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ㆍ외교ㆍ해외 활동
임시 정부의 군사 정책은 군대를 편성하여 독립 전쟁을 전개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따라서 군대 조직을 위한 법규를 마련하여 간부를 양성하고 모병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이를 통해 만주 지역의 독립군을 통할 지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였다. 해외 외교 활동으로는 한국 독립을 요구하기 위한 파리 위원부와 구미 외교를 전담한 구미 위원부의 활동이 있었다.
- 파리 강화 회의 임시 정부 대표단. 1919년 3월 13일 파리에 도착한 김규식은 파리 한국 위원부와 통신국을 병설하였다. 앞줄 왼쪽: 여운홍·사무실 주인 부부·김규식/ 뒷줄 왼쪽: ◯·이관용·조소앙·◯·◯·◯·◯·황기환
- 대한민국 임시 정부 명의로 파리 강화 회의에 제출한 독립 요구서(1919. 4)
- 신한 청년단 대표 김규식 명의로 파리 강화 회의에 제출한 13개조(1919. 4. 3)
- 대통령 이승만과 구미 위원부 위원장 김규식
- 필라델피아 한인 대회(1919. 4. 14~4. 16). 3·1 운동 소식을 접한 서재필과 재미 동포들은 필라델피아 소극장에서 제1회 한인 대회를 개최하였다. 오른쪽부터 윤병구·이승만·정한경·노디김
- 필라델피아 한인 대회 태극기 행진. 독립 선언식을 마치고 회의장인 소극장을 출발하여 독립 기념관까지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하였다.
- 필라델피아 한인 대회 태극기 행진
- 필라델피아 한인 대회에 참가한 대표들. 앞줄 왼쪽: ○·민찬호·정한경·○·서재필·이승만·윤병구. 오른쪽으로 천세헌·조병옥·유일한 등이 보인다.
- 구미 위원부 직원 일동(1920. 3. 1). 앞줄 왼쪽: ○·송헌주·이승만·김규식/ 뒷줄 왼쪽: ○·임병직·노디김
- 대한민국 임시 정부 대통령 이승만 명의로 수여된 서재필 구미 위원 부위원장 임명장(1921. 4. 18)
- 워싱턴 군축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에 도착한 정한경과 이승만(1921. 11)
- 워싱턴 군축 회의 한국 대표단(구미 위원부 앞, 1921. 11). 첫줄 왼쪽: 이승만·매이본(Maybourne)·돌프(Frederic A. Dolph)/ 뒷줄 왼쪽: 서재필·정한경
- 워싱턴에 있었던 구미 위원부 공관
- 하와이 범태평양 회의에 참가한 각국 대표단(1925. 6. 30)
- 하와이 범태평양 회의에 참가한 한국 대표단(1925. 6. 30). 왼쪽부터 유억겸·김양수·서재필·○·윤혜은·○·신흥우·송진우
- 하와이 범태평양 회의에 참가한 한국 대표단. 왼쪽: ○·○·○·송진우·신흥우
- 레드우드 비행 학교 훈련생과 교관(1920). 첫줄 왼쪽: 미국인 교관 브라이언트(Frank Bryant)·◯·◯·장병훈·한장호·이용선/ 뒷줄 왼쪽: ◯·오림하. 오른쪽에서 4번째 이초
- 비행기에 오른 한장호. 레드우드에 있는 민간 비행 학교인 레드우드 비행 학교에서 한인 청년들이 파일럿 자격증을 얻고 윌로우스 비행사 양성소 교관으로 부임하였다.
- 임시 정부 군무 총장 노백린
- 노백린 군무 총장과 한인 비행사 양성소 교관들(1920. 2. 5). 왼쪽: 장병훈·오림하·이용선·노백린·이초·이용근·한장호
- 레드우드 비행 학교 훈련장 전경(1920. 5. 1)
- 한장호(레드우드 비행 학교, 1920. 5. 1)
- 레드우드 비행 학교의 과정을 마친 비행사들(1920.5.1). 레드우드 비행 학교를 졸업하고 비행사 자격을 획득한 이들은 윌로우스 한인 비행사 양성소의 교관으로 복무하였다.
- 임시 정부 산하 부대인 대한 군정서 사관 연성소 졸업식(1919. 9. 9)
- 북로 군정서 청산리 전투 승리 기념(1920.10)
- 육군 주만 참의부 대원(1923). 남만주 일대에서 활약한 참의부는 임시 정부 산하 독립군 부대로 결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