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Ⅳ. 종교5. 개신교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1. 일제의 교육정책
          • 1) 식민지 교육정책의 기본성격
          • 2) 제1차<조선교육령>과 식민지 교육제도
          • 3) 민족교육기관에 대한 탄압
        • 2. 민족교육의 정비
          • 1) 문화정치와 교육실태
          • 2) 민족운동의 전환과 실력양성론
          • 3) 제2차<조선교육령>과 민족교육
        • 3. 민족교육운동의 전개
          • 1) 사립학교 교육
          • 2) 민립대학설립운동
          • 3) 민중계몽 교육운동
            • (1) 민중교육기관 설립의 배경
            • (2) 민중교육기관의 성격
            • (3) 민중교육운동의 주체
        • 4. 민족교육의 수난
          • 1) 침략전쟁과 황국신민화정책
          • 2) 황민화교육과 민족교육의 수난
      • Ⅱ. 언론
        • 1. 일제의 언론정책
          • 1) 법적 규제
          • 2) 사전탄압과 사후탄압
        • 2. 무단통치기의 언론
          • 1) 총독부 기관지 독점기
          • 2) 도쿠토미의≪국민신문≫과≪매일신보≫
          • 3) 잡지의 발달
        • 3. 문화정치기의 언론
          • 1) 3·1운동 직후의 여러 독립신문
          • 2) 상해의≪독립신문≫
          • 3) 3대 민간신문의 창간
            • (1)≪조선일보≫
            • (2)≪동아일보≫
            • (3)≪시사신문≫
          • 4)≪시대일보≫와≪중외일보≫
            • (1)≪시대일보≫
            • (2)≪중외일보≫
          • 5) 일제의 언론탄압
            • (1) 행정처분
            • (2) 사법처분
        • 4. 1930년대의 언론
          • 1) 논조의 위축과 사세의 신장
          • 2) 잡지 발행 경쟁과 일본제품 광고
          • 3) 문자보급-농촌계몽운동
          • 4) 3대 민간지의 폐간
      • Ⅲ. 국학 연구
        • 1. 국어학
          • 1) 국어연구 단체의 조직과 국어연구
            • (1) 국어연구 단체
            • (2) 국어연구
          • 2) 국어운동의 전개
          • 3) 조선어학회사건
        • 2. 국문학
          • 1) 국학파의 연구
          • 2) 실증주의적 국문학 연구와 그 분화
        • 3. 국사학
          • 1) 민족주의사학
          • 2) 사회경제사학
          • 3) 실증사학
      • Ⅳ. 종교
        • 1. 일제의 종교정책
          • 1) 일제 종교정책의 기조
          • 2) 무단통치기의 종교 억압·통제정책
          • 3) 문화정치기의 종교 회유·분열정책
          • 4) 침략전쟁기의 종교 이용·탄압정책(1931∼1945)
        • 2. 천도교·대종교
          • 1) 천도교
            • (1) 천도교의 창시
            • (2) 교규의 정비와 교리의 정립
            • (3) 3·1운동의 주도와 임시정부 수립 활동
            • (4) 문화운동론의 수용과 문화운동의 전개
            • (5) 사회변혁론의 모색과 천도교의 분열
          • 2) 대종교
            • (1) 대종교의 중광과 그 배경
            • (2) 대종교의 확산과 조직의 정비
            • (3) 대종교의 독립운동
            • (4) 대종교의 수난
        • 3. 불교
          • 1) 식민지 불교의 성립
            • (1)<사찰령>체제
            • (2) 원종 및 임제종의 퇴진
            • (3) 30본산 연합제규와 불교의 중흥
          • 2) 3·1운동과 불교계의 각성
            • (1) 3·1운동 참여
            • (2) 독립운동에 동참
            • (3) 불교의 자주화와 통일기관
            • (4) 불교전통의 회복
          • 3) 불교자주화의 시련
            • (1) 불교운동의 기반 구축
            • (2) 승려대회와 종헌
          • 4) 조계종의 성립과 식민지체제에 좌절
            • (1) 총본산건설운동과 조계종
            • (2) 군국주의 체제에 좌절
        • 4. 유교
          • 1) 일제강점기의 유교문제
          • 2) 유림의 항일운동과 일제의 탄압
            • (1) 순절과 망명의 항거
            • (2) 유림의 독립청원활동
          • 3) 계몽운동과 유교개혁운동
            • (1) 계몽운동과 민족의식 고취
            • (2) 유교개혁운동의 양상
          • 4)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과 분열정책
            • (1)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
            • (2) 일제의 유림 분열정책
          • 5) 일제의 동화정책과 유교전통의 파괴
            • (1) 일제의 제도적 동화정책
            • (2) 일제의 문화적·풍속적 동화정책
          • 6) 일제하의 유교의 특성
        • 5. 개신교
          • 1) 식민지시기 개신교의 상황
          • 2) 개신교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
          • 3)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을 위한 활동
            • (1) 언론·출판
            • (2) 한글 연구와 보급
            • (3) 역사와 지리 연구
            • (4) 문학·음악·미술·건축
            • (5) 물산장려운동
        • 6. 천주교
          • 1) 교육활동
          • 2) 출판·언론활동
          • 3) 문학·건축·예술활동
      • Ⅴ. 과학과 예술
        • 1. 과학
          • 1) 국내 과학기술교육의 여건
          • 2) 민간 주도의 해외유학
          • 3) 과학기술자들의 활동
        • 2. 음악
          • 1) 제1기-무단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한국전통음악의 약체화
            • (3) 일본 음악교육의 강제화
            • (4) 민족음악의 전개
          • 2) 제2기-문화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일본음악교육의 강제화
            • (3) 민족음악의 전개
          • 3) 제3기-전시체제하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 통제와 친일파 육성
            • (2) 전시체제하 노래 및 음악교육
            • (3) 전문음악가들의 창작활동
            • (4) 민족음악의 전개
        • 3. 미술
          • 1) 전통 화단과 서양화의 이입
          • 2) 서화협회와 조선미술전람회
          • 3) 서양화의 정착과 새로운 모색
          • 4) 근대적 성격의 조각
          • 5) 전시체제하에서의 미술
        • 4. 체육·무용
          • 1) 일제하 근대체육의 성장과 시련
            • (1) 일제의 식민지 체육정책과 민족체육의 대응
            • (2) 3·1운동 이후 문화통치와 민족체육의 성장
            • (3) 전시파쇼체제와 민족체육의 저항
          • 2) 일제하 근대무용의 시련과 성장
            • (1) 일제하 전통무용의 계승과 시련
            • (2) 일제하 신무용의 출현과 성장
        • 5. 연극·영화
          • 1) 1910년대-전통극과 신파극
          • 2) 3·1운동이후∼1920년대-소인극운동
          • 3) 1930년대-대중극·신극과 영화의 발전
          • 4) 1940년대-연극·영화의 암흑기
      • Ⅵ. 민속과 의식주
        • 1. 민속
          • 1) 식민지시기 민속의 변화
          • 2) 생산관련 민속
          • 3) 가족과 친족
          • 4) 촌락과 향촌사회
          • 5) 신앙과 의례
          • 6) 세시풍속, 예능 및 설화
        • 2. 의생활
          • 1) 의생활 변화의 흐름과 양상
          • 2) 흐름의 대세
            • (1) 의복개량
            • (2) 백의금지와 색의권장
            • (3) 몸뻬출현
            • (4) 국민복
          • 3) 변화의 양상
            • (1) 두식(모발과 관모)
            • (2) 의복
            • (3) 기타
        • 3. 식생활
          • 1) 식생활 환경의 변화
            • (1) 소작농과 화전민 급증
            • (2) 토막민·실업자·걸인의 급증
            • (3) 일본의 곡물 수탈
            • (4) 식품 제조업의 발달
            • (5) 서구식 영양 이론의 도입
            • (6) 일본과 외국 음식의 전파
            • (7) 식료품 배급제도
            • (8) 전통 식생활의 전승과 신여성 교육
          • 2) 식품의 종류와 유통
            • (1) 식사 횟수와 섭취량
            • (2) 주식의 곡물 식품
            • (3) 곡류 식품의 생산과 유통
            • (4) 육류 찬물과 축산 식품
            • (5) 어패류 찬물과 수산 식품
            • (6) 소채 찬물과 소채 식품
            • (7) 과실류
            • (8) 조미식품
            • (9) 기호식품
        • 4. 주생활
          • 1) 주생활 개선을 통한 주택개량운동
          • 2) 근대건축가들의 등장과 문화주택
          • 3) 도시형 한옥의 등장
          • 4) 조선주택영단의 설립과 영단주택의 건설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개신교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

 식민지시기 개신교계의 새로운 경향은 ‘조선적 기독교’를 표방하며 나름대로의 ‘土着化’를 시도하려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조짐은 이미 대한제국기부터 나타나고 있었으며,382) 1920년대에 들어와서 더욱 두드러졌다. 이는 서양선교사들이 가르쳐 준 교리와 의례만을 그대로 따랐던 과거의 비주체적 모습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예컨대 蔡弼近은 다음과 같이 ‘조선인의 기독교화’와 더불어 ‘기독교의 조선화’를 강조했다

기독교는 하나이오 그 성경도 하나이오 그 신앙의 목표도 하나이지만은 그것을 소유는 생명 잇는 인격·생명 잇는 민족이 다른 것을 따라서 다른 방면이 잇슴니다. … 民族은 그 宗敎化를 고 宗敎는 그 民族化를 니다. … 그런데 朝鮮人은 얼마나 基督敎化엿스며 基督敎는 얼마나 朝鮮化를 엿슴닛가(蔡弼近,<새 基督敎>,≪基督申報≫, 1925년 12월 23일).

 또한 田榮澤도 다음과 같이 “예수의 도리로 새로운 민족성을 길러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는 우리의게 본래부터 잇던 문화 우에 새로운 그리스도교를 밧고 우리 민족셩이란 밧 우에 예수의 도리가 심어졌슴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교로 새로운 문화를 지어야 하겟고 예수의 도리로 새로운 민족셩을 길너야 하겟슴니다(田榮澤,<열매열닐 때는 왓다>,≪基督申報≫, 1927년 10월 26일).

 한편 趙龍基는 기독교인들이 “서양숭배로 인하야 과거 조선의 문화·윤리·도덕에 대한 멸시가 심한 것”이 기독교 발전에 장애가 되었다고 보기도 했다.383) 즉 이들은 조선적 기독교의 정립을 통한 새로운 문화 창출에 관심을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조선적 기독교’가 된다는 것은 배외사상이나 복고주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가 우리 민족 본위의 교회가 되고, 우리의 독특한 문화를 보존·소화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같은 경향은 敎權을 장악하고 있던 서양선교사들에 대한 한국 교인들의 반발이기도 했다. 즉 한국 개신교인 중에는 선교사나 기성 교단과 마찰을 빚으며 제도권에서 이탈하는 이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장로교 목사 崔重珍은 1909년 선교자금 사용, 선교기관 운영, 선교구역 조정 등의 문제를 놓고 선교사들과 갈등을 빚었으며, 이듬해 전북대회에 5개 요구조항을 제출했다. 그러자 선교사들은 ‘배은·배약·분쟁·불복’ 등의 용어를 써가며 그를 비난했고, 이에 최중진은 ‘대한예수교자유회 목사 최중진’의 이름으로 “…자유할 수밖에 없어서 자유하는 것을 불복이라 합니까? 불복이라는 말을 안들으려고 자유하는 것이지요”라는 내용을 담은 서한을 보낸 뒤 장로교를 탈퇴, 뜻을 같이하는 전북지역 10여 개 교회들과 함께 ‘자유교회’를 설립했다.

 이어 1918년 황해도에서는 장로교 목사였던 金庄鎬를 중심으로 ‘조선기독교회’가 조직되었다. 그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서구의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였는데, 1916년 황해노회는 그의 總戴 자격을 정지시켰고, 1918년에는 그의 휴직을 결의했다. 그러자 김장호는 자신이 맡고 있던 봉산 신원교회를 중심으로 ‘조선기독교회’를 창건했던 것이다. 그는 “교리해석상에 문명각국의 현행하는 眞正高尙한 神學說을 자유채용하고, 野昧 인종을 유도하는 眩惑迷疎하는 假言寓說을 일체 曉破覺悟하여 동양교회에 신선한 정신을 激醒新興케 할 것”이라 하여, 성경에 대한 미신적 해석을 반대하며 선교사들의 보수적 신학과 신앙을 비판했다.

 역시 장로교 목사로 남성정교회를 맡고 있던 李萬集은 대구에서 1923년 ‘자치교회’를 설립했다. 3·1운동에도 참여하여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그는 1921∼1922년 계성학교 학생들이 운영자인 선교사들의 교육정책에 반대하여 동맹휴학사건을 일으키자 학생들을 지지했다. 그러자 경북노회에서는 1923년 이만집을 停職시키고 이 교회 장로 4명, 집사 1명을 면직시켰다. 그러자 이만집 등은 “今我 대구교회는 저 권리를 주장하는 선교사의 정신지배를 받는 경북노회를 탈퇴하고 자치를 선언”하고 ‘자치교회’를 창립했다.

 1928년에도 장로교 목사 朴承明은 기성 교단에서 뛰쳐나와 ‘마산예수교회’를 창립했다. 일찍이 3·1운동에 참여하기도 했고 ‘국민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기도 했던 그는 1925년 마산 문창교회에 부임했다. 그러나 교회안의 소장·노장층의 갈등과 여자문제 등으로 말미암아 경남노회는 그의 사직을 권고했고, 그 처리 과정에서 선교사들의 고압적 자세가 문제가 되어 선교사 배척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결국 박승명은 1928년 “자유신앙에 방해되는 편협된 고정적 신경조례를 부인”하며 “예수교회의 연합통일에 장해되는 각 교파의 繁弊한 敎政條例와 교황·주교·감독·장로 등의 과두정치를 부인”하는 강령을 내걸며 따로 마산예수교회를 설립했다.

 이상은 모두 장로교에서 갈라진 교파였으나, 감리교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먼저 감리교 목사 李龍道는 신비주의적 부흥운동이 문제되어 1932∼1933년 교단으로부터 ‘이단’이라는 비난과 함께 휴직 처분을 받았다. 그러자 그는 평양에서 “羅馬舊敎라거나 更正新敎라거나 가릴 것 없고 宗門의 동서나 派別의 남북을 논할 것 없이 교회의 내용만 예수로써 정화되면 그만이다”라 주장하며 ‘예수교회’를 창립했다.

 역시 감리교 목사인 邊成玉은 1935년 만주에서 ‘조선기독교회’를 조직했다. 만주지역도 장로교·감리교 선교부 사이의 선교지역 분할협정에 따라 동만·남만·북만 등 지역에 따라 교파도 달랐다. 하지만 정치·경제적 이유로 이주한 경우가 대부분인 이 지역 한국인 신자들에게 이같은 교파 구분은 오히려 부담이 되었다. 장로교인이 감리교 선교구역에 정착하거나 그 반대인 경우도 허다했기 때문이다. 즉 초교파적인 조선기독교회의 창설은 선교사들이 만든 선교지역 분할정책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성결교의 경우에도 한국인 신자들과 선교사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 1936년 ‘하느님의 교회’가 창설되기에 이르렀다. 선교사들이 주관하던 東洋宣敎會는 1921년 ‘동양선교회 성결교회’로 개칭했으나 여전히 주도권은 선교사들에게 있었는데, 교세가 성장하면서 한국인 신자들은 1932년 자립을 선언하고 총회를 조직했다. 이후 동양선교회와 총회 사이에 종종 마찰이 빚어졌으며 1936년 자치운동에 적극적인 邊南星 목사가 총회장에 당선되었는데, 선교사들이 중심이 된 이사회가 이를 인정하지 않자 마침내 “하느님의 교회는 정치적 통제기관을 두지 않으며, 또한 성서 이외의 법규를 세우지 않고, 각 교회가 다만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통치에 직속하야 성서를 유일의 正則으로 함”이라 하며 목사 13명이 따로 ‘하느님의 교회’를 설립했다.

 처음부터 기성 교단이나 교회와 거리를 두고 시작된 조직들도 나타났다. 崔泰鎔은 1920년 일본의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죠(內村鑑三)를 만난 뒤 그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1924년 귀국하여≪天來之聲≫을 창간, 기성 교회를 비판하기 시작하며 ‘非敎會主義’로 자처했다. 그는 1935년 “교회는 조선인 자신의 교회이러라”라는 구호를 내걸며 ‘기독교조선복음교회’를 창설했으며, “조선교회가 외국인의 자선 위에 서 있고 또한 현재에도 그 자선에 의뢰하는 마음이 있어 조선교회의 근저에 외국인의 자선이 깔려 있다는 일은, 이는 조선인의 신앙의 불철저를 의미하는 것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金敎臣은 일본에서 우치무라를 만나 깊은 영향을 받고 귀국, 우치무라 문하생인 咸錫憲·宋斗用·鄭相勳 등과≪聖書朝鮮≫을 창간했다.≪성서조선≫은 성서와 조선, 즉 기독교와 민족을 융화시키려 한 김교신의 생각을 보여준다. 그는 “≪성서조선≫아 너는 소위 기독신자보다도 조선혼을 소지한 조선사람에게 가라”고 외치며, 기성 교단과 거리를 둔 無敎會主義를 주창했다. 그리고 “조선에 성서를 주어 그 骨筋을 세우며 그 혈액을 만들고자”, “넓게 깊게 조선을 연구하여 영원한 새로운 조선을 성서 위에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384)

 심지어 신학 분야에서도 우리 민족의 주체성과 독창성을 강조하는 주장이 나왔다.

飜譯神學과 雇傭神學에서는 조선의 靈을 움직이는 활력이 나오기 어렵다. 정통이라 할지라도 조선인 신앙정신에서 쏟아져 나오는 조선인 독창의 신학, 조선인의 손으로 발행하는 조선의 독립의 신학이래야 조선의 靈을 움직일 수 있다(金麟瑞,<아빙돈 註釋問題>,≪信仰生活≫, 1935년 11월호, 10쪽).

 이처럼, 이제 ‘조선적 기독교’의 수립은 한국 개신교계의 지상과제가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높아지게 되었던 것이다.

382)이덕주,≪한국 토착교회 형성사 연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0).
383)趙龍基,<福音的信仰要義>(≪基督申報≫, 1937년 2월 3일).
384)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한국기독교의 역사≫Ⅱ(기독교문사, 1990), 202∼208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