)였는데, 이는 다른 종교의 여성 입감자와 피검자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에 비해 상당한 비율이다. 이는 여성들의 권리 신장과 사회 참여가 가장 두드러졌던 종교가 개신교였음을 반증한다.

 이처럼 3·1운동 당시만 해도 민족문제에 대한 개신교인들의 관심은 매우 높은 편이었다. 이들은 3·1운동에 대거 참여하여 일제로부터 탄압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교세가 위축된 것은 아니었다. 1920년대에 들어와서도 개신교는 꾸준히 성장해갔다. 다음<표 2>의 통계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교 파 \ 연 도 1916 1917 1918 1919 1920 1921 1922 1923 1924 1925
천주교회 교회 206 215 222 224 233 237 243 249 243 250
교인 83,893 80,613 82,843 81,504 88,573 91,941 91,320 85,508 88,987 89,798
조선예수교장로회 교회 1,885 1,908 1,896 1,899 1,916 2,031 2,095 2,095 2,197 2,165
교인 124,170 114,106 156,628 141,044 155,400 181,298 194,037 186,785 186,785 182,650
미북감리회 교회 553 578 565 564 563 562 548 530 534 543
교인 40,361 37,609 40,722 34,414 36,673 39,972 40,659 42,301 32,682 35,337
미남감리회 교회 258 259 252 224 259 317 348 407 423 493
교인 8,606 16,074 10,722 9,442 12,578 20,058 23,453 21,486 13,075 22,097
조선성공회 교회 70 72 72 71 63 62 61 62 67 70
교인 5,465 4,621 4,622 4,264 3,900 3,863 4,127 4,492 4,683 4,805
러시아정교회 교회 6 6 6 6 7 6 6 6 6 6
교인 553 553 549 558 562 550 559 556 585 595
안식교회 교회 36 49 44 44 47 57 54 63 64 64
교인 832 868 859 839 1,039 1,044 953 1,273 1,398 1,542
동양선교회 교회 10 11 13 16 18 25 27 40 38 57
교인 501 1,182 570 850 1,500 2,000 1,833 4,371 2,710 5,413
구세군 교회 81 84 103 97 97 100 100 155 158 163
교인 3,916 3,825 4,176 4,725 4,878 5,718 5,718 7,739 7,808 8,509
조선기독교회 교회                   19
교인                   1,147
성결교회 교회         1 2 2 2 3 3
교인                    
조선회중교회 교회           35 27 22 22 22
교인           2,955 3,608 3,369 3,369 3,369
일본기독교회 교회 9 10 10 10 10 10 10 16 15 16
교인 8 18 144 113            
일본감리교회 교회 11 11 11 11 11 11 11 15 16 17
교인                    
일본조합교회 교회 38 48 58 59 54 7 5 8 8 8
교인 11,280 11,228 13,541 14,387 14,254          
기타 교회           16 17 15 20  
교인                    
합계 교회 3,163 3,251 3,252 3,225 3,279 3,478 3,554 3,685 3,814 3,896
교인                    

<표 2>기독교회의 교세(교회·교인) 변화 (1916∼1925)

≪朝鮮に於ける宗敎及享祀一覽≫(朝鮮總督府, 1928), 44∼47쪽.

 장로교의 경우 1916년 1,885개의 교회와 124,170명의 교인이 1925년에는 2,165개의 교회와 182,650명의 교인으로 성장하여 각각 14.9%와 47.1%의 증가율을 보였으며, 남·북감리교의 경우는 1916년 811개 교회와 48,969명의 교인이 1925년에는 1,036개의 교회와 57,434명의 교인으로 성장하여 각각 27.7%와 17.3%의 성장율을 보였다.

 이같은 발전의 이유는 복합적인 것이겠으나, 3·1운동을 계기로 하여 서양의 종교로만 인식되던 개신교가 민족문제에 관심을 갖는 종교로도 부각되었음을 다음 기록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제1기에 있어서는 기독교가 방방곡곡에서 하는 문화운동의 혜택을 입거나 혹은 찬동하며 또 기독교를 매개로 하여 수입된 구미의 물질문명에 심취하여 예수교를 믿게 되는 사람이 많았다. 3·1운동 이후의 제2기에 있어서는 기독교회가 민족전선에 연출한 역할로 인하여 교회가 비약적 발전을 한 것이 사실이다(趙龍基,<福音的信仰要義>,≪基督申報≫, 1937년 2월 3일).

 3·1운동의 규모와 열기에 놀란 일제는 식민정책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가 경질되고 사이토 마코토(齋藤實)가 새로운 총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이른바 ‘문화정치’를 표방했는데, 선교사들과의 우호적 관계를 맺기 위해 많은 정성을 들였다. 선교사들은 1919년 9월 일본정부의 처사에 대한 의견과 제안을 요청하며<연합종교회건백서>를 제출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은 것이었다.

① 교회 및 선교사에 대한 단속을 완화할 것.

② 기독교 및 기독교에 대한 관리의 차별을 철폐할 것.

③ 기독교계 학교에서의 성서교육과 종교의식을 허용할 것.

④ 기독교 문서에 대한 검열을 철폐할 것.

⑤ 교회의 출판물 발행의 제한을 완화할 것.

⑥ 교회 및 선교기관을 재단으로 인정할 것.

⑦ 기독교인으로서 구금된 정치인에 대한 학대를 중지할 것.

⑧ 형무소의 교화사업에 교회가 참여할 수 있도록 법을 제정할 것.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한국기독교의 역사≫Ⅱ, 기독교문사, 1990, 44쪽).

 즉 3·1운동은 민족문제 때문에 일어난 것인데도, 선교사들은 종교적 개선 요구만 하고 있었던 셈이다. 어쨌든 총독부에서는 선교사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종교과를 신설하고<포교규칙>을 개정하여 교회의 설립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했으며, “교회에서 안녕 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사용의 정지나 금지를 명령할 수 있다”는 규정을 삽입했다. 또한<사립학교규칙>을 개정하여 기독교계 학교에서 성서교육을 인정하고 종교단체가 소유한 부동산을 내국인법으로 허가했다. 그 결과 선교사들 중에는 사이토를 예찬하는 이들도 나오기에 이르렀으나, “보통 문화정치라고 일컫지만 반도통치의 기본방침에 있어서는 조금도 달라진 점은 없다. …끝내 國憲에 반항하고 병합의 정신에 어긋나는 不逞輩에 대해서는 추호의 가차없이 단속하는 방침을 추진할 것이다”381)라는 저들의 말처럼 민족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교인들이 다시 거족적으로 민족운동을 일으키기도 어려웠다. 단속을 완화하여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약간 허용해 주는 대신 일제는 표면적인 항일활동에 대해서는 여전히 가차없는 탄압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교회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간접적이고 온건한 민족운동이었으며, 문화운동도 넓은 의미에서 이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겠다.

 민족문화를 수호하거나 발전시키기 위한 운동은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서양에서 이식된 개신교에 우리 민족의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며, 하나는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맞서 우리 민족의 문화를 수호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381)≪施政二十五年史≫(朝鮮總督府, 1935), 314∼315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