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Ⅴ. 과학과 예술2. 음악2) 제2기-문화통치기의 음악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1. 일제의 교육정책
          • 1) 식민지 교육정책의 기본성격
          • 2) 제1차<조선교육령>과 식민지 교육제도
          • 3) 민족교육기관에 대한 탄압
        • 2. 민족교육의 정비
          • 1) 문화정치와 교육실태
          • 2) 민족운동의 전환과 실력양성론
          • 3) 제2차<조선교육령>과 민족교육
        • 3. 민족교육운동의 전개
          • 1) 사립학교 교육
          • 2) 민립대학설립운동
          • 3) 민중계몽 교육운동
            • (1) 민중교육기관 설립의 배경
            • (2) 민중교육기관의 성격
            • (3) 민중교육운동의 주체
        • 4. 민족교육의 수난
          • 1) 침략전쟁과 황국신민화정책
          • 2) 황민화교육과 민족교육의 수난
      • Ⅱ. 언론
        • 1. 일제의 언론정책
          • 1) 법적 규제
          • 2) 사전탄압과 사후탄압
        • 2. 무단통치기의 언론
          • 1) 총독부 기관지 독점기
          • 2) 도쿠토미의≪국민신문≫과≪매일신보≫
          • 3) 잡지의 발달
        • 3. 문화정치기의 언론
          • 1) 3·1운동 직후의 여러 독립신문
          • 2) 상해의≪독립신문≫
          • 3) 3대 민간신문의 창간
            • (1)≪조선일보≫
            • (2)≪동아일보≫
            • (3)≪시사신문≫
          • 4)≪시대일보≫와≪중외일보≫
            • (1)≪시대일보≫
            • (2)≪중외일보≫
          • 5) 일제의 언론탄압
            • (1) 행정처분
            • (2) 사법처분
        • 4. 1930년대의 언론
          • 1) 논조의 위축과 사세의 신장
          • 2) 잡지 발행 경쟁과 일본제품 광고
          • 3) 문자보급-농촌계몽운동
          • 4) 3대 민간지의 폐간
      • Ⅲ. 국학 연구
        • 1. 국어학
          • 1) 국어연구 단체의 조직과 국어연구
            • (1) 국어연구 단체
            • (2) 국어연구
          • 2) 국어운동의 전개
          • 3) 조선어학회사건
        • 2. 국문학
          • 1) 국학파의 연구
          • 2) 실증주의적 국문학 연구와 그 분화
        • 3. 국사학
          • 1) 민족주의사학
          • 2) 사회경제사학
          • 3) 실증사학
      • Ⅳ. 종교
        • 1. 일제의 종교정책
          • 1) 일제 종교정책의 기조
          • 2) 무단통치기의 종교 억압·통제정책
          • 3) 문화정치기의 종교 회유·분열정책
          • 4) 침략전쟁기의 종교 이용·탄압정책(1931∼1945)
        • 2. 천도교·대종교
          • 1) 천도교
            • (1) 천도교의 창시
            • (2) 교규의 정비와 교리의 정립
            • (3) 3·1운동의 주도와 임시정부 수립 활동
            • (4) 문화운동론의 수용과 문화운동의 전개
            • (5) 사회변혁론의 모색과 천도교의 분열
          • 2) 대종교
            • (1) 대종교의 중광과 그 배경
            • (2) 대종교의 확산과 조직의 정비
            • (3) 대종교의 독립운동
            • (4) 대종교의 수난
        • 3. 불교
          • 1) 식민지 불교의 성립
            • (1)<사찰령>체제
            • (2) 원종 및 임제종의 퇴진
            • (3) 30본산 연합제규와 불교의 중흥
          • 2) 3·1운동과 불교계의 각성
            • (1) 3·1운동 참여
            • (2) 독립운동에 동참
            • (3) 불교의 자주화와 통일기관
            • (4) 불교전통의 회복
          • 3) 불교자주화의 시련
            • (1) 불교운동의 기반 구축
            • (2) 승려대회와 종헌
          • 4) 조계종의 성립과 식민지체제에 좌절
            • (1) 총본산건설운동과 조계종
            • (2) 군국주의 체제에 좌절
        • 4. 유교
          • 1) 일제강점기의 유교문제
          • 2) 유림의 항일운동과 일제의 탄압
            • (1) 순절과 망명의 항거
            • (2) 유림의 독립청원활동
          • 3) 계몽운동과 유교개혁운동
            • (1) 계몽운동과 민족의식 고취
            • (2) 유교개혁운동의 양상
          • 4)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과 분열정책
            • (1)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
            • (2) 일제의 유림 분열정책
          • 5) 일제의 동화정책과 유교전통의 파괴
            • (1) 일제의 제도적 동화정책
            • (2) 일제의 문화적·풍속적 동화정책
          • 6) 일제하의 유교의 특성
        • 5. 개신교
          • 1) 식민지시기 개신교의 상황
          • 2) 개신교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
          • 3)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을 위한 활동
            • (1) 언론·출판
            • (2) 한글 연구와 보급
            • (3) 역사와 지리 연구
            • (4) 문학·음악·미술·건축
            • (5) 물산장려운동
        • 6. 천주교
          • 1) 교육활동
          • 2) 출판·언론활동
          • 3) 문학·건축·예술활동
      • Ⅴ. 과학과 예술
        • 1. 과학
          • 1) 국내 과학기술교육의 여건
          • 2) 민간 주도의 해외유학
          • 3) 과학기술자들의 활동
        • 2. 음악
          • 1) 제1기-무단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한국전통음악의 약체화
            • (3) 일본 음악교육의 강제화
            • (4) 민족음악의 전개
          • 2) 제2기-문화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일본음악교육의 강제화
            • (3) 민족음악의 전개
          • 3) 제3기-전시체제하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 통제와 친일파 육성
            • (2) 전시체제하 노래 및 음악교육
            • (3) 전문음악가들의 창작활동
            • (4) 민족음악의 전개
        • 3. 미술
          • 1) 전통 화단과 서양화의 이입
          • 2) 서화협회와 조선미술전람회
          • 3) 서양화의 정착과 새로운 모색
          • 4) 근대적 성격의 조각
          • 5) 전시체제하에서의 미술
        • 4. 체육·무용
          • 1) 일제하 근대체육의 성장과 시련
            • (1) 일제의 식민지 체육정책과 민족체육의 대응
            • (2) 3·1운동 이후 문화통치와 민족체육의 성장
            • (3) 전시파쇼체제와 민족체육의 저항
          • 2) 일제하 근대무용의 시련과 성장
            • (1) 일제하 전통무용의 계승과 시련
            • (2) 일제하 신무용의 출현과 성장
        • 5. 연극·영화
          • 1) 1910년대-전통극과 신파극
          • 2) 3·1운동이후∼1920년대-소인극운동
          • 3) 1930년대-대중극·신극과 영화의 발전
          • 4) 1940년대-연극·영화의 암흑기
      • Ⅵ. 민속과 의식주
        • 1. 민속
          • 1) 식민지시기 민속의 변화
          • 2) 생산관련 민속
          • 3) 가족과 친족
          • 4) 촌락과 향촌사회
          • 5) 신앙과 의례
          • 6) 세시풍속, 예능 및 설화
        • 2. 의생활
          • 1) 의생활 변화의 흐름과 양상
          • 2) 흐름의 대세
            • (1) 의복개량
            • (2) 백의금지와 색의권장
            • (3) 몸뻬출현
            • (4) 국민복
          • 3) 변화의 양상
            • (1) 두식(모발과 관모)
            • (2) 의복
            • (3) 기타
        • 3. 식생활
          • 1) 식생활 환경의 변화
            • (1) 소작농과 화전민 급증
            • (2) 토막민·실업자·걸인의 급증
            • (3) 일본의 곡물 수탈
            • (4) 식품 제조업의 발달
            • (5) 서구식 영양 이론의 도입
            • (6) 일본과 외국 음식의 전파
            • (7) 식료품 배급제도
            • (8) 전통 식생활의 전승과 신여성 교육
          • 2) 식품의 종류와 유통
            • (1) 식사 횟수와 섭취량
            • (2) 주식의 곡물 식품
            • (3) 곡류 식품의 생산과 유통
            • (4) 육류 찬물과 축산 식품
            • (5) 어패류 찬물과 수산 식품
            • (6) 소채 찬물과 소채 식품
            • (7) 과실류
            • (8) 조미식품
            • (9) 기호식품
        • 4. 주생활
          • 1) 주생활 개선을 통한 주택개량운동
          • 2) 근대건축가들의 등장과 문화주택
          • 3) 도시형 한옥의 등장
          • 4) 조선주택영단의 설립과 영단주택의 건설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제2기-문화통치기의 음악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3·1운동 이후 국내의 독립운동계에서는 노동운동·농민운동·학생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국외에서는 독립군의 무장투쟁, 상해임시정부의 투쟁 그리고 미국에서의 독립청원운동 등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 시기의 노래들이야말로 애국가이자 항일가이었으며 독립운동가였다. 더불어 약체화되어가는 민족 전통음악의 ‘부활운동’이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3·1운동 이후 일제는 소위 문화정치를 펴면서 정치선전을 강화하였다. 1920년 4월 총독부는 관방에 활동사진반을 두어 전국 각지로 순회영사회를 실시하여, 한국 민족춤이나 이왕직 아악부의 연주광경을 보여주어 한국인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갖게 하는 정치선전을 하였다.501) 또 1921년 4월1일부터 14일까지 일본 궁내성 악부 부속의 아악연습소 강사이었던 타나베 히사오(田邊尙雄)는 이왕직아악대·단성사·평양기성권번·경성 명월관을 차례로 방문하고는 조선아악의 존치와 대우개선을 조선총독부에 건의하여 이를 관철하였고, 이왕직 아악과 궁중 정재를 필름에 담아 전국순회영사회에서 소개하였는데 이것도 총독부가 한국음악을 보호하고 있다는 정치선전이었다.502) 이 모든 것은 일선융화를 앞세운 선전책이었으며, 실제로 타나베의 모든 활동은 바로 ‘일선융화’를 위한 활동이었다.503)

 일제가 문화시설을 확충하여 일선융화를 위한 정치선전으로 이용한 곳이 바로 1920년 7월에 준공한 경성상업회의소와 1927년 관영방송국인 경성방송국(JODK) 개국이었다. 경성상업회의소의 2층에 위치한 ‘경성공회당’은 종로의 중앙기독청년회관(YMCA)과 함께 음악회 개최장소로서 유명해졌다. 경성방송국 역시 정치선전 강화책의 하나로 세워진 방송국이었다. 경성방송국은 명창대회를 열거나, 명창들을 불러 방송하므로써 “조선사람들이 대단히 기뻐하기를” 기대했다. 실제로 1927년 8월 12일부터 5일간 李東伯·申錦紅·姜笑春·李花中仙·金秋月 등 5인을 하루 한사람씩 불러 방송하였으며, 신문들은 이를 “한국 성악을 대표한 이들의 소리가 전파에 싸이여 천하에 퍼지게 되는 것을 全鮮의 조선사람들은 대단히 기뻐한다더라”고 썼다.504)

 이외에 경성일보사 내 來靑閣도 새로운 공연장으로 부각되었다.

 1920년대 종로 중앙기독청년회관·경성공회당·래청각 등에서 활동한 주요 단체로는 경성악대, 연희전문학교 음악부, 여화여전 합창부, 경성의전음악부, 숭실대학 관현악대와 찬양대, 경성제국대학 관현악단, 硏樂會, 경성하모니카구락부, 배재고등보통학교 음악부, 조선가요협회와 그밖에 동경음악학교 동창회 등이 있었다. 특히, 연희전문은 1929년 현제명이 취임하면서 관현악부·합창·독창·바이올린독주·4중창단 연주가 많아졌다.

 이 시기에 활동한 피아노연주가로는 김영환·韓琦柱·朴慶浩와 이화여대 출신의 金合羅·尹聖德·金愛利施·金元福·高鳳京·스투테니 등이 있었고, 바이올린연주가로 洪蘭波 외에 桂貞植·洪載裕·安柄昭·金載勳 등과 와세다 출신의 蔡東鮮이 있었고, 첼로연주가 安益泰가 후반기에 부각되고 있었다. 소프라노는 야나기 카네코(柳兼子)·尹心悳·宋聖心 등이 있었고, 테너로는 安基永·權泰浩·玄濟明, 바리톤의 尹基誠과 金文輔 등과 崔虎永·金恩實·金活蘭·蔡奎燁·朴泰元이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중진 음악가들로는 백우용·정사인·김인식·이상준·金亨俊 등이 있었다. 선교회나 의사 출신으로 룻츠(Mrs Lutz, 소프라노)부인·솔토부인·붓츠(Boots)부인(세브란스병원 치과의사, 바이올린과 피아니스트)·스미스(Smith) 등이 활동하였다. 이 중에서 평양 출신 음악가들은 현제명·박경호·朴元貞·金世炯·金東振·朴泰俊·車在鎰·권태호 등이었다.

 이 밖에 유명 외국인들의 내한공연도 있었는데, 유명한 바이올린의 연주가들인 F. 클라이슬러(1923. 5. 23, 경성공회당)·하이페츠(1923. 11. 5, 경성공회당)·짐발리스트(E. Zimbalist, 1924. 11. 25, 경성공회당)를 비롯하여 러시아 슬바반 스카야 합창공연(1927. 9. 23, 조선극장)과 일본의 소프라노 세키야 토시코(關屋敏子, 1927. 5. 29, 경성공회당)와 일본 해군군악대연주(1927. 4. 19 조선총독부청 앞 광장) 등도 있었다.

 전통음악분야는 이왕직아악대, 조선정악전습소, 조선권번·한성권번·달성(대구)권번·광주권번·공주예기상조회·평양기성권번·춘성권번(원산) 등 전국 각지의 권번, 광무대, 이화여전 조선음악부, 한양구락부, 공주음악협회, 인천의 朝鮮古正樂會, 朝鮮樂硏究會, 朝鮮音樂硏究協會, 朝鮮音樂協會505), 청주음악구락부, 朝鮮音律協會 등과 판소리 명창 李東伯·宋萬甲·金昌煥·金昌龍·李素香·朴綠珠·金楚香·曺學珍·金錄珠·李中仙·申錦紅·姜笑春·李花中仙·金秋月·劉公烈·姜南中을 비롯하여 고수와 전통춤의 韓成俊, 가야금병창 沈相健·吳太石 등이 조선극장·종로중앙기독청년회관, 천도교백년기념관 등에서 활동하였다.

 비평가로 활동한 음악인들로는 홍난파·安廓·박경호·김영환·申孤松·엄흥섭·양창준·金泰午·洪鍾仁 등이 있었다.

 일제는 1910년 이전에 한국학생들의 일본유학을 수용한 데 이어, 20년대부터는 관비유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일본에 유학시킴으로써 친일지식인과 예술인들을 육성하고 이용하였다. 이 중에서 음악가들은 소프라노 尹心悳·韓琦柱, 바리톤 金文輔·朴桓秉 등이 일본의 관립 동경음악학교 사범과에 유학하였으며, 이들은 이후 탈민족적 성향의 음악활동을 전개한다.506)

 한편, 재경 일본인들이 중심이 되어 1920년 2월 11일에 京城樂友會가 조직되었다. 일본인 이이다 고오자부로오(飯田興三郞) 등이 발기인들이 되어 “음악연구와 보급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507) 그리고 1929년 2월 22일에 창립한 조선가요협회는 일제가 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을 끌어들여 민족정서의 개량책으로 조직한 단체였다. 김영환·김형준·정순철·안기영 등이 참가하여 활동하였다.508) 당시 신문기사에 한국전통음악인<수심가>·<아리랑타령>·<춘향전>등이 悖歌이고 희망이 없는 淫蕩哀願의 소리(聲)이니 이러한 나쁜 가요를 척결하고, 조선가요협회의 문화운동이야말로 “조선의 신광명이요 신희망”이라고 주장한 것을 보아도 일제의 양악 진영과 전통음악 진영간의 분할정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는 한국 노래의 일본식으로의 개량을 통해 일선융화·내선일체의 신민화를 꾀하려 한 것이었다.

 일제가 아악보존이나 민악의 개량책에 의하여 한국음악을 약체화시키고 있었음에도, 새로운 문화 추구의 열망과 일제의 양악육성책에 고무된 양악계는 1930년 2월 11일 드디어 본격적인 전문가 조직체를 창립하였다. 바로 朝鮮音樂家協會의 창립이었다. 초대이사장에 현제명, 이사에 홍난파·김영환·채동선·안기영 등이었고, 창립발기인으로 현제명·홍난파·김영환·채동선·안기영·최호영·독고선·홍재유·윤성덕·김인식 등이 참여하였다.509)

 1930년 카프계열의 신고송과 민족계열의 홍난파간의 ‘음악의 계급의식’을 둘러싼 대논쟁으로 음악계는 분열되기 시작하였다.510) 일제강점하의 식민지라는 상황에서 전개된 이 논쟁은 그 내용의 평가를 떠나서, 음악계 여론분열을 노린 일제의 분열정책의 결과였다. 이후 민족개량운동에 앞장선 홍난파를 경성방송국 경성방송국 산하의 경성방송관현악단 지휘자로,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으로, 조선음악협회 평의원으로 선임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511)

501)김규환,<식민지하 조선에 있어서의 언론통제의 연구>를 인용한 강동진,≪일제의 한국침략정책사≫(한길사, 1980), 40쪽에서 재인용.
502)田邊尙雄,<朝鮮音樂日記>(≪音樂と蓄音機≫5, 東京, 蓄音機世界社, 1921), 61∼86쪽.
503)田邊尙雄, 위의 책, 1∼5쪽.
504)≪동아일보≫, 1927년 8월 12일.
505)조선음악연구협회와 조선음악협회는 조직 구성원에서 다르다. 전자는 한국음악을 부활하자는 목적으로 명창분야의 성악과 기악으로서 가야금·양금·단소·거문고·해금·퉁소·장고 등의 전통음악인들이었지만, 후자는 서양음악과 한국음악에 취미를 가진 인사로 한국음악을 부활시키겠다는 목적으로 창립된 단체라서 그 성격이 다르다.≪조선일보≫, 1927년 11월 9·11일, 1928년 2월 13·19·20일.
506)노동은,<삶과 죽음의 월계수-윤심덕>(앞의 책, 1996), 361∼371쪽.
507)경성악우회 회장에 니와 세이자부로오(丹羽淸次郞), 간사에 張德昌 외 대부분은 일본인이었으며, 강사로 金永煥과 시미즈 칸조오(淸水幹三) 등이 있었다. 또, 정회원은 모두 23명으로 장덕창·柳濤熙·崔虎永 등 세명이었고 나머지 모두는 일본인이었다. 강사 김영환은 경성악우회의 중심인물이었다. 李宥善,≪韓國洋樂百年史≫(중앙대학교출판부, 1976), 164쪽.
508)발기동인으로 이광수·주요한·김정식(소월)·변영노·이은상·안석주·김억·양주동·박팔양·김동환·김영환·안기영·김형준·정순철·윤극영 등이 었다. 작곡부는 김영환·김형준·정순철, 선전부는 안기영·안석주·김동환이었다. 한국의 전통음악분야 인사가 없는 것도 이 단체를 통한 일제의 통치선전강화이었다.
509)李宥善, 앞의 책, 176쪽. 조선음악가협회는 1926년에 붓츠부인이 지휘자이고 박경호 등 15∼16인의 단원으로 구성된 中央樂友會과는 규모나 수준에서 달랐다. 조선음악가협회는 30년대 음악계를 주도하고, 40년대초 일제친일단체인 조선음악협회와 같이 많은 영향을 미친 조직체였다.
510)사회적인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양찬준·엄흥섭·신고송 등이 1930년 8월에≪음악과 시≫제1호 창간호를 내면서 프로음악운동을 본격화 시킨다. 여기에 신고송의<음악과 대중>에 대한 내용으로 홍난파가≪동아일보≫, 1930년 1월 29·30·31일·2월 1일 등 4회에 걸쳐<음악과 계급의식>이란 논제로 신고송을 비판하자, 신고송은 같은 신문 3월 12·13일로<음악의 계급의식에 대하여-홍난파씨의 논을 반박함>으로 반비판을 제기하자, 홍난파는 3월 17∼24일까지 8회에 걸쳐 같은 신문에<음악의 계급의식에 대하여-신고송씨의 반박에 답함>이란 논제로 재비판이 지속되었다. 노동은,<30년대, 카프음악운동>(앞의 책, 1989), 171∼176쪽.
511)홍난파의 친일행적에 관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할 것.

노동은,<우리역사쓰기, 참인가, 거짓인가?>(≪노동은의 두번째 음악상자≫, 한국학술정보, 2001), 130∼150쪽.

―――,<홍난파-민족음악개량운동에서 친일음악운동으로>(≪친일파 99인≫3, 도서출판 돌베개, 1993), 109∼116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