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 발굴 및 정비
조선 총독부는 1920년대에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역사상을 정리하여 식민 사관을 구축하는 데에도 박차를 가하였다. 이를 위해 조선사 편찬 위원회(1922)를 설치하여 한국의 역사를 편찬하게 하는 한편, 학무국에 고적 조사과(1921)를 신설하여 보다 조직적으로 한국의 유적을 조사·발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때 고적 조사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조선사 편찬에 참여하는 등, 한반도에서 일본인들의 유적 발굴은 식민 사관의 증거를 찾아내기 위한 활동에 다름 아니었다. 특히 1920년대의 조선 총독부는 긴축 재정 때문에 조사 목적에 맞는 지역으로 그 대상을 한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발굴 지역은 주로 평양의 한사군 및 고구려 지역,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 지역, 가야 지역 등이었다. 이 역시 일제가 발굴을 통하여 한국사의 타율성을 뒷받침하고 한일 관계를 강조하려 했음을 잘 보여 준다.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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