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특수훈련반(미 OSS)의 훈련을 마치고 공작임무를 수행하러 적 후방을 향하여 떠나던날 대장 이범석장군을 모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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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사회상 사진아카이브

1920년대 사회상 - 산업: 개발과 수탈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은 산업, 특히 농업분야에서 '개발'이 이루어지고 주요 항구들이 증축, 개수축되는 등 사회간접자본이 확충되었다. 그 결과는 조선에서의 농업 생산량과 무역량의 증대라는 '경제성장'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성장의 과실이 식민지 하의 한국인에게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산미증식계획에서 증산에 필요한 비용은 대개 소작인이었던 농민들이 부담해야 했고, 생산된 미곡은 지주와 정미업자를 통해 상품으로서 일본에 이출되었다. 한국인들은 생산한 쌀을 일본에 이출하고, 만주산 좁쌀을 식량으로 충당해야 했다. 조선총독부는 이러한 '무역'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항구의 설비를 확충하고, 일본 본토에 조선의 특산품을 선전하기 위해 각종 박람회를 개최하였다. 1920년대의 경제성장은 조선의 산업구조를 일본의 요구에 맞추어 농업, 특히 미곡 단작 형태로 재편하고 일본의 세력권 안에서의 무역을 증대시키는 것, 즉 일본에 대한 경제적 예속을 심화하는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조선박람회

박람회는 농상공업에 관한 각종 물품을 모아놓고 판매, 선전, 우열 심사를 하면서 생산물의 개량 발전 및 산업의 진흥을 꾀하는 행사이다. 1851년 영국에서 시작된 이래, 산업의 전시이자 '제국'의 전시로서 각지에서 개최되었다. 

                일본도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은 이래 조선에서 몇 차례 대규모의 박람회를 개최했는데, 1929년 9월 경복궁에 마련된 조선박람회는 그중 하나이다. 특히 1915년의 시정5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가 일본의 조선 통치를 내외에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면, 조선박람회는 산업 진흥에 보다 방점이 찍혀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20년 간의 통치 실적을 일본 본국에 보임으로써, 조선의 산업에 대한 일본인들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조선박람회를 개최한 것이다. 동시에 박람회는 식민지민에게 '문명'한 제국의 통치 업적을 각인시키는 공간이기도 했으므로, 조선총독부는 한국인 관람 수를 늘리기 위해 각종 수단을 동원하였다. 일본 제국주의 역시 '산업'과 '제국'의 전시로서 조선에 박람회를 개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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