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박람회의 정문으로 사용된 광화문을 들어서면 경회루까지의 일직선 통로를 좌우로, 산업 남관(쌀을 제외한 농산품, 원예품, 면업품, 축산품 등), 산업 북관(가공 수출품 등), 쌀[米]의 관, 사회·경제관(사회 산업, 경제 관련 등), 조선 각도 특설관, 교육·미술·공예관(교육 상황, 미술품 등) 등이 있었다. 이어서 경회루 주위에 기계·전기관, 참고관 등이 배열되었고, 회장을 둘러본 후에는 북문인 신무문을 통하여 퇴장하게 되어 있었다.
조선 박람회에는 조선 이외에 일본 또는 외국의 출품을 진열한 전시관도 다수 있었다. 조선 총독부는 도쿄 관, 오사카 관, 규슈 관 등 일본 본토의 산업 전시관을 다수 설치했는데, 조선의 산업 상황과 대조시켜 조선인들이 일본이 이끄는 문명을 조선의 미래로 받아들이게 하려는 의도였다. 1915년의 물산 공진회 때와 비교하자면 일본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이나 식민지에 대한 전시가 늘어났고, 육군관과 해군관이 설치된 것도 특이점이다. 이때 특히 일본의 영토가 아닌 만·몽 전시관이 설치된 것에 대하여 동아 일보는 중국의 국권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비판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