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내의 일본인
1876년의 조선 개항 당시 54명에 불과했던 일본인이 식민 통치 말기에는 75만 명을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한반도 인구의 절대 다수는 한국인이었지만, 일본인들은 군인·경찰 ·공무원 등의 관리, 또는 상인이나 자유업자 등으로서 한반도의 주요 이권을 점유해 나갔다. 이들은 식민 활동을 정당화하는 기념 사업을 벌이거나 조선에서 일본의 고향을 떠올리며 서로 간의 결속을 다졌다. 자각 여부와는 무관하게 이들은 '풀뿌리 식민자'로서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사진 설명
- 이와테 현민회(岩手県民会, 경성 총독 관저)
- 경남 밀양면에 도천(都泉) 수리 조합을 설치(1920. 3. 19)한, 밀양 재흥(密陽財興) 주식회사 사장 마쓰시타 데이지로(松下定次郎)의 동상
- 전(前) 총독부 잠업 시험소 소장 미야바라 다다마사(宮原忠正) 동상 제막식
- 전(前) 총독부 식산국 광무과 아사기리 에이키치(朝霧栄吉)의 비명(碑銘)
- 두만강 변의 경편 철도와 간도의 작은 후지산
-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명명한 간도의 작은 후지산
- 회령 도선장에서 바라본 간도 후지산(富士山)
- 전주 요시노야마(吉野山) 벚나무 식수 기념비(전면)
- 전주 요시노야마(吉野山) 벚나무 식수 기념비(후면)
- 전주 요시노야마(吉野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