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의 개·수축
1920년대 조선 총독부는 식민지 조선의 주요 항구를 개·수축하였다. 이전부터 수축을 시작하여 이 시기에 준공된 항구가 진남포, 인천, 원산, 성진 등이었고, 또한 군산, 목포, 청진, 웅기, 다사도 등 5개 항구가 수축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항만 시설의 확충은 무역량의 증대에 기인한 바 크다. 제1차 세계 대전의 호경기로 일본의 무역량이 급증함에 따라, 조선의 수·이출량도 1919년에 총액 5억 5백만 원에 달할 만큼 급증했던 것이다. 그러나 1927년 기준 수·이출 무역의 90%, 수·이입 무역의 70% 이상이 조선-일본 간에 이루어진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의 무역량 증대는 대일 무역 의존도 상승의 다른 표현이었다. 또한 일본으로의 주요 이출품이 쌀이었기 때문에 항구에서는 쌀 가마니가 산적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에 주요 미곡 이출 항은 ’쌀의 군산‘, ’쌀의 인천‘ 등으로도 불렸다. 즉 조선의 항만 시설 개·수축은 무역량의 증대를 뒷받침해 주었지만, 일본에 대한 경제적 예속을 심화시키고 미곡의 이출을 수월하게 하는 것이었다.
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